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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 칼럼

굴욕 외교의 수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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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중권 광운대 교수

진중권 광운대 교수

WBC 야구 한일전 결과보다 참혹했다. 아낌없이 나눠주고 받아온 거라곤 달랑 ‘오므라이스’ 한 그릇. 외무부 장관은 ‘우리가 물컵의 반을 채웠으니 일본이 나머지 반을 채워줄 것’이라 했으나, 일본 정부는 외려 ‘나머지 반마저 채워오라’는 태세로 독도, 위안부, 지소미아, 레이다 조사, 오염수 문제 등 줄줄이 청구서를 내밀었다.

삼일절에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내건 사내도 나타났다. 이 전위 예술가는 대통령의 삼일절 연설에서 영감을 받았노라고 밝혔다. 방일 중 대통령은 게이오 대학 연설에서 오카쿠라 텐신을 인용했다. “조선 반도는 유사 이래 일본의 식민지”, “단군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동생의 자식”이라며, 조선 정벌의 필요성을 주장한 인물이다.

‘일본이 반 채워줄 것’ 기대와 달리
일본은 ‘나머지 반도 채워 오라’ 식
모든 거래 다급한 쪽이 지기 마련
뭔가 보여주겠다는 조급증 아닌가

두 민족 간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태의 깊은 바닥에는 실은 한일 양국 우익이 공유하는 세계관이 깔렸다. 정진석 의원의 발언은 그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우리가 약해서 망했는데 왜 그 탓을 일본에게 하느냐는 얘기다. 이는 한일합방이 합법적이었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기시다 총리는 징용공 문제를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에 관한 조치”라 불렀다. 당시엔 조선인도 일본인이었으니 일본이 해야 할 것은 “사과나 배상이 아니라 감사와 위로”(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 논설위원)라는 것이다. 그 인식을 한국 정부가 공인해준 꼴이 됐다.

윤 대통령의 친구 석동현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2019년 일본 우익들과 함께 ‘한일 법률가 공동성명’에 참여한 바 있다. 그 내용은 ‘한일합방이 불법’이라는 한국 대법원의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한일관계에 큰 균열을 일으키고 전후 최악이라고 평가될 만큼 한일관계의 악화를 가져온 중대한 요인이 되었다.”

‘사과’의 독특한 용법도 한일 우익의 공용어에 속한다.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반성과 사과를 표명했다”(대통령). ‘사과’란 원래 ‘앞으로는 그 짓을 안 하겠다’는 약속이나, 한일 우익은 그것을 상황의 필요에 따른 일회적 제스처로 본다. 사실 “수십 차례”의 사과는 사과의 충분함이 아니라 그 ‘약속’의 반복적 파기를 반증한다.

일본 정부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말로 사과를 갈음했다. 그런데 거기에는 “미래 세대에 사죄의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는 아베 내각의 인식도 포함된다. 진정한 ‘사과’라면 반성과 사죄의 입장이 후대로까지 이어지게 해야 하나, 일본은 그것을 외려 후대에게는 기필코 면해 줘야 할 ‘숙명’으로 이해한다. 기시다 정권은 일본 역사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에 관련해 ‘종군’이라는 말을, 징용공 문제에서는 ‘강제 연행’이나 ‘강제 동원’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있다. 참고로, 석동현 사무처장이 참여한 2019년 공동성명의 일본 측 대표는 역사 왜곡을 주도하는 극우단체(‘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회장이다.

‘사과’에 대한 이 독특한 관념은 사과를 요구하는 쪽이 잘못이라는 전도된 인식으로 이어진다. “식민지배 받은 나라 중 사죄·배상 악쓰는 나라 한국뿐이다”(석동현). 사실도 아니다. 리비아는 이탈리아(2008), 케냐는 영국(2013),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2013)로부터 배상을 받아냈고, 나미비아는 목하 독일과 협상 중이다.

이른바 ‘대승적 결단’의 심리적 기제는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보수 엘리트들 사이에 널리 공유되는 멘탈리티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자명한 진리이기에, 그것을 비판하는 이들은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 결과 국민의 60%가 졸지에 대통령의 적으로 몰려버렸다.

왜 그렇게 서둘러야 했을까? ‘미국의 압력’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 대통령이 사용한 ‘생존’이라는 말이 힌트가 될까? 지금 보수 엘리트층은 미·중 갈등을 거의 종말론적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온 세계가 곧 미·중 전쟁으로 아마겟돈이 될 터.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서둘러 미국(+일본) 편에 확실히 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필요도 있을 게다. 집권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지지율은 30%대 언저리. 압도적 의석을 가진 야당 때문에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집권 1년 동안 수사나 감사 말고 대체 뭘 했냐?’ 이 질문에 답하려면 뭔가 보여줘야 하기에 국민과 야당의 의견도 묻기 전에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대승적 결단’을 저질러 버린 것이다.

모든 거래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다급한 쪽. 일본은 윤석열 정부가 다급해한다는 사실을 뚫어 보고 있었다. 상대가 지레 호들갑을 떠니 굳이 양보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컵의 절반을 채웠으니, 일본이 나머지 반을 채워주리라는 소망. 곧 방한한다는 기시다가 이 천진한 동심(童心)에 상처를 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