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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땔감은 떨어져도 불씨는 살려라” 미래 중국통 키워야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청산을 남겨 놓아야 땔나무 걱정을 안 한다(留得靑山在 不怕沒柴燒)

:중국 인재, 세대 교체할 젊은 ‘미래의 중국통’을 키워야 한다
요즘은 중국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드물다. 고등학교의 중국어 반 10개 중 2개만 남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시대도 변하고, 정세도 변한다. 계절이 바뀌어 따뜻한 봄날도 오겠지만, 겨울도 분명 또 온다. 지금 당장 땔나무가 필요 없다고, 기왕에 있던 나무를 베어버린다. 땔감 없는 겨울의 혹한은 생존조차 위협한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묘목을 심어야 한다. 젊은 중국 인재를 키워야 한다. 30년 전, 수교 직전에는 그래도 ‘누군가’는 중국 공부를 했었다. 이대로라면 수년 안에 그 ‘누군가’마저 싹 사라진다.

산에 큰비가 내리기 전, 누각엔 바람이 휘몰아친다(山雨欲來 風滿樓)

:징조는 늘 있다. 세밀한 관찰을 통해 미리 파악하고, 대비를 했어야 했다
산에 캠핑을 갔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시원하기까지 하다.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캠프촌은 너도나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점점 바람이 거세진다. 텐트를 휘감아 치더니 이제 큰 빗발을 뿌리며 재난을 걱정할 처지가 되어 버렸다.

중국과 한동안 행복한 동반의 시절을 보냈다. 이제 미국과 중국의 틈 사이에서 거센 비바람을 맞고 있다. 어쩌면 이 풍파가 더 세게, 더 오래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유령처럼 맴돈다.

그래도 미국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우방으로 인식되어왔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지금까지 그래왔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하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여러 배경 속에서 우리나라와의 더욱 긴밀한 관계를 원했고, 여기에 반도체 산업을 위한 제안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투자에 따른 보조금 약속이다. 미국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삼성과 SK는 이미 미국에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얼마 전 보조금 지급에 따른 조건이 알려졌다. 초과 이익 공유(최대 75%), 생산시설 접근권 제공(기술 유출 가능) 및 10년간 중국에 반도체 투자 금지다.

매체에서도 난리다. “이거 깡패네요”라는 방송진행자들의 발언도 있었다. 2등이 1등을 제치거나, 1등이 확실히 2등과의 차이를 벌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전략이 있다. 기술 혁신만으로는, 실력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승의 전략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미국은 자유무역을 제창하지만 때때로 보호주의 정책을 내놓는다. 중국의 보호무역을 비판해왔지만 이번에는 미국도 확실히 보호무역의 칼을 들었다. 이번 미국의 행위를 ‘깡패’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언급한 방송에서 전문가는 이 혹독한 현실에서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 보인다며 “중국의 경제가 살아나고 있고, 이게 우리의 희망이다”라고 견해를 밝힌다. 이 프로를 함께 본 친구가 “아니 중국을 그렇게 까고 사업들을 다 접더니, 인제 와서 중국이 돌파구라고요?”라며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그의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진국이 실제로 어떻게 부유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간략한 답은, 최근 개발도상국에 권고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통해서 현재의 위치에 이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 완전히 선진국이 되지 않은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이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며 우리에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단계에서는 어떤 정책과 제도를 썼는지를 잘 살펴보고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황런위(黄仁宇)의 만력15년(萬曆十五年)

:명나라의 멸망은 진작에 징조가 있었다
국가나 기업, 심지어 하나의 집안도 큰 변화 이전에 징조가 있다. 역사적으로 항상 징조는 있었다. 〈명대의 여러 사건들(明朝那些事儿)〉 이라는 인터넷 소설은 책으로 발간되어서도 베스트 셀러다. 작자는 명대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사실상 훌륭한 왕조였음을 주장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런위(黄仁宇)의 〈만력15년(萬曆十五年)〉이라는 명나라 역사서가 있다. 조용하고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시기 · 사건이지만, 사실 그때가 흐름이 바뀌는 변곡점이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만력 15년) 그해에는 일부 지방의 가뭄과 홍수도 있고 역병도 있었지만, 사실상 매우 평탄한 한 해였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들이 인과로 얽히는 시간이었다”라며 글을 시작한다.

명나라는 역사 기록상 숭정제 때 멸망했다. 그런데 그보다 60여년 전인 세종제(嘉靖 世宗帝)와 만력제(神宗 萬曆帝)때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멸망의 징조가 있었다. 가정(嘉靖) 시절은 “가정가정, 가가정정(嘉靖嘉靖,家家净净. 아! 가정, 가정의 시대여! 집집이 곳간은 쌀 한 톨 없이 깨끗하구나!)”라는 말이 시정에 돌았다고 한다. 이미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산에 있는 누각에 시원한 바람이 불든 큰비가 오든, 더 나쁜 게 더 큰 게 올 것을 늘 대비해야 한다.

비즈니스 현장은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商場如戰場)

:전투는 무기만으론 부족하다
제품력만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전략은 중국에서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다. 고 이건희 회장의 통찰력은 존경을 넘어 경외롭기까지 했다. 사장단 회의 때, 중국에 왜 진출하냐고 사장들에게 질문했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값싼 인건비 때문이라고 대답한 사장들을 호되게 야단친다. 당시 ‘중국에 들어가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재 때문이다’라고 했던 일화를 들었다. “한 명의 인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 글로벌 경쟁에서 기술과 제품의 경계마저 무너지는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불변하는 유일한 자원은 인재다.

잘라파고스(Jalapagos: Japan + Galapagos) 증후군

:제품 기술력 ≠ 시장 경쟁력. 제품력은 시장경쟁력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일본은 당시 최고의 기술력과 서비스를 갖추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지나치게 엄격한, 일반 소비자에게는 불필요한 과(過)표준도 많았다. 결국 1990년 이후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되고 시장도 잃었다. “기술은 좋은데 시장에서는 도태되는 이런 현상”에 대해 다케시 교수는 “잘라파고스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잘라파고스(Jalapagos)는 일본(Japan)과 남태평양에 있는 갈라파고스(Galapagos)의 합성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교류가 적어서 자연의 고유 생태계가 잘 보전되었기에 “살아있는 박물관과 진화의 전시장”이라고 불린다. 학술적으로 무한의 가치를 갖고 있지만, 오랜 고립으로 인해 외부의 환경, 동식물에 대해 면역력, 생존력이 매우 약하다고 한다.

비즈니스의 상품도 마찬가지다. “우리 제품은 기술적으로 최고인데… 중국 제품보다 우수하다!”만으로는 시장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 소비자의 취향과 해당 지역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기술에, 제품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도태되지 않고 지속 성장할 수 있다.

인재는 불확실성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자원이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기술과 제품 간의 경계선이 사라졌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다. 이건희 회장은 인재야말로 유일한 불변의 자원이라고 했다.

사례1)
경쟁사의 최고 인재를 빼내오는 것은 어떨까? 여기에도 전략이 있다.

모 회사가 중국의 외국경쟁사로부터 인재를 스카우트 했다. 당장 실적을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인재를 스카우트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2인자를 모셔왔다. 거액을 들여서, 원하지 않은 자를 데려왔다는 비난이 있었다. 스카웃을 추진했던 중국 CEO는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모르고 하는 얘기다. 어쩔 수 없이 2인자를 스카우트한 것은 맞다. 하지만 차선책도 나쁘지 않다. 그가 오면서 직원들도 함께 데려올 것이고 그러면 그 회사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 회사가 다시 복구하는데 1년, 아니 최소한 반 년은 걸려야 할 수 있을 거야 ….”

중국에서는 대체로, 책임자급이라면 본인이 퇴사를 할 때 팀 동료를 줄줄이 달고 나온다. 거래선과 정보 및 인맥 등 많은 것들이 따라오는 이들과 함께 따라온다. 한국인 중국 CEO는 이런 중국문화를 이해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그 외자 경쟁사를 제치는 데 큰 몫을 해냈다.

사례2)A사는 중국에 대형 공장을 건설했다. 중국 정부로부터 승인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중국 국내기업이 끝판에 가서 심하게 반대했다. 이유를 알고 보니 회사의 고급 인력들이 A사로 빠져나갈 것을 염려한, 당시 중국최대 국영기업 B사의 사장이 강력하게 반대를 했다. A사는 당시 인력 수급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파악했기에 B사의 인력에 관심이 없었다. “그 회사 오버하네! 우린 그쪽 인력에 아무 관심 없어!” A사는 괜히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A사의 대표는 B사에게 우리의 입장을 혹 모를 시비를 염려해서 은밀하게, 분명하게 그리고 믿을 만하게 전달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결국은 경쟁사인 중국(국영)기업 CEO와의 자리를 만들어 냈고 중앙 정부 관리도 배석했다. “우리 회사는 귀사의 직원을 절대 채용하지 않겠다. 후에 모르고 채용된 이가 있다면 무조건 퇴사 조치할 것을 약속한다. 사장님도 귀사 직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조치하셔도 된다”. 이후로 설립은 물론, 시장 진입도 순조로웠다. 그 회사와의 많은 협력을 통해 중국 내 최고 점유율을 서로 향유할 수 있었다. A사의 초기 중국 진출의 성공은 단지 제품력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예 진입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식적이지도 않은, 그렇다고 비공식적이지도 않은 “중국 특색”의 합의 방법을 찾아냈었기에 가능했다.

글로컬(Global + Local)이 답이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글로벌하게 전략을 짜고, 현지에 맞게 실행하라)

:전략은 넓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실천은 현지 전문가를 활용해야
위의 사례는 글로벌 경험이 풍부한 리더인 대표와 중국을 아는 인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찌 보면 비공식적인 만남을 통해 성사되었다. 불법은 아니나 드러나는 공적인 행위가 없었다. 이런 미묘한 일들은 중국인들이 하기에는 거북스럽다. 행여 불법에 연루될까 두려워한다. 회사를 위해서 내 한 몸 바쳐서, 심지어 감옥에까지 간다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절대 기대할 수 없다. 중국인들의 이런 경향은 외국회사에 대해 차별적이지 않다. (만약 회사를 위해 법적인 처벌도 받는 사례가 있다면, 그건 다시 잘 들여다봐야 한다. 다른 이유가 분명 있다!). 중국 내 한국기업이라면 이런 일은 한국인에게 맡겨야 한다.

땔나무는 떨어져도 불씨는 이어져야 한다(薪盡火傳)

:영어를 공부한다. 중국어가 아직은 서투른 중국 주재원조차도
새로 부임한 후배가 말한다. “주재 나온 거 환영한다고요? 아니에요. 밀려난 거예요. 좋은 시절 다 가고, 실적은 안 나오고…. 고생 끝에 낙(樂)이 온 게 아니고, 고생 끝에 낙(落)이 온 거지요”. 승진에서도 밀리고, 좋은 주재 지역도 못 가고 제일 힘든 곳에 왔다는 푸념이다.

심지어 현재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영어 열풍”이 불고 있다는 말마저 돈다. 영어를 공부한다는 사실은 절대로 나쁘지 않다. 그런데 “중국어와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는 말고, 영어만”이라면 큰 문제다. 문제와 마주칠 때 해결책은 당연히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짧은 안목으로 목전의 상황만 해결하려다 보면 위기를 부른다. 국가와 기업이라면 더더욱 갈증을 풀기 위해 독이 든 물을 마시게(飮鴆止渴)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중국 인력이 절대적으로 줄었다. 더욱 암담한 것은 그나마 남아 있는 소수 중국 전문가들을 충원할 젊은 인재들도 씨가 말라간다. 땔감은 일시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불씨는 반드시 살려야 하는데, 안타깝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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