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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쌀 과잉생산 부추길 양곡법 밀어붙인 거야의 횡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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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주, 재정 악화 우려되는 ‘악법’ 일방 강행 처리

입법 폭주 막으려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 불가피

더불어민주당이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남아도는 쌀의 정부 매입을 강제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반대 토론에 나섰지만 민주당의 주도로 재석 277명 중 169명의 찬성표를 얻어 가결됐다.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표결을 미뤄 일단 불발됐다. 이후 김 의장이 두 차례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하자 민주당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이날 법안 처리를 강행한 것이다. 민주당이 169석을 보유한 거대 야당에 요구되는 분별력과 책임감을 방기하고 있음을 드러낸 전형적인 사례다.

민주당의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예상치의 3~5%를 넘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농민들의 쌀값 폭락을 막아 소득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오히려 쌀의 과잉 생산을 부추기고 국가 재정을 악화시킬 우려가 큰 ‘악법’이라고 지적한다. 쌀농사는 기계화율이 90%가 넘지만, 다른 밭작물은 기계화율이 60% 수준이라 법이 통과되면 전국의 논 82만㏊ 중 밀·콩 등을 심던 9만㏊조차 벼농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지난해 남아돈 쌀이 37만t에 달하며 정부가 이를 매입하는 데만 7900억원이 들어갔다. 2030년엔 남아도는 쌀이 64만t에 달하고 매입비도 1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마당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발효되면 쌀 생산 초과분이 더욱 늘어나 매입비용이 급증하고, 유사시에 대비해 밀 등 전략 작물을 재배해야 하는 국내 현실상 식량 안보마저 우려된다.

민주당도 집권당 시절엔 이 법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야당이 되자 입장을 180도 뒤집어 법안 처리를 강행한 것이다. 농민 지지층의 표만을 의식하고 전체 국민의 이해는 외면한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이뿐이 아니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에 이어 공영방송 장악 의도가 의심되는 방송법 개정안도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앞서 지난 9일엔 의료계의 반발이 큰 간호법 제정안 등 7개 법안 직회부를 의결했다.

이런 직회부 법안들은 경제 살리기와는 무관하고 정치적 득실만 따진 포퓰리즘 입법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거대 야당이 의석수만 내세워 직회부를 남발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의 뿌리를 뒤흔드는 행태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일방 처리를 강행했으니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여야는 한 발씩 양보해 현실적인 해법을 다시 도출하는 게 순리다. 쌀값 하락의 주원인은 수급 불균형이니, 정부는 재배 면적을 관리하면서 과잉 생산된 쌀의 매입 비용을 대체 작물 육성 등 전체적 농업 발전에 진정 도움이 되게 쓰이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