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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의 밀리터리 차이나] 탈미(脫美) 나서는 튀르키예, 중국 전투기 구입할까?(上)

중앙일보

입력

튀르키예가 독자 개발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TF-X’. [사진 튀르키예 방위사업청(SSB)]

튀르키예가 독자 개발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TF-X’. [사진 튀르키예 방위사업청(SSB)]

튀르키예 현지 시각으로 3월 18일, 앙카라 인근 한 비행장에서 튀르키예가 독자 개발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TF-X’ 시제 1호의 출고식이 거행됐다. 미국의 F-22 ‘랩터’를 빼닮은 이 전투기는 지난 2010년부터 개발 사업이 시작됐지만, 기술 부족과 제재 영향 등으로 사업 진행 과정에서 상당한 잡음을 거치며 체계 개발 착수 5년 만에 시제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튀르키예가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이 전투기는 정치적 개입 때문에 개발 일정이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하고 있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올해부터 상세 설계가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이 일정은 1년 이상 앞당겨졌고, 2026년 연말에나 가능할 것이라던 초도 비행 일정은 2024년 초로 당겨졌다.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정이지만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 100주년에 맞춰 시제기 출고와 첫 비행을 달성하라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튀르키예 기술진들은 오늘도 ‘불가능’에 도전하는 중이다.

튀르키예는 2030년대 초반까지 TF-X를 완성시켜 기존의 노후 전투기들을 순차적으로 대체한다는 구상이지만, 세계 그 어느 항공 전문가도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 보지 않는다.

튀르키예는 드론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고 있지만, 유인(有人) 항공기 분야에서는 기술적으로 상당히 뒤처진 나라다. 최근 KF-21 시제기 시험 비행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튀르키예의 전투기 생산 기술 수준은 15~20년 정도 뒤처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국의 T-50 정도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튀르키예 최초의 초음속 훈련기 ‘후어젯(Hurjet)’이 아직 시제기 초도 비행도 못 한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나라가 당장 내년에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띄운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2019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있는 TF-X 제트 전투기의 초기 모델. [사진 셔터스톡]

2019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있는 TF-X 제트 전투기의 초기 모델. [사진 셔터스톡]

사실 튀르키예는 미국과의 관계만 괜찮았다면 TF-X 개발 일정을 상당 수준까지 앞당길 수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총리 취임 후 20년째 튀르키예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6년 쿠데타 미수 사건 이후 노골적인 반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애초에 에르도안의 치적 사업으로 기획된 TF-X도 근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초 TF-X는 100대 이상이 도입될 예정이었던 튀르키예 공군의 차세대 주력 전투기 ‘F-35A’를 보조하는 경량급 스텔스 전투기 개발을 목표로 2010년부터 시작된 사업이다. 튀르키예는 F-35 개발 프로그램인 미국 주도의 JSF(Joint Strike Fighter)의 개발 파트너 국가로 참여해 왔고, 미국은 물론 영국 방산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충분히 TF-X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쿠데타 미수 사건 이후 에르도안이 반서방·친러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됐다.

2016년 쿠데타는 군부 엘리트들이 에르도안의 장기 독재와 실정(失政)에 반발해 일으켰다. 군부는 에르도안이 휴양지 마르마리스로 휴가를 간 틈을 노려 거사를 일으켰지만 사전에 러시아 정보기관의 쿠데타 첩보를 받은 에르도안이 급히 안전 지역으로 대피하는 데 성공하면서 일이 틀어졌다. 이후 에르도안이 정보기관과 경찰 등 친위 세력을 규합하는 데 성공하면서 결국 쿠데타 세력은 모두 제압됐다. 에르도안은 쿠데타 제압 이후 거사에 가담한 군인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는데, 여기에는 에르도안의 전용기를 미사일로 조준했던 F-16 조종사를 포함한 공군 전투 조종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결국 공군 조종사들이 반역 혐의로 대거 체포되면서 튀르키예의 공군은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이로 인해 발생한 영공 방위 공백 문제도 해결 할 겸, 쿠데타 첩보를 제공해 준 러시아에 대한 감사의 표시도 할 겸 해서 이루어진 것이 S-400 방공 시스템 구매였다.

러시아 S-400 방공미사일 체계가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을 통과하고 있다. [AP=뉴시스]

러시아 S-400 방공미사일 체계가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을 통과하고 있다. [AP=뉴시스]

튀르키예가 2017년 S-400 구매 계약을 체결하자 미국은 곧바로 JSF 프로그램 퇴출과 ‘제재를 통한 미국의 적국에 대한 대응법(CAATSA : Countering America's Adversaries Through Sanctions Act)’을 경고했다. 그러나 에르도안은 S-400 도입을 밀어붙였고, 튀르키예는 2019년 7월 JSF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했다.

이미 출고돼 미국에서 인수 작업이 진행되던 튀르키예 공군용 F-35A 6대는 모두 미국 정부 재산으로 압류됐고 미국에서 F-35 인수 교육을 받던 튀르키예 공군 장병들은 모두 추방됐다. 미국은 NATO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S-400 방공 시스템을 도입해 NATO 방공 작전 네트워크에 연동을 시도할 경우 이 시스템의 유지·보수를 위해 튀르키예에 파견될 러시아 기술자들이 NATO 방공 작전 네트워크에 접근해 민감한 정보를 유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러시아인들이 튀르키예에서 시험평가와 훈련을 빌미로 튀르키예 공군이 대량 보유 중인 F-16 전투기를 모의 표적 삼아 S-400 방공 시스템의 성능을 평가하고 미국산 전투기의 취약점에 대해서도 정보를 캐낼 가능성도 제기했다.

미국의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됐다. 에르도안의 지시에 따라 튀르키예군은 러시아 기술자들의 입회 하에 미국산 F-16 전투기를 표적기로 띄워 S-400 방공 시스템의 성능을 평가한 것이다. 미국에 대한 심각한 도발이었다.

에르도안의 지시로 튀르키예군이 시리아 북부 지역을 침공했던 ‘유프라테스의 방패 작전’도 문제가 됐다. 에르도안은 시리아 북부에서 창궐하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와 시리아 반군 등을 소탕한다며 시리아 북부 지역에 기갑부대를 파견했다. 사실상의 침공이었고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특히 튀르키예가 눈엣가시로 여기는 쿠르드족이 큰 피해를 보고 정착지를 잃었다. 결국 이러한 침공 행위는 유럽 각국의 튀르키예에 대한 제재로 이어졌고 튀르키예는 TF-X의 엔진으로 확정됐던 유로제트사의 EJ200 엔진 도입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당초 TF-X는 미국 록히드마틴, 유럽의 에어버스, 롤스로이스, BAE 시스템즈의 기술적 협력을 받아야만 개발이 가능했던 전투기였다. 그러나 CAATSA 제재와 유럽의 개별 제재로 인해 미국·유럽에서의 기술 도입은 어려워졌고 이 때문에 TF-X의 실현 가능성도 점점 요원한 꿈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르도안은 애초에 자신의 치적 사업으로 시작된 TF-X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TF-X의 체급을 키워 미국의 F-22급 대형·고성능 전투기를 개발하라고 관계 당국에 지시했다.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허르커스(Hurkus) 훈련기의 조종석에 탑승해 있는 모습. [AP]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허르커스(Hurkus) 훈련기의 조종석에 탑승해 있는 모습. [AP]

극단적인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를 거짓과 과장, 왜곡으로 포장하는 행위, 소위 말해서 ‘국뽕’은 대중을 기만·선동해 권력을 유지하는 어느 독재 정권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에르도안은 이 ‘국뽕’으로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장기 집권해 온 인물이었다. 에르도안은 과거 유럽과 중동 전역을 호령하던 강대국이었던 오스만 제국 시절을 상기시키며 안으로는 기업에 대한 증세와 서민에 대한 현금 살포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시리아, 리비아, 아제르바이잔 등 해외 전쟁에 개입하는 ‘강대국 코스프레’를 펴고 있다.

이 때문에 튀르키예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식료품과 생필품, 교통비는 세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며 민생은 그야말로 박살이 나고 있지만, 이른바 ‘국뽕’ 선동에 에르도안을 ‘술탄’처럼 떠받드는 극성 지지층 때문에 에르도안의 허세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TF-X 역시 그런 ‘국뽕 전략’의 일환이다.

튀르키예 방위사업청(SSB : Savunma Sanayii Başkanlığı)이 밝힌 TF-X의 성능은 그야말로 F-22급이다. 최대이륙중량 27톤급의 대형 기체에 미국 F110 수준의 자국산 터보팬 엔진이 들어간다. 자체 개발한 고성능 AESA 레이더와 최첨단 IRST(Infra-Red Search and Track)·EOTS(Electro-Optical Targeting System)는 미국 F-35 전투기가 구현하는 수준의 ‘센서 융합(Sensor fusing)’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최대 속도는 마하 2.0 이상으로 미국·중국의 스텔스 전투기와 대등 또는 그 이상의 기동 능력을 발휘하며, 튀르키예가 자체 개발한 다양한 무장을 탑재할 수 있다고 선전되고 있다.

물론 튀르키예 당국의 이러한 발표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항공기 설계와 관련된 약간의 전문 지식만 있어도 튀르키예 당국이 발표한 제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 설계 단계에서 복합소재나 경량화 관련 기술 적용 언급이 전혀 없었음에도 TF-X의 덩치는 F-15나 F-22보다 크지만 무게는 훨씬 가볍다는 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TF-X는 길이가 21m에 달해 미국의 F-15나 F-22보다 2m나 길고, 세계 최대의 스텔스기라는 중국의 J-20과 비슷한 덩치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TF-X는 그보다 작은 F-15E(36.7t), F-22(38t)는 물론, 같은 크기의 J-20(37t)보다 훨씬 가벼운 27.2t으로 선전되고 있다. 애초에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해 본 경험이 없으니 기본적인 중량 예측조차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조립 중인 튀르키예 5세대 스텔스 전투기 ‘TF-X’. [사진 튀르키예 방위사업청(SSB)]

조립 중인 튀르키예 5세대 스텔스 전투기 ‘TF-X’. [사진 튀르키예 방위사업청(SSB)]

엔진 역시 문제다. 튀르키예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F110 엔진을 조달해 TF-X 시제기에 적용하고 이후 자체 개발한 F110급 엔진을 TF-X 시제기와 양산기에 탑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튀르키예는 CAATSA 제재 대상국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F110 엔진을 사는 게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무기를 사려면 구매요청서를 미 국무부에 먼저 발송하고 행정부 검토를 거쳐 의회에 해당 안건이 보고된 뒤 의회로부터 승인이 나와야 한다. 수출 승인 여부는 수출업체가 공시 자료를 통해 발표하거나 미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 : Defense Security Cooperation Agency)에서 발표하는데, 미국은 단 한 번도 TF-X용 엔진 수출 승인을 발표한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튀르키예가 TF-X 시제기에 장착한 F110 엔진이 무단으로 전용(轉用) 된 것이라 보고 있다. F-16 전투기 대량 운용국인 튀르키예는 F-16과 함께 엔진도 면허 생산했는데, 현지 면허 생산 업체인 TEI(Tusaş Engine Industries)가 미국 허가 없이 무단으로 물량 일부를 빼내 TF-X 시제기에 장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계약 위반이자 불법 행위로 미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문제 삼을 경우 튀르키예 공군 주력 전투기인 F-16 계열 기체 245대 전량에 대한 미국의 후속 군수 지원이 전면 중단될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튀르키예는 2017년 설립된 신생 엔진 개발사 주관으로 F110 엔진의 카피 엔진 개발을 진행 중이지만 전투기용 터보팬 엔진 개발 경험이 전무한 튀르키예가 10년 안에 엔진을 개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전투기 생산 경력 반세기가 넘는 중국도 터보팬 엔진 개발에 20년 넘는 시간과 수십조 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였던 사례를 생각해 보면 튀르키예의 엔진 자체 개발 구상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허풍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튀르키예는 ‘공군력 붕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플랜 B’를 준비하고 있다.

내일 (下)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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