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화가 오천룡 “싫증은 내 창작의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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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프랑스에서 50년 동안 활동해온 오천룡 화백은 “꿈꾸며 살다보니 어느덧 여든이 넘었다. 꿈대로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비슷하게는 이뤄진 것 같다”며 웃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프랑스에서 50년 동안 활동해온 오천룡 화백은 “꿈꾸며 살다보니 어느덧 여든이 넘었다. 꿈대로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비슷하게는 이뤄진 것 같다”며 웃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재불화가 오천룡(82)의 60년 화업을 돌아보는 전시가 오는 23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개막한다. 타국에서 50여 년간 그리기에 매달려 고군분투해온 작가의 지치지 않는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1941년 서울 태생인 오 화백은 1965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1년 프랑스로 건너가 현재까지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해왔다. 이번 전시는 1960년대 서울에서 작업한 추상 회화와 도불 이후 지금까지 이어온 구상 작업을 망라해 그의 60년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전시 제목은 ‘오천룡 회고전: 창작과 싫증’이다. 그에게 ‘싫증’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전시 준비가 한창인 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전시 제목에 ‘싫증’이란 단어를 썼다.
“실제로 ‘싫증’이 그간 나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돌아보니 몇 년 동안 한 가지에 몰두하다가 싫증을 느끼면 새로운 것으로 옮겨가는 일을 거듭해왔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싫증이야말로 창작의 어머니다.”

전시엔 그가 스물두 살 때 그린 인물화와 프랑스로 건너가 서른 살에 그린 인물화가 함께 나왔다. 붓 터치부터 음영 표현, 색채까지 큰 변화가 눈에 띈다. 그는 “두 그림 사이에 추상화에 매달려 보낸 5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프랑스에 도착해선 미술 공부를 데생 그리기 등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중학교 미술 교사로 일했던 그는 그렇게 낯선 땅에서 학생이 되어 아카데미 그랑 드 쇼미에르와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 이유는.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싶었다. 미술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게 바로 내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하던 작업을 계속할 순 없었다.”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은 매 순간이 실험이었다. 결국 프랑스에서 그는 추상 작업을 놓고 구상으로 돌아갔다. 색채를 버리고 단색조 작업만 하기도 했고, 색채를 다시 꺼내기도 했다. 1984년부터 18년 동안은 붓을 사용하지 않고 나이프 등으로 그림을 그렸다. 1995년 이후 ‘나뭇잎’ 연작에만 매달린 시간이 7년에 달한다.

나뭇잎 시리즈에 왜 그리 시간을 보냈나.
“앙리 마티스(1869~1954)가 후대 화가들에게 남긴 숙제를 이어 마무리해보고 싶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많이 그렸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오 화백은 “그때 많은 갤러리에 거절당했다. 나는 이제 끝났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쉬기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논다는 생각으로 다시 붓을 들고 편하게 눈에 보이는 대로 파리 풍경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그 그림을 더 좋아했다”며 웃었다.

그런 과정이 준 선물일까. 그의 그림엔 독특한 선(線)이 그의 인장처럼 두드러져 보인다. 나이프로 굵게 그은 흰색의 선 중앙에 홈을 파고, 그 위에 상감을 새겨 넣듯이 짙은 색 물감을 넣어 완성해 형태를 드러낸 선. 이른바 ‘오 라인(Ô Line)’이다. 1984년 작품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오 라인은 2005년부터 더욱 다양한 변주로 풍부해졌다. “형태와 색, 면이 하나가 되게 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오 화백은 “오 라인은 숱한 소묘와 크로키, 색과 면을 탐구한 끝에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업 화가로 50년간 일을 지속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가장 큰 고민은 생계다. 그래도 저를 응원하며 제 그림을 사주는 분들이 있었기에 버텼다. 경기고 동기생(1961년 졸업)들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고교 동창 4명이 2007년 각자 소장한 그의 작품을 모아 국내서 전시를 연 바 있다. 그중 김창세 제일국제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는 1988년 이래 오 화백 작품을 매년 2~4점씩 구입해온 마니아 컬렉터다.

그는 2021년 회고록 『서울의 햇빛, 파리의 색채』(삶과꿈)를 펴내기도 했다. 1950~60년대 척박했던 한국 현실부터 파리에서 겪은 이야기들이 개인사를 넘어 한국 문화사의 한 조각으로 기록됐다. 그에게 젊은 화가가 “힘들다”며 조언을 요청하면 뭐라고 답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만두라고 하겠다”고 답했다. “전업 화가의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권하고 싶지 않다”며 “그래도 하겠다면 절대로 남의 것은 따라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4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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