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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영방송 독립성과 공정성 해칠 방송법 강행 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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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이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를 의결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이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를 의결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 상임위 단독 처리, 방송법 본회의 직회부

“공영방송을 ‘민주당 방송’으로 영구 장악 시도”

더불어민주당이 그제 국회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를 변경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본회의로 직회부했다. ‘검수완박’ 때처럼 여당 의원들이 전원 퇴장한 상태에서 자기 당 출신의 무소속 의원을 투입하는 꼼수로 표결을 강행했다. 이로써 방송법 개정안은 여당 의원이 위원장인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직행하게 됐다.

입법 폭주를 감행한 것도 문제지만 개정안의 내용은 더 큰 문제다. 각각 11명(KBS)과 9명(MBC)인 공영방송의 이사 수를 21명씩으로 늘리는 게 핵심인데, BBC(14명)와 NHK(7∼10명) 등 선진국의 공영방송보다 대폭 증원하려는 이유가 수상하다. 겉으로는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지만 검은 속내가 빤히 보인다.

이사회 추천을 국회(5명), 직능단체(6명), 학회(6명) 등이 하도록 했는데, PD연합회 등 직능단체와 방송·미디어 학회 중엔 친민주당 성향을 보여 온 곳이 많다. 벌써 “민주당이 추천권을 주려는 직능단체와 학회는 언론단체를 가장한 정치단체”(MBC 제3 노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영방송을 ‘민주당방송’으로 만들어 영구적으로 장악하려는 악독한 시도”(미디어연대)라는 비판까지 불거졌다.

공영방송이 정권에 따라 좌지우지된 측면도 없진 않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청산하고 공영방송을 시민사회에 돌려주자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사 추천 자격을 가진 단체의 대부분이 한쪽으로 치우친 상황에서 이 같은 민주당식의 방송법 개정은 오히려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

본회의로 직행했다지만 민주당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여당 협조 없이 민주당 단독으로 강행처리한 법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행태는 민주당이 여당 시절 친여 방송의 혜택을 충분히 봐놓고 정권이 바뀌니까 공영방송 자체를 흔들려고 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민주당이 공영방송 개혁을 진심으로 원했다면 2016년 당론으로 채택한 방송법 개정을 추진했어야 한다. 여야가 7 대 6으로 이사를 추천하고 사장은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선임토록 했는데, 야당이 반대하는 인물은 사장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독립성 보장에 효과가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개혁안을 팽개치고 전 정부가 임명한 KBS·MBC 사장을 힘으로 내쫓았다. 그래놓고 이제는 자기 편 사람들로 채워진 직능단체와 학회 등을 이용해 독립성과 공정성이 생명인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들려 한다. 거대 야당은 이제라도 민주주의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멈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