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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주의 당부’도 허사, 낡은 헬기까지…진화 악조건 속 올해 산불 300건

중앙일보

입력

지난 16일 경북 상주시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하자 진화 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사진 산림청]

지난 16일 경북 상주시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하자 진화 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사진 산림청]

'국지적 강한 바람' 산불 확산 위험 높아 

강원 화천군에서 지난 21일 발생한 산불이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산림 당국은 이날 오전 6시30분쯤 화천군 하남면 안평리 군 사격장 산불 현장에 진화 헬기 8대를 투입해 불을 끄고 있다.

화천 산불은 지난 21일 오전 11시29분쯤 사격 훈련 중 발생했다. 불이 난 곳은 군사지역이라 인력 투입이 어려워 곳곳에 화선(火線)이 남아 있다. 산림 당국은 현재까지 잡풀 등 2㏊를 태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건조한 날씨에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국지적으로 강한 바람이 불면서 산불 확산 위험까지 높아진 상황이다. 더욱이 올해 들어 발생한 산불이 300건이 넘는 등 발생 빈도가 잦아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산림당국은 "제발 쓰레기 등을 태우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지만, 산불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헬기도 낡아 산림당국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3시16분쯤 경북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뉴스1]

지난 2일 오후 3시16분쯤 경북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뉴스1]

논·밭두렁, 쓰레기 소각 산불 '84건' 달해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20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301건에 이른다. 이는 지난 10년 평균 191건과 비교해 58%나 증가한 수치다. 이 중 논·밭두렁과 쓰레기 등 소각으로 난 산불은 84건으로 전체 28%에 달했다.

산림 당국은 농촌에서 본격적인 영농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라 논·밭두렁, 고춧대 등 영농부산물과 쓰레기 소각행위로 인한 산불 발생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전 11시27분쯤 전남 영광군 염산면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밭에서 농업부산물을 소각하던 중 산으로 번졌다. 같은 날 낮 12시55분쯤 경남 산청군 생비량면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도 대나무 소각 중 불씨가 튀면서 산으로 번졌다.

지난달 31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에서 산불이 발생하자 산림청 헬기가 진압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1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에서 산불이 발생하자 산림청 헬기가 진압하고 있다. [뉴스1]

남성현 산림청장, 직접 산불감시원 나서

영농부산물 소각 등으로 인한 화재가 속출하자 산림청장이 직접 현장을 돌며 산불감시원 역할에 나섰다. 남성현 청장은 지난 18일 충북 옥천군 신흥1리 다목적마을회관, 원동1구 마을회관 등을 방문해 산불을 조심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어 옥천묘목시장을 찾아 산불 조심 캠페인을 펼쳤다. 지난 16일엔 강원 춘천시 동내면 고은2리 마을회관을 찾아 주민에게 영농 부산물이나 쓰레기 등을 소각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남 청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산을 타러 가십니까. 산을 태우러 가십니까. 고춧대를 파쇄해 드리면 태우지 않으시겠습니까”라며 “논·밭두렁을 태우면 해충뿐만 아니라 익충까지 다 죽고 산불이 난다”는 글과 함께 소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12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 일원에서 산불이 발생하자 헬기가 물을 뿌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 12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 일원에서 산불이 발생하자 헬기가 물을 뿌리고 있다. [뉴시스]

산불 최전선 투입 헬기 노후화 심화

산불은 진화 수단이 헬기 이외에 마땅치 않다. 하지만 산불 최전선에 투입되는 헬기 노후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이 지난해 10월 산림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산림청 헬기 보유 현황에 따르면 ‘산림 헬기’ 47대 중 12대가 30년 이상 된 ‘경년(經年) 항공기’다. 연식이 20년 넘은 헬기도 34대나 된다. 2010년 이후 도입된 새 헬기는 5대가 전부다. 47대 중 29대가 러시아제 헬기라는 것도 문제다. 러시아제 헬기는 1992년부터 2009년까지 도입됐는데 23대가 20년이 넘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으로 일부 부품을 구할 길이 막혀 결함이 생겨도 헬기를 금방 고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산림청은 장기간 정비 중인 일부 부품을 활용해 다른 헬기가 운항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지난 8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의 한 야산에서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가 고성능 산불진화차를 활용, 진화 작업 중이다. [사진 산림청]

지난 8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의 한 야산에서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가 고성능 산불진화차를 활용, 진화 작업 중이다. [사진 산림청]

러시아산 헬기 부품 수급도 문제

지자체 임차 헬기는 더 열악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이 확보한 지자체 임차 헬기 현황을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지자체가 민간업체에서 임차한 헬기는 74대다. 이 중엔 제조 일자가 1971년인 헬기도 있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헬기는 21대에 달한다.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지자체 임차 헬기 사고 현황을 보면 가장 최신 기종이 1994년으로 사고 당시 모두 20년 이상 된 헬기였다.

정윤식 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50년씩 된 헬기는 부속 수급이 잘 안 되고 최신 장비를 임의로 장착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자동차는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이 있는데 항공기는 설계도에 있는 부품만 써야 해 사실상 대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며 “부품 수급이 수월한 대형 회사나 국산 헬기 등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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