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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도 400억 넣은 퍼스트리퍼블릭…'월가의 왕'이 살리나

중앙일보

입력

제이미 다이먼(67) JP모건체이스 회장이 퍼스트리퍼블릭을 지원할 대책 마련을 주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이미 다이먼(67) JP모건체이스 회장이 퍼스트리퍼블릭을 지원할 대책 마련을 주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월가(街)의 왕’이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을 살릴 수 있을까. 제이미 다이먼(67) JP모건체이스 회장이 마주한 질문이다.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뒤 퍼스트리퍼블릭은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과 주가 폭락으로 역대 최대 위기에 빠졌다. 자칫 미 중소 은행의 연쇄적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시장에 퍼지자 다이먼이 대형 은행들을 결집해 전략을 짜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다이먼이 퍼스트리퍼블릭 안정화를 위한 대책 마련을 다시 한번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수장인 그는 대형 은행 최고 운영자(CEO)들과 퍼스트리퍼블릭의 자본 확충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퍼스트리퍼블릭을 매각하거나 외부 자본을 투입하는 안 외에 이들 은행이 직접 투자하는 방안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고 한다. 이들 은행은 SVB와 퍼스트리퍼블릭 등에서 인출된 예금을 유치한 수혜자이기도 하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뒤 퍼스트리퍼블릭의 인출액은 700억 달러(약 92조 7000억원)에 달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뒤 퍼스트리퍼블릭의 인출액은 700억 달러(약 92조 7000억원)에 달했다. AFP=연합뉴스

퍼스트리퍼블릭이 처한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 10일 SVB 파산 소식이 전해진 뒤, 퍼스트리퍼블릭의 고객들은 700억 달러(약 91조 7000억원) 상당을 인출했다. 지난해 말 기준 퍼스트리퍼블릭이 보유한 총 예금액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퍼스트리퍼블릭은 SVB처럼 무보험 예금 비중이 높아 ‘다음 파산 타자’가 될 거란 전망이 나왔다. 주가도 지난 8일에 비해 90% 이상 빠진 상태다.

다이먼은 앞서 지난 16일에도 대형은행 10곳의 CEO들과 퍼스트리퍼블릭에 300억 달러(약 39조 30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다이먼에게 직접 자본 투입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다이먼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웰스파고·시티 등 은행 CEO들에 직접 전화를 걸어 동참해달라고 설득했다. WSJ는 “1907년 존 피어몬트 모건 JP모건 창립자가 동료 은행가들을 모아 예금이 바닥난 대출기관을 구제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19일(현지시간)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퍼스트리퍼블릭의 신용등급을 3단계 내렸다고 발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퍼스트리퍼블릭의 신용등급을 3단계 내렸다고 발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상황이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19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퍼스트리퍼블릭의 신용등급을 ‘BB+’에서 ‘B+’로 3단계 하향했다. S&P는 지난 15일에도 ‘A-’에서 ‘BB+’로 4단계 낮췄다.

위기설이 진화되지 않는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연금과 국부펀드 한국투자공사(KIC)도 이 은행에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민연금은 400억원 상당, KIC는 220억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했다고 신고했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투자금의 상당 부분이 손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 장관은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에게 전화해 퍼스트리퍼블릭에 자본을 투입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EPA=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 장관은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에게 전화해 퍼스트리퍼블릭에 자본을 투입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EPA=연합뉴스

다이먼은 미국 경제에 위기가 올 때마다 미 당국이 찾는 구원 투수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다이먼은 연방준비제도(FED)·재무부의 요청에 따라 파산 위기에 처한 베어스턴스를 24억 달러(약 3조 1400억원)에 인수했다. 다이먼의 결정으로 미 금융 시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고, 그는 ‘위기관리의 귀재’로 떠올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그는 2006년에 이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금융위기를 예견했다고 한다. 평소 소비은행·투자은행·자산운용 등 각 사업부 대표들과 시장 상황과 위험 요소를 주제로 치열한 토론을 한 결과다.

1956년 그리스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다이먼은 증권 중개인으로 일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분에 일찍 금융 시장에 눈을 떴다. 82년 하버드대 MBA를 졸업한 그는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직장 상사였던 샌디 웨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사장 밑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둘은 회사를 나와 커머셜 크레디트, 살로몬 브라더스 등 금융기관을 인수하며 씨티그룹을 세웠다.

샌디 웨일(왼쪽) 전 씨티은행 회장은 제이미 다이먼의 멘토 역할을 했지만 1998년 두 사람의 관계는 파경을 맞았다. 블룸버그통신=연합뉴스

샌디 웨일(왼쪽) 전 씨티은행 회장은 제이미 다이먼의 멘토 역할을 했지만 1998년 두 사람의 관계는 파경을 맞았다. 블룸버그통신=연합뉴스

하지만 그룹 출범 직후 웨일이 다이먼을 해고하면서 둘의 관계는 끝났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이먼의 부상에 웨일이 위협을 느꼈을 것이란 설과, 다이먼이 웨일의 딸이자 부하 직원이었던 제시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설이 돌았다. 쫓겨난 다이먼은 2000년 미 중서부의 은행 뱅크원 CEO가 됐고, 2005년 JP모건체이스에 뱅크원을 매각하면서 CEO 자리를 약속받았다. WSJ는“다이먼이 CEO로 취임할 당시 JP모건체이스는 미국 내 자산 규모 3위 은행이었지만, 씨티은행을 제치고 현재 1위에 올랐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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