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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해이' 의식했나…옐런 "모든 은행예금 보호 고려 안해"

중앙일보

입력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파산으로 금융 시장 전반에 불안감이 퍼지는 가운데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22일(현지시간) 모든 은행 예금을 보호하려는 것은 아니란 입장을 밝혔다. 전날 '예금 전액 보장 가능성'을 시사했던 것에서 슬그머니 말을 바꾼 태도에 미국 증시는 얼어붙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 AP=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 AP=연합뉴스

옐런 장관은 이날 상원 세출위원회 금융소위 청문회에 출석해 "모든 은행 예금을 보호하는 '포괄 보험(blanket insurance)'과 관련해 어떤 것도 논의하거나 고려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은 우리의 은행 시스템이 건전하다는 것을 대중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면서다.

그러나 이는 바로 전날 미국은행연합회(ABA) 콘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한 말과 사뭇 다른 내용이다. 옐런은 지난 21일 콘퍼런스에서 "소규모 은행들이 (SVB와) 비슷한 위험에 노출된다면 (SVB에 했던 것과) 유사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예금 전액 보장 가능성을 시사했었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SVB와 시그니처은행 파산이 금융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예금 보험 한도와 관계없이 이 은행들의 예금 전액을 보장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최근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재무부의 SVB·시그니처 사태 대처에 대해선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지만, ABA 콘퍼런스에서 옐런이 한 발언에 대해선 "심각한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일으킬 수 있다"(월스트리트저널)는 비판이 많았다. 은행의 무책임한 경영 등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였다. 그러자 부담을 느낀 옐런이 하루 만에 "연쇄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등 시스템 위기라는 판단이 들어야만 예금 전액을 보호하는 일을 허락할 수 있으며, (포괄 보험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금 보장 한도인 25만 달러(약 3억2000만원)가 적합한 수준인지에 대해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해 갑론을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현재 미국 정치권에서는 예금 보험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옐런은 이날 청문회에서 파산한 은행의 경영진에 이번 사태와 관련한 책임을 묻겠다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것은 중요한 책임의 문제이며, 관련된 일의 법제화에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밝히고 "파산한 은행의 주주와 채권 보유자는 정부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다시 말한다"고 덧붙였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신화=연합뉴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신화=연합뉴스

"옐런과 파월의 모순된 메시지에 시장 혼란"  

한편 이날 옐런 장관의 발언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말과 상충해 뉴욕 증시가 폭락하는 등 시장이 요동쳤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파월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융권의 재정적 압박이 커질 경우 예금자 보호를 확대할 수 있다고 시사했는데, 같은 시간 의회에선 옐런이 '포괄 보험'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해 시장에 혼란을 줬다"며 이같이 짚었다.

파월 의장이 "연내 금리 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은 바람에 시장이 위축됐단 해석도 나오지만, 이날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사전 조율 없이 동시에 모순된 메시지를 전한 파월과 옐런의 발언"이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이날 연준은 금리 인상 보폭을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으로 줄여 시장의 예상에서 크게 엇나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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