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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으로 끝냈다, 일본 야구만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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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9회초 오타니 쇼헤이(29·일본)가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에는 마이크 트라우트(32·미국)가 배트를 들고 등장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이도류’ 오타니와 미국의 대표 타자 트라우트의 맞대결. 전세계 야구팬들은 숨죽인 채 두 선수의 대결을 지켜봤다.

오타니는 시속 161㎞의 강속구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그리고는 풀카운트에서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슬라이더로 트라우트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스토리였다. 오타니의 신화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일본이 22일(한국시간) 열린 WBC 결승전에서 미국을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3번째 정상 등극이다. 9회초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가운데)가 동료들과 우승의 감격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이 22일(한국시간) 열린 WBC 결승전에서 미국을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3번째 정상 등극이다. 9회초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가운데)가 동료들과 우승의 감격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은 2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과의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3-2로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오타니의 활약이 눈부셨다.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한 오타니는 3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그리고 경기 중반부터는 더그아웃과 불펜을 분주히 오갔다. 구원 등판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오타니는 1라운드 중국과의 개막전과 8강 이탈리아전에서 선발 등판했다. 소속팀 에인절스와 협의해 이후에는 등판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결승전, 그것도 한 점 차의 급박한 상황에서 그는 마무리 투수로 등장했다.

MVP 트로피를 안아 든 오타니. 이번 WBC에서 투수 겸 타자로 맹활약했다. [AP=연합뉴스]

MVP 트로피를 안아 든 오타니. 이번 WBC에서 투수 겸 타자로 맹활약했다. [AP=연합뉴스]

오타니는 선두타자 제프 맥닐에게 볼넷을 내주고 불안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무키 베츠를 2루수 방면 병살타로 잡아냈다. 다음 타자는 미국의 간판 타자이자 에인절스 동료인 트라우트. 오타니는 시속 161㎞ 빠른 공으로 트라우트를 압박한 뒤, 풀카운트에서 140㎞짜리 슬라이더를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았다. 일본 선수들은 모자와 글러브를 집어 던지고 환호하는 오타니를 향해 뛰어들었다.

오타니는 2013년 일본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단하며 ‘이도류’에 도전했다. 프로 무대에서 투수와 타자를 겸업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지만, 오타니는 해냈다. 2018년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뒤에도 ‘투웨이’를 이어갔다. 첫해 아메리칸리그(AL) 신인왕을 차지했고, 2021엔 투수로서 9승, 타자로서 46홈런을 터뜨려 MVP에 올랐다. 지난해엔 베이브 루스 이후 104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홈런(15승·34홈런) 기록을 달성했다

오타니는 첫 출전한 올해 WBC에서도 두 개의 칼을 휘둘렀다. 타자로는 타율 0.435(23타수 10안타)에 1홈런 8타점 9득점을 기록했다. 투수로는 3경기에서 2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86을 기록했다. WBC 올스타 트로피 2개(투수·지명타자)를 거머쥐었다. 당연히 MVP도 오타니의 차지였다. 오타니는 “정말 꿈꾸던 순간이다. 일본 선수들과 함께 해 즐거웠다”고 말했다.

오타니는 실력은 물론 인성까지 갖춘 걸로도 유명하다. 고등학교 시절 계획표에는 몸 만들기, 제구, 구위 등 기술적인 내용 뿐 아니라 ‘인간성’과 ‘운’도 있었다. 인간성 항목엔 감성·배려·감사·예의 등이 포함됐고, 운에는 인사하기·쓰레기 줍기·심판을 대하는 태도 등을 적어놨다. 오타니는 “누군가가 버린 운을 줍는다는 생각으로 구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고 설명했다.

1라운드 기간엔 대부분 아마추어로 구성된 체코 야구 대표팀을 언급하면서 소셜미디어에 “Respect(존경)”라고 적었다. 그는 또 체코 선수들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자신을 상대로 스트라이크 아웃을 잡아낸 체코 투수가 내민 공에 사인까지 해줬다. 팀원들을 독려하는 것도 오타니의 역할이었다. 평소 조용한 성격과는 달리 WBC에선 헬멧을 벗어던지는가 하면 더그아웃을 향해 세리머니를 크게 했다. 결승을 앞두고선 “(미국 선수들이 대단하지만)선망하지 말자. 선망하면 상대를 이길 수 없다. 최고가 되기 위해 모였으니, 오늘 하루만큼은 이기는 것만 생각하자”고 했다.

경기가 끝난 뒤엔 모범생답게 겸손한 자세로 인터뷰했다. 그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대만·중국 등 아시아와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야구가 더욱 사랑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 열도도 열광했다. 일본 포털 사이트 야후 재팬이 실시한 ‘WBC에 대한 점수는’이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7.6%는 “100점”이라고 답했다. 일부 스포츠매체는 일본 대표팀의 우승 직후 호외를 발행했다.

오타니는 올 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실력과 잠재력·스타성을 모두 입증한 만큼 천문학적인 규모의 계약을 맺을 것을 보인다. 미국 ESPN은 “오타니가 MLB 최초로 5억 달러(약 6000억원)를 돌파하는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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