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UBS 입구 앞. 로이터=연합뉴스
스위스 UBS가 크레디트스위스(CS)를 초고속 인수한 데 따른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은행 위기’의 급한 불은 껐지만, 스위스 은행 산업의 위상이 흔들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는 평가다.
21일(현지시간) AFP통신은 스위스 UBS가 CS를 인수함에 따라 스위스에서 수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두 회사의 임직원 규모는 글로벌 기준 12만명, 스위스 국내에 3만7000명가량이다. 이 중에 중복되는 일자리들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CS 투자은행(IB) 부문 1만7000명의 실직 가능성이 가장 크다. UBS 측 일자리도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스위스노동조합총연맹(SGB)은 “두 은행은 잔혹한 감원을 피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합병을 위해 스위스 정부가 90억 스위스프랑(약 13조원)을 지급 보증했다고 언급하면서다. 한편 스위스 정부는 CS에 직원들에 대한 상여금 지급을 잠정 중단하도록 명령했다. 스위스 은행법은 공적자금을 직간접적으로 지원받은 은행에 대해서는 직원 변동 보수 지급을 유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조치로 CS 직원들의 반발과 이탈이 생길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19일(현지시간) UBS, CS, 스위스 연방당국 및 국립은행 관계자들이 베른에서 CS 인수 방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UBS 주가는 21일 스위스 증시에서 전 거래일보다 12.12% 올랐다. UBS가 CS를 인수하면 세계 최고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JP모건체이스 등과 경쟁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스위스 1위 투자은행 UBS가 2위이자 경쟁자인 CS를 인수한 데 따른 시장 독점 우려도 만만찮다. 두 은행 자산을 합하면 스위스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40%에 달한다. 스위스 일간 NZZ는 “좀비(CS)는 가고, 괴물(합병 UBS)이 태어났다”고 평가했다.
그간 스위스 은행 산업이 지켜온 자부심이 훼손됐다는 평도 나온다. 스위스 은행 관련법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돼, 스위스 국내외 투자자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CS 인수 과정에서 스위스 당국이 독점 규제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CS의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AT1) 투자자를 보호하지 않는 등 추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피터 쿤즈 베른대학 교수는 “스위스가 법치가 적용되지 않는 ‘바나나 공화국’은 아닌지 외국인 투자자들이 궁금해할 수 있다”면서 “당국이 살얼음을 밟고 선 듯 위험한 상태로 개입한 만큼 소송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바나나 공화국이란 겉은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기 쉽다는 의미로, 정치·경제적으로 불안한 사회를 지칭한다.
이번 인수 과정에서 CS의 160억 스위스프랑(약 22조5000억원) 규모 AT1이 상각 처리됐다. 채권 보유자들의 반발이 잇따르면서 줄소송이 예고된다. 다른 채권까지 불신이 번져 ‘본드런(연쇄 채권 매도)’이 일어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한편 미국 정부와 대형은행들은 위기에 빠진 중소은행 퍼스트리퍼블릭(FRB)에 대한 지원책을 논의 중이다. FRB의 재무 상태를 악화시킨 자산을 떼어내거나, 소유 지분 제한을 완화하는 방법 등이 논의된다. 대출 부문을 포함한 사업 일부를 매각하거나,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