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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만원 탓에 16만원 토한다…"연금 올리지 말라" 원성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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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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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고객상담실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고객상담실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은퇴자나 은퇴 예정자들의 건강보험료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공무원·군인·사학 등의 공적연금은 사적연금과 달리 매년 1월 전년도 물가 인상률만큼 연금이 오른다. 이로 인해 건보 피부양자 탈락자가 속출할 판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건보 피부양자 인정기준을 과세소득 합산액 연 34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대폭 강화했다. 이로 인해 약 20만명이 탈락했다. 건보 무임승차를 줄이고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올해 고물가 상황에 부닥치면서 연금 수급자의 하소연이 쏟아진다.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면 지역 건보 가입자가 되는데, 소득 건보료뿐만 아니라 재산에도 건보료를 내야 한다.

건보피부양자 기준 2000만원 후폭풍 #전년 물가인상만큼 연금 올리면서 #피부양자 탈락 은퇴자 줄이을듯 #서울 아파트 건보료 15만원 넘어 #"재산건보료 축소 논의 시작할 때"

1만6000원 넘었다고 16만원 내야

 공적연금의 변화에 따른 피부양자 조정은 매년 2월 시행한다. 전년도 공적연금 총액을 따진다. 올 2월에는 2022년 연금총액을 적용했다. 지난해 1월에는 연금이 2.5% 인상됐는데, 이는 2012년(4%) 이후 가장 높았다. 이로 인해 올 2월 피부양자 탈락자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1월 연금액 인상률(5.1%)은 전년의 두 배이다. 24년 만에 최고이다. 올해 연금총액을 내년 2월에 반영하면 피부양자 탈락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은퇴자 A(68·경기도 과천시) 씨의 예를 보자. 지금은 큰딸의 피부양자에 얹혀있다. 그는 지난해 월 154만3380원의 국민연금을 받다가 올해 1월 161만7900원으로 올랐다. 총 연금액은 1941만4800원이다. 내년 2월 피부양자 탈락을 간신히 면한다. A 씨는 2025년이 걱정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3%대로 잡고 있는데 이게 반영되면 2025년 2월 기준을 1만6000원 초과해 피부양자에서 탈락한다. 월 16만여원(재산분 10만여원)을 내야 한다. 2026년 9월까지 경감(40~20%)되지만 한시적일 뿐이다. A 씨는 집이 없다. 그래서 더 나이 들기 전에 전세금으로 외곽의 아파트를 사려 했다. 하지만 자가 주택의 재산 건보료가 2만원 높다고 해서 주택 구매를 미루고 있다. 그는 "재산 건보료가 그리 많은 줄 몰랐다"며 "나보다 소득·재산이 많은 사람(은퇴자)이 직장에 다니는 것으로 꾸며 건보료를 훨씬 적게 낸다. 건보료가 이런 편법을 만드는데,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연금 인상 원하지 않는다"

 사학연금공단에도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B 씨는 지난달 초 공단 측에 "연금 인상분 15만원 때문에 건강보험료 25만원을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연금 인상분을 원치 않는다. 조처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사학연금공단 측은 "법령에 따라 매년 연금액이 인상된다. 개인의 요구로 연금 인상분을 지급하지 않거나 반납받을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은퇴자 C 씨는 60세가 될 즈음에 국민연금 액수를 늘리기 위해 임의계속가입·연기연금 등을 했다. 임의계속가입은 만 59세 이후에도 보험료를 계속 내는 제도이다. 연기연금은 63세 이후 수령 시기를 늦추면 연금액이 올라가는 제도이다. C 씨는 "연금 수령액이 연 2100만원으로 나와 피부양자로 올릴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금을 늘리려 애쓰지 말고 조기수령을 할 걸, 20여만원의 건보료를 내는 상황에 부닥쳤다"고 말했다.
 피부양자 후폭풍이 국민연금 가입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업주부가 국민연금에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임의가입자 증가세가 주춤해졌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임의가입자가 줄곧 증가해오다 지난해 11월 37만1656명으로 꺾였다. 임의계속가입자도 마찬가지다. 전업주부 D 씨는 "임의가입으로 약 9만원 정도를 납입하고 있다. 이를 약 20만원으로 증액하려는데, (나중에 연금 때문에) 건보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되지 않을까요"라고 걱정한다.
 국민연금을 5년 당겨 받되 최대 30% 감액해서 받는, 일명 '독배 연금'이라고 불리는 조기노령연금 신청자는 늘고 있다. 민주당 최혜영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조기연금 신규 신청자는 5만9314명으로 전년보다 24% 늘었다. 손해 보더라도 피부양자 탈락을 피해 보려는 수요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금공단 관계자는 "건보 때문에 임의가입자·임의계속가입자가 줄어든 것 같다"며 "물가상승률만큼 연금을 올려주는 게 공적연금의 가장 큰 장점인데, 이게 건보 때문에 기피하는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기연금을 받으면 삭감된 연금을 평생 받는다. 눈앞의 피부양자 탈락을 피하기 위해 조기연금을 신청하기보다 건보료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의 모습. 연합뉴스

"소득 훤히 드러나는데 재산에 왜?" 

A 씨 사례에서 보듯 피부양자 탈락을 기피하는 이유는 재산 건보료 때문이다. 서울의 중윗값 (2월 기준 9억9333만원) 아파트 한 채가 있으면 재산 건보료가 15만2340원 나온다. 지난해 9월 재산 건보료 비중을 낮추긴 했지만, 집값이 오른 걸 감당하지 못한다. 원래 재산 건보료는 지역가입자가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소득 파악이 어려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런데 소득이 훤히 드러나는 지역가입자(은퇴자 포함) 입장에서 재산 건보료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같은 아파트를 갖고 있어도 직장인은 건보료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부양자 탈락자가 연금에 (소득)건보료를 내는 건 맞다. 외국도 그리한다. 그런데 재산에 건보료를 매기니 불만이 나온다. 재산 건보료를 줄이고 소득 중심으로 가야 한다. 재산 공제를 확대해 나가다가 나중에는 없애는 게 맞다. 이런 계획을 빨리 만들기 위해 지금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최혜영 의원실 박상현 보좌관은 "지역가입자의 공적연금의 50%만 건보료를 매기는데, 이를 피부양자 탈락 여부를 따질 때도 적용하면 된다"며 "피부양자든 보험료 부과든 구분 없이 연금의 절반만 적용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