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법적 다툼 가는 '노조회계' 갈등…"직권남용"vs"적법 절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민·당·정 협의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민·당·정 협의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노동조합 회계자료 제출 요구’를 놓고 정부와 노동계 간 갈등이 법조계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이 21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면서다. 반면 정부는 미제출 노조에 대한 과태료 부과 및 현장조사 의지를 다지고 있어 대화 없는 노정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제출 요구 대상 노조 가운데 26.9%에 해당하는 86개 노조가 회계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대부분 양대노총 소속 노조다. 정부가 요구한 자료는 전체 회계자료가 아닌 자율점검결과서와 이를 증빙할 수 있는 표지와 속지 1쪽씩이다. 하지만 양대노총은 속지 1쪽에 대한 제출 요구도 자율권 침해라고 보고 있다. 중앙일보가 주요 쟁점별로 양측의 주장을 살펴봤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쟁점① 적법한 제출 요구?

양대노총은 고발장을 통해 “노조법 14조에서 노조에 고용부 등 행정관청에 보고할 의무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고용부가 노조에 보고하도록 요구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조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여야 한다’는 노조법 27조에 대해선 “결산결과란 결산 작업을 해서 나타난 결과물이지, 결산하는 데 필요한 원자료는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노조법에 따른 적법한 요구라고 반박하고 있다. 27조상 ‘결산자료’ 해석에 대해선 “이번 자율점검은 장부·서류 자체 제출이 아니라 (표지와 속지 1쪽을 통해) 노조법 14조의 서류 비치·보존의무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속지에 민감 정보가 포함될 수 있다는 지적엔 “증빙자료는 속지 중 특정부분을 지정한 것이 아니라 노조가 자유롭게 속지 중 1쪽을 골라 제출하고, 노조 내부 운영과 관련된 민감정보나 기밀사항은 블라인드 처리하는 것도 인정했다”고 해명했다.

21일 오전 서울 중구 장교동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열린 양대 노총 고용노동부 장관 등 직권남용 고소 기자회견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전 서울 중구 장교동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열린 양대 노총 고용노동부 장관 등 직권남용 고소 기자회견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쟁점② 미제출시 보조금 지원 중단, 직권남용?

직권남용죄는 형법상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적용된다.

양대노총은 이 장관이 노조에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인 재정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이를 통해 자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노조 재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양대노총은 미제출 노조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한 정부 조치에 대해서도 “보조금 사업 운영의 책임성 및 투명성은 (회계 자료와) 실질적 관련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직권남용이 성립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료 제출 자체가 적법한 요구인 것은 물론, 정부 사업을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사업 수행 주체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요건을 확인하는 것이라서다. 정부는 “회계가 투명한 단체가 책임 있게 사업을 수행해야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일을 막고, 사업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며 “국고지원사업을 수행하는 단체의 재정 투명성을 확인하기 위한 요구를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쟁점③ ILO 협약 위반?

양대노총은 정부 조치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을 규정한 국제노동기구(ILO) 제87호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회계는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하므로, 정부가 간섭할 수 있는 위험이 수반된 경우에 ILO 협약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ILO 제소까지 예고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ILO 판정례에 따르면 공공당국이 정기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며 “이번 조치는 노조 회계의 실체적 내용을 감사·조사하는 것이 아니고, 서류 비치 여부에 대한 형식적인 증빙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ILO 기준에 배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ILO도 노조 운영에 대한 감독 조치가 노조의 남용을 방지하고, 기금의 잘못된 운영에 대해 조합원을 보호할 수 있다면 유익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과 대통령실 안상훈 사회수석(오른쪽), 김은혜 홍보수석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노조 회계' 공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과 대통령실 안상훈 사회수석(오른쪽), 김은혜 홍보수석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노조 회계' 공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끝없는 평행선…“대화 없이 개혁 힘들다”

하지만 정부와 노동계 간 대치 상황은 단기간에 결론 나긴 어려울 전망이다. 공수처가 수사에 들어가더라도 최종 결론까진 시일이 걸릴뿐더러 양측 누구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주부터 미제출 노조에 대한 과태료 부과 절차에 들어갔고, 양대노총은 지난 20일 과태료 납부 및 현장조사 거부 지침을 재차 내린 상태다. 정부가 현장조사를 강행할 경우 물리적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도 크다.

양보 없는 노정갈등이 심화할수록 오히려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양측이 대화해야 하는데, 지금은 싸우자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아무것도 바뀔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노동계에 먼저 손을 내밀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