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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그만두고 가업의 길로…샤넬도 인정한 금박 장인 부부 [가업 장인을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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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댕기 위에 금박풀을 입힌 문양판을 두드리고 금박을 올리자 찬란한 금빛의 복(福)자가 선명히 드러난다.

160년 간 한국 전통 예복에 금빛 장식을 입혀온 이곳에선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건조시킨 민어 부레(공기주머니)를 끓이고 삼베로 걸러 천연 금박풀을 만드는 작업부터 콩기름에 데친 나무판에 과꽃을 조각하는 작업까지 일일이 장인의 손을 거친다.

조선 철종 때부터 5대에 걸쳐 왕실 장인 가문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55), 금박장 이수자 박수영(55) 부부를 17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 금박연(金箔宴)에서 만났다.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인 김기호 박수영 부부가 17일 서울 가회동 작업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김현동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인 김기호 박수영 부부가 17일 서울 가회동 작업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김현동 기자

금박장은 직물 위에 얇은 금박을 이용해 다양한 문양을 찍어내는 기술이다. 김기호 장인은 조선 철종 때 왕실 장인이었던 김완형을 고조부, 순종 때 왕실장인이었던 김원순을 증조부로 뒀다. 부친 고 김덕환 씨는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보유자다. 이들은 대를 이어 조선 왕족과 영부인들의 한복 금장을 담당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재벌가도 금박연에 예복 장식을 맡긴다.

김 장인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 "고종의 손녀인 이해경 여사의 저고리에 금박으로 과꽃 장식을 해준 일"을 꼽았다. 국화과의 꽃인 과꽃은 조선 왕실 의복에서 가장 널리 쓰인 문양이다. 그는 "지금은 없어진 왕실이지만 고조부께서 시작한 왕실 장인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부터 가업을 이어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김씨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삼성전자에 들어가 산업용 로봇 설계 일을 했다. 금박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 그는 서른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금박을 시작했다"고 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로 인정되기까지는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씨가 17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에서 직물에 금박을 입히는 모습. 김현동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씨가 17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에서 직물에 금박을 입히는 모습. 김현동 기자

평생 금박 일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란 김씨가 가업을 잇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문양판을 톱질할 동안 나무를 잡았고 끝나면 뒷정리를 했다"고 말했다. 그의 배우자이자 금박장 이수자인 박수영 씨는 "이 집에 시집을 오는 바람에 덩달아 장인이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결혼하면서 온 식구가 같이 살았다. 집안에 작업실이 있었기 때문에 10년 넘게 시부모가 금박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남편을 스승 삼았지만 이미 청출어람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지난해 공예 후원 사업을 하는 비영리재단 예올과 샤넬이 함께 뽑은 '2022년 올해의 장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샤넬은 전시회를 열고 그가 만든 금박 장식을 입힌 모빌과 가리개 등을 선보였다. 그는 "금박은 왕실 예복에만 쓰이는 장식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가구나 생활용품에도 얼마든지 금박을 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인 김기호·박수영 부부가 17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에서 한복에 금박을 입히고 있다. 김현동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인 김기호·박수영 부부가 17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에서 한복에 금박을 입히고 있다. 김현동 기자

두 장인은 가장 까다로운 작업으로 어교(민어 부레를 끓여서 만든 접착제)를 다루는 일을 꼽았다. 박씨는 "금박용 풀은 농도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금박용으로 적절한 농도가 아니면 작업 끝난 후에 선이 선명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나오거나 형태가 오랜 시간 유지되지 않고 금방 망가질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어교는 초단위로 점도가 바뀐다"며 "직물 위에 문양판을 찍고 금박을 올리는 작업을 5초 안에 끝내야 한다. 풀칠을 할 때도 미리 풀을 발라 놓은 쪽의 농도가 순식간에 바뀌어 작업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의 부친도 생전 인터뷰에서 "50여년 간 풀을 다뤘지만 섬유의 특성에 맞게 재래 풀을 다루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김씨는 "할아버지도 풀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풀칠하던 붓을 던지기도 했다"며 웃었다.

김씨의 꿈은 자신이 만든 작품이 후대에 보물로 남겨지는 것이다. 그는 먹으로 염색한 비단에 금박으로 별자리를 새겨 넣은 천문도를 만들고 있다. 그는 "일단 비단에 작업을 한 뒤 최종적으로는 국가무형문화재 석장(石匠)들과 협업해 조각한 돌에 금박을 입힌 석각본을 만들고 싶다"며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조선 태조 시기 만들어진 별자리가 새겨진 돌)의 금박 버전을 만들어 후대에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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