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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족과 재벌이 이 집 단골…샤넬도 반한 '금박 장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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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가업 잇는 문화재 장인 

 김기호(왼쪽)·박수영 금박장 부부가 서울 종로구의 작업실에 걸린 녹원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 녹원삼은 조선시대 세자빈·공주·옹주의 예복으로 쓰였다. 김현동 기자

김기호(왼쪽)·박수영 금박장 부부가 서울 종로구의 작업실에 걸린 녹원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 녹원삼은 조선시대 세자빈·공주·옹주의 예복으로 쓰였다. 김현동 기자

붉은 댕기 위에 금박풀을 입힌 문양판을 두드리고 금박을 올리자, 금빛 복(福)자가 선명히 드러난다. 160년간 한국 전통 예복에 금빛 장식을 입혀온 이곳에선 모든 작업이 수작업이다. 건조시킨 민어 부레(어교 재료)를 끓이고 삼베로 걸러 천연 금박풀을 만드는 작업부터, 콩기름에 데친 나무판에 과꽃을 조각하는 작업까지 일일이 장인 손을 거친다.

조선 철종 때부터 5대에 걸쳐 왕실 장인 가문의 역사를 잇는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55) 장인, 금박장 이수자 박수영(55)씨 부부를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 금박연(金箔宴)에서 만났다. 금박장은 얇은 금박을 이용해 직물 위에 문양을 찍는 기술이다. 조선 철종 때 왕실 장인이던 김완형이 김 장인의 고조부, 순종 때 왕실장인이던 김원순이 증조부다. 부친(김덕환)은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보유자였다. 집안이 대를 이어 조선 왕족과 영부인의 한복 금장을 담당했다. 재벌가도 금박연에 예복 장식을 맡긴다.

김 장인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 “고종의 손녀인 이해경 여사 저고리에 금박으로 과꽃 장식을 한 일”을 꼽았다. 과꽃은 조선 왕실 의복에 가장 널리 쓰인 문양이다. 그는 “지금은 왕실이 없어졌지만, 고조부께서 시작한 왕실 장인의 역사를 이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가업을 이은 건 아니다. 김 장인은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삼성전자에 들어가 산업용 로봇을 설계했다.

꽃무늬와 복(福)자를 금박으로 부금한 것이 특징이다. 김현동 기자

꽃무늬와 복(福)자를 금박으로 부금한 것이 특징이다. 김현동 기자

금박을 본격적으로 배운 건 서른부터다. 김 장인은 “아버지 병환으로 가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회사를 그만두고 금박을 시작했다”고 했다. 금박장 보유자가 되기까지 20년 걸렸다. 평생 봐왔던 일이라 가업을 잇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문양판을 톱질할 동안 나무를 잡았고, 끝나면 뒷정리를 했다”고 말했다. 이수자인 아내 박씨는 “이 집에 시집을 오는 바람에 덩달아 장인이 됐다”며 웃었다.

박씨는 남편을 스승 삼았지만, 이미 청출어람이다. 그는 지난해 공예 후원사업을 하는 비영리재단 예올과 샤넬이 함께 뽑은 ‘2022년 올해의 장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샤넬은 그가 만든 금박 장식 모빌과 가리개 등을 전시회를 열어 선보였다. 그는 “가구나 생활용품에도 얼마든지 금박을 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부부는 가장 까다로운 작업으로 어교 다루는 일을 꼽았다. 박씨는 “금박용 풀은 적절한 농도가 아니면 작업 후에 선이 선명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나오거나 형태가 오랜 시간 유지되지 않고 금방 망가질 수 있다”고 했다. 김 장인도 “직물 위에 문양판을 찍고 금박을 올리는 작업을 5초 안에 끝내야 한다. 풀을 칠할 때도 미리 발라 놓은 쪽 농도가 순식간에 바뀌어 작업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김 장인 꿈은 자신의 작품이 후대에 보물로 남는 것이다. 현재 먹으로 염색한 비단에 금박으로 별자리를 새겨 넣은 천문도를 만들고 있다. 그는 “일단 비단에 작업하고, 최종적으로는 국가무형문화재 석장(石匠)들과 협업해 조각한 돌에 금박을 입히는 석각본을 만들고 싶다”며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조선 태조 때 만들어진 별자리가 새겨진 돌)의 금박 버전을 만들어 후대에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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