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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우크라에 '핵 요소' 갖춘 무기 줬다"…푸틴 핵무기 명분 쌓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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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영국이 열화우라늄탄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겠다고 밝히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상응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경고했다. 사진은 푸틴 대통령이 21일 모스크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영국이 열화우라늄탄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겠다고 밝히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상응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경고했다. 사진은 푸틴 대통령이 21일 모스크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영국이 핵 요소가 포함된 탄약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다면서, 러시아가 핵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영국은 "러시아가 표준 무기를 의도적으로 핵무기로 왜곡하는 허위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웃기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21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영국 국방부 부국장의 입을 통해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탱크뿐 아니라 고농축 우라늄이 결합된 포탄을 공급한다는 사실이 인정했다"면서 "이는 서방이 핵 요소가 있는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배치하기 시작했단 의미고, 이런 일이 발생하면 러시아는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지적한 '고농축 우라늄이 결합된 포탄'은 열화우라늄탄을 의미한다. 앞서 20일 애너벨 골디 영국 국방부 부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챌린저2 전투 전차의 탄약 일부는 열화우라늄탄"이라며 "현대 전차와 장갑차를 물리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열화우라늄탄은 핵무기나 원자로용으로 농축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열화우라늄을 탄두로 해서 만든 전차 포탄으로, 납보다 밀도가 1.7배 높아 장갑 관통용으로 많이 쓰인다. 철갑탄에 비해 2.5배 가량 관통력이 높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일부 회원국뿐 아니라 러시아도 열화우라늄탄 '스비네츠(Svinets)'를 자체적으로 비축 중이다. 미국이 1991년 걸프전 때 열화우라늄탄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영국의 발표에 "핵 요소가 있는 무기"라며 각을 세웠다.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열화우라늄탄 지원을 '서방의 핵 위협'으로 보고, 자신들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성명에서 "영국의 결정으로, 서방과 러시아의 핵 충돌이 또 한 걸음 좁혀졌다"며 "물론 러시아도 이에 응답할 것을 갖고 있다"고 경고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영국의 국제법 위반이며, 이는 영국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핵전쟁엔 결코 승자가 있을 수 없다. 핵전쟁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영국에서 훈련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챌린저2 탱크 위에 깃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영국에서 훈련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챌린저2 탱크 위에 깃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에 대해 영국 국방부는 "이는 표준 부품"이라며 "(러시아의 주장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국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영국 육군은 지난 수십 년간 열화우라늄을 장갑 관통용 포탄으로 사용해 왔다"며 "그것은 표준 부품이다. 러시아도 이를 알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정보를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직 영국 육군 전차 사령관이자 화학무기 전문가인 해미시 드 브레튼-고든 대령은 BBC에 "푸틴 대통령의 왜곡 발언은 고전적인 수법"이라며 "챌린저2 탱크에 사용되는 탄환엔 미량의 열화우라늄만 포함돼 있는데, 이를 핵무기와 어떻게든 연관 지으려는 시도가 우습다"고 말했다.

다만 열화우라늄탄은 핵분열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피폭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열화우라늄탄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견해가 엇갈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수십 년에 걸친 연구에서 열화우라늄탄이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영국왕립학회도 실제 열화우라늄탄에 노출된 전차 안 군인들이 살아남은 사례를 들며,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반면 열화우라늄탄이 인간의 면역체계를 파괴하며 선천적 기형과 불임 등 치명적인 질병을 초래한다는 보고도 나온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열화우라늄탄을 두고 "화학적 및 방사선학적으로 독성이 강한 중금속"이라면서 "일반적으로 피부 염증과 신부전, 발암 위험을 키울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난해 보고했다. UNEP는 "열화우라늄탄의 방사능보다 화학적 독성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짚었다.

반핵단체인 핵무기폐기캠페인(CND)도 영국의 열화우라늄탄 공급 결정에 대해 "분쟁 중인 사람들에게 환경 및 건강을 해치는 또다른 재앙"이라며 지원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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