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현호의 법과 삶

초등생 무상급식, 노인 무임승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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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학교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일부 여론을 빌미로 찬반 투표를 했으나 개표조차 못 하고 물러나는 촌극을 벌였다. 무상급식 전면 시행 후 초등학교 교사들이 “무상급식 받던 학생들이 눈치 보지 않고 밥을 먹는 모습이 너무 좋다”라며 반겼다. 무상급식은 사회경제적 지불유예 기간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주어진 헌법상 권리이다.

무상급식이라는 표현 자체가 옳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군인에게 급식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것처럼 헌법상 교육의 의무를 이행하는 청소년들에게 학교 급식은 시혜로 베푸는 무상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 준비하는 청소년기
사회적인 의무 다 마친 노년기
각각 지불유예, 지불면제 기간
세대갈등 부추기는 행위 곤란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최근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가 사회적 이슈다. 서울시는 2022년 서울 지하철 손실금 1조8235억원 중 무임승차 손실금이 전체 손실금의 24%에 이르는 4458억원이라고 발표했다. 적자의 주범이 마치 노인인 것처럼 몰고 있고, 언론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확대 재생산하여 세대 간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 눈칫밥 먹던 청소년들과 같이 노인들은 주위 눈치를 보며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은 몇 명이 타든 비용이 더 들어가지 않는 대표적 매몰비용 중 하나다. 운임료를 할인하더라도 가동률을 높여야 적자 폭이 줄어든다. 미국 미주리주에서는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게 하고, 독일은 일반 시민들에게 월 1만원짜리 대중교통 티켓제를 도입, 유동인구를 늘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사회는 청년기를 거쳐 성년기·노년기로 이어지는 생명체이다. 베짱이처럼 한여름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와 같다. 심리사회학자 에릭 에릭슨은 저서 『유년기와 사회』에서 청소년기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지불유예 기간’이라고 정의했다. 어느 사회든 사회경제적으로 미숙한 청소년들에게 급식비·교통비를 지불유예 시켜준다. 그 기간에 충분한 교육 기회를 부여받아 사회경제적 한계효율을 더 높인 후 성년기에 들어서 근로·납세·국방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유예해 준 사회에 그 이상 지불한다. 그 돈으로 도로·철도·공항·항만·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지불을 마치고 노년기에는 지하철 이용료가 면제되는 사회경제적 지불면제 시기에 들어선다.

아이를 낳고, 청소년기에 교육받고, 성년기에 열심히 일하는 동기는 노년기에 안정적이고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노년기 삶의 가치가 무시된다면 출산·교육·근로를 할 의미가 없어지게 되고 사회는 퇴보한다.

평균수명이 늘어 노년기 나이를 연장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 중 하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접근 방식이 사회적 설득과 합의가 아닌 신구 세대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식으로 진행한다면 사회통합 기능을 해쳐 득보다 실이 많다.

노인들에게 단순 지하철 무임승차를 넘어 교통 이용 무상 쿠폰을 지급하여 자주 움직이게 하면 건강 유지, 우울증 예방 등으로 연간 100조가 넘는 국민건강 보험료 중 노인진료비 상당액을 줄일 수 있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정동영 선거대책위원장은 “60대 이상은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어쩌면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집에서 쉬셔도 되고”라고 발언하였다가 사임했고, 결국 2007년 대선에서 크게 패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곧 1000만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에서 노년기는 퇴장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미래 신성장 동력 산업이다.

노년기를 대상으로 한 금융상품, 제약, 의료기기, 건강보조식품, 실버타운, 지역관광산업 등 실버산업을 활성화해 경제를 선순환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재활의학·정신건강의학 등에서 노년기의 비중이 더 커지고 있고, 그 중 노화방지 연구는 과학을 발전시킨 연금술과 같이 현대의학에서 가장 각광받는 분야이다.

고려장이 없어진 에피소드가 있다. 늙은 어머니를 지게에 태워 산에 버리고 내려오려는 데 이를 본 손자가 “저 지게 다음에 아버지한테도 써야 하니 가져가야지요”라는 말을 듣고 아들이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는 일화가 있다.

청소년들이 눈칫밥 먹지 않고, 노인이 떳떳하게 다닐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내는 이유이다. 그 많은 세금을 엉뚱한 데 쓰고 노소간 갈등을 유발해 쉽게 정치하려는 사람들부터 집에서 쉬게 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한다.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