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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법으로 쌀값 안정시킨다지만…전문가 “과잉생산 심해져 하락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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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3일 충북 청주의 공공비축벼 보관창고에서 관계자가 쌀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충북 청주의 공공비축벼 보관창고에서 관계자가 쌀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3일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초과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쌀값 하락 폭이 평년 대비 5~8% 이상이면 정부가 초과생산량을 의무매입하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인 기준은 해당 범위 내에서 정부가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쌀값 안정 및 농가 소득 보장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당초 원안보다 정부 재량권을 확대했지만,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의무매입’이라는 기본 틀이 유지되는 한 여전히 부작용이 크다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본회의 통과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인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하는’ 본질적 내용은 그대로 남아 있기에 쌀 생산 농가와 농업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쌀 의무매입이 쌀값 안정이나 농가 소득 보장에 전혀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개정안 원안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의무매입 시 필요한 예산은 올해 5737억원에서 2027년 1조1872억원, 2030년 1조4659억원으로 매년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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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또한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산지 쌀값은 2030년 17만2709원(80㎏ 기준)으로, 올해(18만626원)보다 오히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안 그래도 매년 쌀 소비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과잉생산 현상이 굳어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통계청의 ‘2022년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7㎏으로 2021년(56.9㎏)보다 0.4% 줄었다. 하루 소비량은 155.5g(한 공기 반) 수준이다. 196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역대 최소다.

김종인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의무매입 기준을 완화한) 수정안을 기준으로 다시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원안과) 큰 차이는 없다”며 “미세한 수치 조정만으로는 농가가 쌀 생산량을 줄일 유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전략작물 직불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등을 통해 쌀 수급을 안정화하고 식량 자급률을 높이려던 정부 정책도 위협받을 수 있다.

정부의 ‘2023년 쌀 적정 생산대책 추진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적정 벼 재배면적을 69만 헥타르(ha)로 보고, 지난해 벼 재배면적(72만7000ha) 대비 약 5%(3만7000ha) 줄이기로 했다. 과잉생산으로 쌀값이 하락하고, 쌀값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쏟아 시장에서 격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쌀 생산을 줄이는 농가를 위해 주는 당근이 ‘전략작물 직불제’다. 기존 쌀 외에 가루쌀·밀·콩 등 대체작물을 재배하면 직불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자연스럽게 쌀 생산량 감소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해 준다면 농가 입장에선 굳이 쌀 대신 대체작물을 경작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당장 남는 쌀을 매입하면 단기적으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쌀값 하락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다수 쌀 농가에서는 ‘현행안보다 오히려 퇴행하는 법안’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농민단체인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단지 수급조절로만 끝나지 않도록 농업생산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요청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며 전면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개정안은) 구조적 수급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고, 쌀 가격안정을 도모하겠다는 명분마저 스스로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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