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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렬로 쌓으면 달도 뚫는다…연간 쓴 플라스틱 컵 몇 개길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의 한 대학교 쓰레기통에 가득 쌓인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들. 정상원 인턴기자

서울의 한 대학교 쓰레기통에 가득 쌓인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들. 정상원 인턴기자

서울에 혼자 사는 대학생 김모씨(23)는 일주일에 세 번은 앱을 통해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는다. 장을 볼 때도 마트에 가지 않고 온라인 배달을 요청한다. 이제는 이런 집콕 일상이 편해졌지만 배달과 함께 잔뜩 오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고민이다. 그는 “코로나 이후에 배달만 하는 식당도 늘었고, 메뉴도 다양해져서 이제는 외식보다 배달해 먹는 게 더 자연스럽다”면서도 “시험 기간처럼 집에 있는 시간이 유독 늘어날 때는 재활용 쓰레기가 더 많이 모여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버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이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애프터 코로나 시대가 됐지만, 비대면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일회용 플라스틱은 이미 일상 곳곳에 녹아들었다.

그린피스와 충남대 장용철 교수 연구팀은 코로나19 이전(2017년)과 이후(2020년)의 국내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량을 비교한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보고서를 22일 공개했다. 폐기물 통계와 현장 실태 조사를 통해 플라스틱컵과 비닐봉투, 페트병 등 대표적인 일회용 플라스틱의 소비 발자국을 추산했다.

플라스틱컵 53억 개 사용…쌓으면 지구-달 1.5배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1312개로 하루에 3.6개의 일회용 플라스틱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라스틱컵은 1년에 102개를 사용해 코로나 이전(65개)보다 57%가량 늘었다. 국내 전체 소비량은 53억 개로 코로나 전보다 20억 개나 늘었다. 컵(11㎝)을 일렬로 쌓는다면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1.5배에 달할 정도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비닐봉투 역시 1인당 533개를 사용했다. 전체 소비량은 276억 개로 넓이로 따지면 서울시 면적의 13.3배를 덮을 정도다. 코로나 이후 생수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페트병 소비량도 1인당 연간 109개로 늘었다. 전체 소비량은 56억 개로 지구를 14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이다. 보고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의 시행은 간편식 및 배달음식, 온라인 쇼핑 등의 비대면 소비를 확산시켰고, 이로 인해 일회용 포장재의 사용이 크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배달주문시 발생되는 플라스틱 배달용기 쓰레기. 장용철 교수

배달주문시 발생되는 플라스틱 배달용기 쓰레기. 장용철 교수

연구팀은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 배달용기의 소비 발자국도 추적했다. 그 결과, 1인당 연간 소비 개수는 568개에 달했고, 국내 전체로는 173억 개의 배달용기가 사용됐다. 보고서를 총괄한 장용철 교수는 “조사 결과 음식을 한 번 배달 주문할 때마다 평균 8.5개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했다”며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되면서 배달 소비가 늘어나다 보니 플라스틱을 줄이겠다는 정부 목표와 반대로 코로나 이후 플라스틱 쓰레기가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검은색 배달용기가 재활용 골칫거리인 이유

서울시 도봉구의 재활용 선별장에서 별도로 분리된 검은색 배달용기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서울시 도봉구의 재활용 선별장에서 별도로 분리된 검은색 배달용기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플라스틱 배달용기의 증가는 재활용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용기마다 재질과 색상이 제각각인 데다가 음식 같은 이물질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재활용 과정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방문한 서울 도봉구의 재활용 선별장에서도 배달용기가 많아지면서 선별 작업이 어려워졌다고 호소했다. 선별업체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배달용기 반입량이 급증했다”며 “음식물을 세척하지 않았거나 비닐 포장이 돼 있는 경우가 많아 재활용 선별 공정을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선별장은 코로나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광학 자동선별기와 로봇 선별기를 도입했다. 기계식 공정을 통해 매일 들어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자동으로 선별한 뒤 재활용 업체에 보낸다. 하지만, 검은색이거나 이물질이 묻은 배달용기는 작업자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서서 따로 골라내고 있었다. 빛을 쏴서 플라스틱 재질을 선별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검은색 용기는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걸러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별도로 모은 배달용기는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되지 못하고 대부분 소각 처리한다. 도봉구 자원순환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김현수 ACI 대표는 “음식 포장재로 왜 검은색 용기를 쓰는지 물었더니 검은색에 반찬을 담아야 깨끗해 보인다는 것”이라며 “편의점 도시락 역시 검은색이 많아 재활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6개 중 1개만 재활용…“소각 과정서 온실가스 배출” 

서울시 도봉구 재활용 선별장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선별되는 모습. 천권필 기자

서울시 도봉구 재활용 선별장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선별되는 모습. 천권필 기자

이렇게 복잡한 재질과 색상 때문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도 높지 않다. 충남대 연구팀이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의 물질 흐름을 분석한 결과, 2021년 생활계 플라스틱 폐기물의 물질 재활용률은 16.4%에 그쳤다. 분리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 6개 중 1개만 재활용된다는 뜻이다.

환경부 통계를 보면 재활용률이 절반이 넘는 57%에 달하지만, 이는 발전이나 난방 등을 통해 에너지로 회수하는 방식까지 포함한 수치다. 재활용 가치가 없어서 단순 소각하는 비율도 32.6%나 된다. 장 교수는 “에너지 회수의 가장 큰 문제는 플라스틱이 탄소 기반으로 돼 있다 보니 (소각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것”이라며 “플라스틱 제조 과정에서 여러 가지 화학 첨가제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환경이나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연소 과정에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2030년에 3.6배 증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문제는 앞으로다. 지금의 플라스틱 사용 패턴이 바뀌지 않는다면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이 현재 추세를 토대로 2030년까지 플라스틱 발생량을 예측한 결과, 2030년에는 평균 6475t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0년의 3.6배, 2020년의 1.5배에 이르는 수치다. 김나라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생활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며 “국제적으로도 강력한 플라스틱 협약이 체결돼야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나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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