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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낭자한 수사 현장, 모자이크 안한 까닭…'그알' PD의 고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웨이브 다큐멘터리 시리즈 '국가수사본부'는 살인, 강도, 마약 등 범죄 사건 현장에 형사들이 출동하는 첫 순간부터 피의자가 기소되는 시점까지 촘촘히 담아냈다. 사진 웨이브

웨이브 다큐멘터리 시리즈 '국가수사본부'는 살인, 강도, 마약 등 범죄 사건 현장에 형사들이 출동하는 첫 순간부터 피의자가 기소되는 시점까지 촘촘히 담아냈다. 사진 웨이브

‘본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역, 사건 등은 모두 실제임을 밝힙니다.’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는 매 회차 첫 화면에 이같은 문구를 띄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콘텐트들이 대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연관이 없다’는 자막을 띄워 명예훼손 등 법적 문제를 피해간다면, ‘국가수사본부’는 정반대로 100% 실제임을 강조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지난 3일 1~3회를 시작으로 이어 매주 2회씩 공개되는 ‘국가수사본부’는 형사들이 범죄 용의자를 추적하는 과정부터 체포·신문하기까지 실제 수사 과정 일체를 낱낱이 보여준다. 범죄를 사후 추적하거나 재구성한 게 아닌, 경찰 수사의 처음과 끝을 실시간 담아낸 이례적인 시도라는 점에서 “현장에서만 느껴지는 리얼함이 살아있다”는 등의 호평을 받고 있다. 다큐를 연출한 배정훈 PD는 “막내 형사가 돼서 수사 현장을 따라다니는 느낌”이라는 시청자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 등 사건·사고를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오래 제작하고 ‘국가수사본부’로 첫 OTT 다큐에 도전한 배 PD를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웨이브 사옥에서 만났다.

“경찰, 실수보다 잘한 것 조명해보고파”

배 PD는 형사들의 실제 수사과정을 다큐로 제작하게 된 건 그간의 제작 경험에서 비롯된 일종의 ‘반작용’이라고 했다. 그는 “‘그알’과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내가 주로 쫓았던 건 경찰들의 실수나 잘못 혹은 의도적인 왜곡으로 인한 사법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들이었다”며 “하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사건을 묵묵히 해결하는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이 보고 들었다”고 말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등을 제작한 배정훈 PD는 수사의 처음과 끝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어서 "마감 기한이 없는 OTT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사진 웨이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등을 제작한 배정훈 PD는 수사의 처음과 끝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어서 "마감 기한이 없는 OTT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사진 웨이브

“경찰이 당연히 수사를 제대로 해야 하는 건 맞지만 우리가 그들이 잘한 일을 칭찬해본 기억은 거의 없잖아요. 경찰을 비하하는 별의별 용어들도 존재하고요. 우리 안전을 지켜준다는 건 알지만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기도 했고요. 경찰 조직이 박수받지 못했던 적도 많지만 그 반대편에는 사건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이들도 많다는 걸 조명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같은 시각의 기획에 익숙지 않은 경찰들을 섭외하는 일부터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배 PD는 “처음 다큐 기획안을 들고 찾아가면 대부분의 경찰이 ‘왜 갑자기 우리를 칭찬해주려고 하느냐’며 낯설어하는 반응이었다”며 “특별히 멋있는 말로 설득하려는 대신 그저 불쌍한 표정으로 곁에서 계속 기다렸다”고 돌이켰다.

그렇게 오래 공들인 끝에 섭외된 서울·부산·광주·강릉·원주·순천·여수 지역 경찰서를 7개 제작팀이 동시에 흩어져서 촬영했다. 경찰서 인근 월세방을 구해 합숙하면서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동안 형사들의 일상적인 업무부터 출동 과정 등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배 PD는 “‘그알’은 사건이 주인공이라면, ‘국가수사본부’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며 “경찰관들의 고민과 노고가 잘 묻어 있는 상황을 위주로 편집했다. 촬영 분량의 대부분은 버려지고 20분의 1 정도만 살아남았다”고 설명했다.

웨이브 다큐 '국가수사본부' 스틸컷. 사진 웨이브

웨이브 다큐 '국가수사본부' 스틸컷. 사진 웨이브

긴 제작 기간이 필요한 기획이기에 SBS 프로그램이 아닌 OTT 오리지널로 제작하겠다는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배 PD는 “TV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편성에 따른 마감 기한에 맞추기 위해 사건을 끝까지 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반면 OTT는 마감 기한을 정해두고 제작하지 않아 ‘피의자가 기소된 이후까지 담자’는 원칙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피의자가 기소된 상태여야 다큐를 공개할 때 피의사실 공표나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기소 여부까지 담는 게 중요했다는 설명이다.

“표현 자유로운 OTT…오히려 양날의 검”

‘국가수사본부’는 ‘리얼 수사 다큐’를 표방하다 보니 노골적인 사건 현장 묘사 등 선정성과 모방범죄 가능성 등을 지적받기도 했다.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와 우연찮게 같은 날 공개되면서 OTT 다큐들의 적나라한 표현 수위 비판 논의에 함께 거론됐다.

웨이브 다큐 '국가수사본부' 스틸컷. 사진 웨이브

웨이브 다큐 '국가수사본부' 스틸컷. 사진 웨이브

배 PD는 이에 대해 “방송법을 적용받지 않는 OTT 콘텐트가 상대적으로 표현이 자유로운 것은 맞다”며 “이는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털어놨다. 그는 “‘국가수사본부’를 자세히 보면, 실제로는 혈흔이 낭자한 현장인데 빨간색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관습대로 모자이크 처리만 하는 대신, 색 보정을 통해 채도를 낮췄기 때문”이라며 “이런 식으로, 표현의 자유 범위가 넓어진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표현 방식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더 보수적으로 편집한 부분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 조사 장면을 보도해 제기된 ‘인권 침해’ 지적에 대해서도 “그런 비판은 반갑고 논의할 가치가 있는 영역”이라면서도 “우리나라보다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의 경우 아예 법정에 선 피고인을 촬영해 내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등을 포함해 표현 수위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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