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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 기절근무? 11시간 의무휴식 등 건강 3중 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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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 최대 69시간’ 정부 근로시간 개편안을 둘러싼 혼란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당 최대 60시간 미만 보완 기준을 다시 제시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최근 주당 최대 근로시간에 관해 다소 논란이 있다”며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임금·휴가 등 근로 보상체계에 대해 근로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특히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 약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확실한 담보책을 강구할 것”이라면서다.

이어 “근로자들의 건강권, 휴식권 보장과 포괄임금제 악용 방지를 통한 정당한 보상에 조금의 의혹과 불안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이에 대해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의 후퇴라는 의견도 있지만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정해 놓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선 근로시간에 관한 노사 합의 구간을 주 단위에서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자유롭게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노사 양측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노동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주 60시간 미만으로 상한선(캡)을 낮추더라도 근로시간 유연화라는 정책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본 것인데 전날 대통령실 설명과는 많이 달라졌다. 전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주당 69시간을 일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 않겠느냐는 개인적인 생각에서 말씀하신 것”이라며 “의견수렴을 해서 그게 60시간이 아니고 더 이상 나올 수도 있다”며 캡을 씌울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주 60시간은 무리” 재강조

야당은 이날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주 최장 69↔60시간’을 두고 벌어진 혼선을 집중 공격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말 다르고 장관 말 다르고 대통령실 말이 다르고 이런 정책이 어딨느냐”며 “국민의 삶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냐”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이에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다만 개편안 폐지 요구에 대해선 “입법예고 기간에 충분히 가능한 모든 대안을 만들겠다”며 선을 그었다.

중앙일보는 온라인에 ‘기절 근무표’까지 떠도는 상황에서 논란의 핵심인 주 최대 52시간→69시간으로 근로시간이 늘어나는지 따져봤다.

우선 정부는 개편안을 ‘주 69시간제’란 용어로 부르는 것 자체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개편안에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주 69시간도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인데 현행 주 최장 52시간제 역시 선택근로제를 1개월 단위로 채택한 사업장은 이론적으로 하루 최대 21시간30분, 특정 주는 6일 근무도 가능해 129시간까지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를 포함한 휴게시간은 고작 하루 2.5시간인 최악의 경우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런데도 ‘69시간 프레임’이 씌워진 것은 정부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언론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69시간까지 가능하다”는 말을 하면서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자는 “현 제도와 비교만 했더라도 이런 오해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주 52시간제 기본 틀이 허물어진다는 것도 “거짓 내지는 오해에서 비롯된 프레임”이라는 입장이다. 정부 개편안대로 현행 주 12시간씩인 연장근로를 월 단위 총량으로 관리할 경우 첫 주에 69시간 일했다면 다음 주는 근로시간이 35시간으로 줄어든다. 나머지 주는 평균 근로시간이 52시간이 된다. 일감 등 회사 사정 또는 근로자의 개인 사정에 따라 어떤 주에 더 일하고, 어떤 주에 덜 일할지 탄력적 선택으로 운용할 뿐 주평균 52시간의 틀은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정부 측은 사업주 측이 연장근로를 악용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 부여 또는 1주 64시간 상한, 4주 평균 64시간 이내라는 3중 건강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어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월·분기·반기 등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늘릴수록 최대 70%까지 개편안을 짰기 때문에 근무시간 감축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실제 사업장에서 악용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관건은 쉴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다. 현재도 모든 직원이 연차휴가를 다 쓰는 사업장이 전체 40.9%에 불과하다.

정부 개편안에는 변경된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때 과반수 노조와 협상하도록 해놨다. 이렇게 되면 MZ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MZ노조는 대부분 회사 안에서 소수 노조여서다.

부분대표제를 도입해 사무직이나 연구직은 별도로 협상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지만 과반수 노조가 거부하면 회사와 교섭할 방법이 없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위원회의 판정을 받아서 교섭권을 확보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 역으로 MZ노조가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면 지금처럼 사안마다 노동위원회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근로시간제도는 디지털 시대에 맞게 유연하게 바뀌는데, 회사 내에서 MZ의 생각을 반영할 교섭 시스템은 굴뚝 공장 시스템 그대로인 셈이다.

설령 노동위원회 판정을 통해 교섭권을 확보해도 그때면 이미 과반을 점한 기존 노조와 회사가 협상을 끝낸 뒤일 게 뻔하다. MZ노조가 교섭하려 들면 다 끝난 마당에 뒷북을 치는 모양새가 된다. 사실상 MZ노조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MZ노조의 생각을 반영할 길이 차단되는 꼴이다. MZ세대는 ‘공짜 야근’ 논란처럼 공정한 보상에 민감하다. 따라서 포괄임금제부터 확실하게 정리해야 근로시간 체계 개편 방안을 설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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