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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약점 파고든다…유엔 인권이사회 결의안, 정부 5년 만에 복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이 지난해 유엔 총회 차원의 북한인권결의안에 4년 만에 공동제안국으로 복귀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될 북한 인권결의안에도 5년만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다. 북한 인권 문제 관련 핵심 당사국으로서의 역할을 정상화하며 국제사회의 공조 과정에서도 점차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지난달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5년만 복귀…적극 참여"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가 다음 달 3일 또는 4일 채택될 예정"이라며 "정부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에 공동제안국으로 5년 만에 복귀하고 문안 협의에 적극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결의에는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재검토, 북한에 억류된 타 회원국 국민에 대한 우려 등 새로운 문안이 반영돼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이번 결의안 초안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2020년 제정된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관련 대목이다. 결의안에는 "독립신문과 기타 매체의 설립 허가를 포함해 온·오프라인에서 사상·양심·종교·신념의 자유와 의견·표현·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러한 권리를 억압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포함한 법과 관행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는 대목이 포함됐다.

다음달 3~4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 예정인 북한인권결의안에 명시된 반동문화사상배격법 관련 대목. 유엔 인권이사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결의안 초안 캡처.

다음달 3~4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 예정인 북한인권결의안에 명시된 반동문화사상배격법 관련 대목. 유엔 인권이사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결의안 초안 캡처.

북한 인권 단체들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학술 행사에서 공개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전문에는 "반동사상문화를 유입, 시청, 유포하는 행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그가 어떤 계층의 누구이든 이유 여하에 관계없이 엄중성 정도에 따라 극형에 이르기까지의 엄한 법적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또 TV, 라디오를 조작해 외부 콘텐트를 접하거나, 한국 영상 유입·시청 및 유포 행위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을 경우 등이 모두 처벌 대상이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현안 관련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현안 관련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외에도 이번 결의안에는 국군 포로와 그 후손이 겪는 인권 침해와 관련한 대목에 "건강이나 억류 상태에 대한 정보 없이 북한에 억류된 국민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또 2019년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2020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된 문구도 지난해 결의안에 이어 이번에도 포함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국제사회의 인권 지적에 북한은 '전면 배격''북한의 존엄과 주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는 역으로 북한이 얼마나 인권 문제를 자기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폭도 인권 침해"

최근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의 핵심 당사국으로서의 입지를 넓혀가는 중이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선 북한 인권과 관련한 비공개 협의(아리아 포뮬러)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황준국 주유엔대사가 정부 대표로는 처음으로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피폭 우려 등 북핵 개발로 인한 인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했다. 황 대사는 "최근 전문가들에 의해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을 가능성과 영변 핵시설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다"며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 주민들의 실제 생활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1일 인권 조사·기록 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과 영향 매핑' 보고서를 통해 "핵 실험장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통해 확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고, 통일부는 지난 24일 풍계리 출신 탈북민을 대상으로 피폭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5월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방식으로 폐기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8년 5월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방식으로 폐기하는 모습. 연합뉴스.

北 인권 정부 보고서도 나와 

한편 통일부는 오는 31일 정부의 첫 북한 인권 관련 공개 보고서인 '북한인권현황 연례보고서'를 국·영문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정부는 2017년부터 북한 인권보고서를 작성했지만 3급 비밀로 분류해 그간 비공개 처리했다. 이번에 공개로 풀리는 보고서는 지난 6년간의 기록을 망라해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등이 담겨 있다.

1966년부터 매년 발간되는 통일연구원의 북한인권백서가 유엔의 각종 북한 인권 실태 조사에 비중 있게 인용됐던 만큼, 정부 차원의 보고서는 국제사회에서 보다 권위 있는 참고 자료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영호 통일미래기획위원장(성신여대 정치외교학 교수)은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국제사회가 2014년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내는 등 활발하게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동안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측면이 있다"며 "남북 대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 북한 인권 지적을 주저한다면 이는 북한의 그릇된 논리에 휘말리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북한 인권을 북핵 문제, 남북 경제협력과 연계해 동시에 협의하는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하며, 통일 정책의 핵심 어젠다로도 북한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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