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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의 직격인터뷰

정대철 신임 헌정회장 "정치 실종 대통령이 풀어야…이재명 대표, 당에 부담 그만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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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대철 신임 헌정회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헌정회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정대철 신임 헌정회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헌정회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민주당계 첫 당선 정대철 신임 헌정회장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내 2층짜리 헌정회 건물은 평소와 달리 분주했다. 정대철(79) 전 국회의원이 제23대 대한민국 헌정회장으로 선출된 것을 축하하는 발길이 이어져서다. 정 신임 회장은 30대에 정치에 입문해 5선 의원을 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고, 대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지낸 그는 46년 전 국회의원에 처음 출마한 이후 한국 정치의 궤적을 지켜봐 왔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는 전직 대통령, 국회의장 등도 회원이다. 정 회장은 이날 헌정회관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지금은 정치 실종 상태”라며 “결과적으로 큰 책임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고 말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선 “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처리 문제에 집중할 뿐 민생 해결 등을 위해 별로 일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고 있다”며 "이 대표 스스로 선을 그어야 당이 살아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상대와 다름 인정이 민주주의"

-지난 21일 선거에서 민주당계로는 처음 헌정회장에 당선됐는데.
“전직 의원 1096명이 회원인데도 정치적 영향력이 없고 친목 단체로 인식돼 왔다. 젊은 회원이나 여성 회원들은 외면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헌정회를 국가 원로 단체이자 정책 대안 제시 기관으로 거듭나게 해 여야 정치권에 협치와 포용, 상생의 정치를 하도록 충고하는 역할을 하려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회원들이 화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원했다. 내가 말하긴 뭐하지만, 의원 시절부터 여야나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호형호제하며 우애를 다져온 모습이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여야 간 대화나 타협이 완전히 사라진 원인은 뭐라고 보나.
“민주주의 정치의 원칙은 영어로 하면 ‘어그리 투 디스어그리(agree to disagree)’이다. 상대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상대방이 다른 게 아니라 잘못됐다고 본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태도에서 심각한 대결 구도가 왔다. 지금 한국은 협상이 없는 정치 실종 상태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선 큰 책임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므로 노력이 필요하다. 야당에도 책임이 있고 노력해야 하지만, 정치를 크게 풀어가려는 대통령의 노력이 아쉽다.”

"여야커녕 같은 당 의원도 거리감, 원로로서 상생 정치 이끌겠다
정치 무경험 대통령 포용력 아쉬움…민주당, 대표 수호 벗어나야
한일관계 회복 노력 높이 평가하지만 대국민 설득 더 신경써야"

-과거에도 여야 교착 상태는 있었는데, 양상이 훨씬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국회에서 서로 삿대질하고 싸움을 하다가도 끝나고 나오면 ‘점심 같이 먹자, 저녁때 막걸리 한잔하자’ 그러면서 여야가 어울렸었다. 그런데 요즘은 여야가 안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당 의원들끼리도 어울리는 게 거의 없어졌다고 하더라. 그러니 공통분모가 찾아지지 않는다. 내가 여당 대표를 할 당시 야당은 최병렬, 박희태 대표였는데 싫다고 해도 찾아가서 저녁에 '끼워달라'고 하곤 했다. 굳이 가서 만나 얘기하면서 여러 문제가 반쯤은 대화로 해결됐다. 상대방 정서와 바람을 이해할 수 있는데, 만남 자체가 없는 건 불행한 사태다.”

"대통령이 자신감 갖고 끌어안아야"

-내년 총선을 앞둔 것도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우는 배경 아닌가.
“요즘 특별한 상황이 있긴 하다. 야당 대표에 대한 형사 사건화로 인해 격렬한 대결 구도가 온 게 사실이다. 또 윤 대통령이 정치에 대한 경험이 없는 분이라서 정치 사정을 잘 모르는 점이 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이 국정 자문회의라든가 누구와 의논한다는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좀 달라지기 시작하긴 했지만 인사도 검찰 출신에 한정된 면을 보여왔다. '정치를 안 했었으니 오히려 더 정치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전당대회 등을 보면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른바 ‘윤심’ 논란 등 갈등이 노출됐는데.
“이준석,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 등을 포용하는 대신 전부 내치는 것으로 보이더라. 당내에서도 생각이나 이해가 좀 다르더라도 인정하는 자세가 없이 관계가 좋은 이들만 두려는 것으로 보여 안타까웠다. 대통령이 되면 자신감을 갖고 자기를 싫어하거나 반대했던 사람까지 끌어안아야 하는데….”

-여당과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야당인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진 것도 아니다.
“헌정회장을 하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한 상태다. 기본적으로 이재명 당 대표의 사법 처리 문제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다른 민생 문제나 정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별로 일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 문제는 이 대표에게 해결하도록 하고, 당은 국민 편에서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많이 가야 하는데, 당수 문제에 몰입돼 있다. 이를 바꿔가야 민주당이 지지를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당 지지율 하락의 결정적 요인일 거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당헌을 고쳤기 때문에 이 대표는 기소됐지만 당 대표직을 계속하게 됐다. 여전히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이 대표 지키기’에 매달리는데.
"당 대표에게 잘못 보이면 (총선) 공천을 받기 어려우니 당 대표를 비호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이건 정직하게 얘기해야지. 그래서 이 대표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거다. ‘내 문제는 나와 몇 사람이 해결할 테니 당은 당대로 열심히 해봐라’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 선을 긋고 나와야 당이 살아난다.”

-선을 긋는 방법으로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보나.
“그건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다. 하여튼 당내 개인 문제와 당 전체의 위상이 완전히 얽매여 돌아가지 않도록 당 대표가 스스로 해야 하고,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니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북 위해 노력 중

-민주당이 다수 의석으로 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하고 강행 처리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각 정당 원내대표가 서로 주고받는 협상을 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니 힘으로 밀어붙이는 현상이 나온다. 일차적으로는 민주당의 책임이지만, 이걸 풀어가는 데엔 결과적으로 집권 여당의 책임도 있다. 대통령의 큰 결단으로 야당을 포용하고, 야당에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대화가 필요하다. 나도 여권에 '야당 원내대표 등이라도 만나 대화를 하라'고 했었는데, (여권은) 야당에서 이재명만 사라진 후 새롭게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다. 야당은 야당대로 입장이 있어서 극한 대립으로 가는 만큼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지지 그룹인 ‘노사모’가 있었는데, 최근 팬덤 정치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새로운 문화인데 극렬하다. 양쪽 지지자들이 정치나 정책 향방에 영향을 끼치려는 집중화 현상인데, 감당을 못할 정도로 흘러가고 있어 우려된다. 직접 참여 정치라는 측면이 있었는데, 굴절이 되면 무서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당 대표의 공천이나 당 운영에 대한 영향력이 과대하기 때문에 극렬 팬덤의 부작용이 심각해질 수 있는 만큼 당 대표의 공천권 등을 분산시키고 민주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일정상회담 이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선친이 항일투사였는데,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기본적으로 반대가 있더라도 한일 관계를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큰 전제가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윤 대통령의 노력을 높게 평가한다. 이런 자세는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도 필요한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성급한 경제 제재로 한일 관계가 경직됐었다. 결국 외교 정책은 국익과 국민 의사에 기반을 둬야 하므로 피해국인 우리로선 국민을 잘 설득해야 한다. 독일이 우리에게 큰 모범이 되는데, 독일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계속 사과한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가 보기에 독일과 상당한 차이가 있고, 오만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본도 계속 반성하는 모습이 필요하고, 그것과 연결해 국민 설득이 필요하다.”

-북한 미사일 발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북한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이전 정부에선 북한에 굴욕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화하려 했는데, 지금은 한미 군사훈련 등 강 대 강 대결로 가고 있다. 북한의 도발은 내부 목적도 있을 것인데,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대화 채널, 외교 채널이 없는 것 같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기조를 깔면서도 북미 수교나 남북관계 완화의 꿈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가 연결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위해 노력 중인데, 상당한 의사 교환 단계에 있다. 교황이 한국을 방문해 자동차를 타고 북한에 가기를 희망하고 있는데, 거기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김아영 인턴기자가 인터뷰 정리에 참여했습니다.

정대철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인 부친 정일형에 이어 민주당계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1977년 서울 종로-중구 국회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5선을 역임했다. 1987년 대선 당시 평화민주당 대변인을 지냈고,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복귀 후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서 부총재를 역임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2003년 민주당 대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