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머니 스토리
금융 공룡의 성장은 장기적이며 찬란하다. 하지만 몰락은 너무나 순간적이고 허무하다.
『골드먼삭스:글로벌 금융리더』의 지은이인 찰스 엘리스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직후인 2008년 10월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한 말이다. 당시 기자는 『골드먼삭스』를 번역한 인연을 계기로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휴가 중이어서 전화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엘리스는 e메일 답변을 해왔다.
엘리스의 말은 리먼의 성장과 몰락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15년이 흐른 2023년 엘리스의 말을 실감나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UBS와 함께 스위스의 양대 금융 공룡인 크레디트스위스(CS)가 단돈 32억 달러(약 4조1600억원)에 흡수합병 됐다. 사들인 쪽은 경쟁 회사인 UBS다.

UBS에 흡수된 크레디트스위스. 로이터=연합뉴스
놀라운 반전이다. CS의 장부상 자본금은 1111억 스위스프랑(약 1199억 달러)이다. 이 가운데 97.3%를 손실 등으로 털어내고 약 2.7%만 인정받았다. 1856년 창업 이후 167년 이어온 스위스 금융제국이 ‘땡처리’된 셈이다.
인수대금 32억 달러는 미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2008년 JP모건에 팔린 60억 달러보다 적다. 반면에 영국계 투자은행인 베어링브러더스가 1990년대 20대 풋내기 트레이더의 머니게임 때문에 단돈 1파운드에 팔린 것보다는 후한 값이다. 엘리스가 말한 대로 CS의 마지막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비밀금고의 그림자:스캔들
CS의 마지막 회장이 된 엑셀 레만은 UBS와 협상이 끝난 직후인 19일 “오늘은 CS뿐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에 매우 슬픈 날”이라며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미국 은행의 최근 사태가 CS가 불운할 때 발생했다”고 말했다.
정당이든 기업이든 ‘정치적 수사’는 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레만 회장의 말이 아주 정치적이다. CS의 몰락을 SVB 등 미국 은행 파산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정치적 수사에도 일말의 진리는 있다고 했듯이 레만 회장의 말이 100% 허구는 아니다. CS가 벼랑 끝에 매달려 있을 때 미국의 ‘통화긴축→고금리→채권 등 자산가격 추락→은행파산’이라는 고전적인 악순환이 발생했다.
방아쇠가 미국의 SVB 파산이었다고 ‘벼랑 끝에 내몰린 원인’을 눈감을 수는 없다. 사실 CS는 검은돈의 자금세탁과 탈세에 개입한 스캔들 등으로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제재를 받아 왔다. 한마디로 자고 나면 스캔들이 드러나는 형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