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회의원의 처우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선 국회의원 연봉(의원수당+의원활동비)은 지난해 기준으로 세전 1억5426만원.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봉이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일본·이탈리아 정도밖에 없다. 여기에 업무추진비·유류지원비·공무수행 출장지원금 등 각종 명목으로 경비가 지원된다. 보좌직원 9명을 두는 데 들어가는 돈까지 합치면 1년에 7억5600만원이 지원된다. 이 돈은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하지 않아도 매달 통장에 꼬박꼬박 꽂힌다.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돈이다.
의원 한 명당 웬만한 중소기업 규모 인건비가 지급되는데, 생산성은 바닥을 긴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안건의 가결률은 11%(21일 기준)로 최악의 국회로 꼽히는 20대(15%)보다도 낮다.
의원들이 여론의 눈치에 발의는 했는데, 비슷한 내용의 법안(대안반영 폐기)이 많고 아예 논의도 하지 않은 안건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지난 1월, 2월 17개 국회 상임위원회 가운데 이른바 ‘일하는 국회법’인 ‘매달 3회 이상 법안심사소위 개최’ 조항을 준수한 상임위원회는 단 3곳에 불과했다.
이유는 명쾌하다.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극한 여야 대치와 내부 주도권 다툼에 매몰돼서다. 그러다 보니 민생과 직결된 법안 상당수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재난 피해를 본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전세 사기 방지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밀린 임금을 지급하려는 사업주가 정부에 융자를 신청할 수 있게 한 ‘임금채권보장법’,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한 ‘스토킹처벌법’, 보험사기 대응력을 높인 ‘보험사기방지법’ 등은 여야 견해차가 크지 않은데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해 경제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공급망 기본법’,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는 재정준칙 등도 공회전이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미래세대의 짐을 덜어주는 법안인데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 재건축 부담금 완화 등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은 야당의 ‘묻지마’식 반대로 표류 중이다. 청약에 당첨된 사람들은 입주 여부를 놓고 혼선을 빚고 있고,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사업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치솟은 물가와 대출이자, 무역 적자와 부동산 침체로 가계는 물론이고 기업마저 고통을 받고 있다. 복합 경제위기에서 쏟아지는 경제 주체의 한숨이 국회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국회가 허송세월에 빠진 동안에도 의원들은 매달 돈을 받고 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국회에 적용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한국의 다른 분야는 선진국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데, 아직도 제자리걸음인 곳이 국회 말고 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