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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푸틴 '플루토늄 배출' 원자로 손잡는다…세계 핵균형 깨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1일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1일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1일 열린 정상회담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대량 배출하는 고속 중성자 원자로 개발 협력 계약을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 대통령실(크렘린궁)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보면 러시아 과학고등교육부·러시아 합동핵연구소(JINR)와 중국 과학기술부·중국과학원은 기초 과학 연구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러시아 국영 원자력발전 기업 로사톰과 중국 원자력청(CAEA)은 고속 중성자 원자로와 폐쇄형 핵연료 주기(closed nuclear fuel cycle) 개발을 위한 장기 협력 프로그램 계약에 서명했다.

이처럼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과 러시아간 핵심 원자력 기술 협력이 강화되는 것에 대해 미국이 긴장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원자로 관련 협력이 세계 핵무기 전력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中, 러 지원에 1년에 핵탄두 100기 만들 원자로 건설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잡지 '스펙트럼'이 지난해 12월 잡지에 실은 표지 일러스트. 중국을 상징하는 사자상 뒤로 고속증식로 설계도가 보인다. 고속증식로는 고속 중성자로 일반 원전에 쓰지 못하는 우라늄238을 핵분열이 가능한 플루토늄239로 바꾼다. 이 플루토늄은 핵무기 연료로 쓸 수도 있다. 사진 스펙트럼 캡처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잡지 '스펙트럼'이 지난해 12월 잡지에 실은 표지 일러스트. 중국을 상징하는 사자상 뒤로 고속증식로 설계도가 보인다. 고속증식로는 고속 중성자로 일반 원전에 쓰지 못하는 우라늄238을 핵분열이 가능한 플루토늄239로 바꾼다. 이 플루토늄은 핵무기 연료로 쓸 수도 있다. 사진 스펙트럼 캡처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장기 개발 협력을 맺은 고속 중성자 원자로에 주목하고 있다. 고속증식로라고도 불리는 이 원자로는 고속 중성자를 이용해 핵분열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생산한다. 기존 원자로에 쓰지 않던 우라늄238을 플루토늄과 함께 연료로 사용한다. 우라늄238이 핵분열 과정에서 플루토늄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고속증식로에선 핵분열 반응으로 투입한 플루토늄보다 더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이 플루토늄이 핵무기의 원료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러시아 로사톰은 지난해 12월 중국 최초의 고속원자로인 CFR-600에 쓰일 고농축 우라늄 원료 25t을 공급했다. 전문가들은 CFR-600 원자로에선 연간 약 50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고 본다.

미 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잡지 ‘스펙트럼’은 지난해 12월 “중국은 남동부 푸젠(福建)성 샤푸(霞浦)현 창뱌오(長表)섬에 2기의 CFR-600 원자로를 이용한 발전소를 건설했다”며 “1기는 전력 생산을 시작했고, 다른 1기는 2026년부터 가동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CFR-600 2기가 모두 가동을 한다면 창뱌오섬 원전에서 해마다 핵탄두 100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단 얘기다.

美 “세계 핵 균형 깨뜨리는 위험한 거래”

지난 2019년 중국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둥펑(東風)-17 탄도 미사일 부대가 천안문 광장을 지나고 있다. 중국은 둥펑-17은 극초음속 활강 미사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2019년 중국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둥펑(東風)-17 탄도 미사일 부대가 천안문 광장을 지나고 있다. 중국은 둥펑-17은 극초음속 활강 미사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화=연합뉴스

이 때문에 미국은 CFR-600이 현재 중국의 핵탄두 비축량을 현재 추정치인 약 400개에서 2035년까지 1500개로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존 플럼 미 국방부 우주담당 차관은 지난 8일 미 하원에 출석해 로사톰이 중국에 고농축 우라늄을 공급한 사실을 밝히면서 “고속증식로는 곧 플루토늄이고 플루토늄은 (핵) 무기를 위한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의 거래는 중국의 핵전력 증강에 대한 우리의 우려와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미 의회도 로사톰과 중국 최대 원자력 기업 중국핵공업집단공사(CNNC) 간의 “위험한 관계를 단속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미 의회 군사·외교·정보위원회 위원장들은 최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러시아와 중국의 원자력 협력은 단순한 민간 프로젝트 이상”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이에 대해 중국은 CFR-600은 핵무기 개발이 아닌 원자력 발전에 사용될 거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중국은 지난 2021년 향후 15년 동안 4400억 달러(약 518조원)을 투입해 최소 150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원자력 발전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러, 제재 맞서 핵 수출로 돈벌이 

지난 20일 프랑스 됭케르크 항구에서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이 하역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일 프랑스 됭케르크 항구에서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이 하역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이 러시아와 핵 관련 기술에서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국이 가진 고급 핵 기술 수출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서방의 대러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 관련 수출이 급증하며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이 됐다”며 “현재 세계 최대의 원자로·핵 연료 공급국인 러시아는 핵 기술을 원하는 세계 각국에서 영향력이 강화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지난해 2월 3300만달러(약 422억원)이던 러시아의 핵 관련 수출 매출액은 지난해 12월엔 2억1500만달러(약 2752억원)로 급증했다. 중국이 만든 CFR-600의 원형 역시 러시아에서 지난 35년 넘게 가동한 고속증식로인 BN600이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섞인 발전 연료도 러시아산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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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핵밀착, 세계 핵 위기 고조”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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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러시아의 핵 협력 밀착이 세계 핵 위기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국이 핵 개발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있는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 오던 이른바 ‘핵 금기’가 약화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지난해부터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며 주변 국가들에도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월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 2010년 맺은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중단을 시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푸틴 대통령은 21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직후에도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고농축 우라늄이 결합된 포탄을 공급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러시아도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러시아가 핵 위협으로 목표를 달성하면 북한과 이란, 중동 국가들이 뒤따를 것”이라며 “이에 한국을 비롯한 미 동맹국들 사이에서 비핵화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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