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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해줄 사람 어디있냐 " 절규…딸 잃은 아빠가 쳐다본 빈자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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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국회에서 ‘백신 부작용 피해보상, 국가의 역할은?’이라는 주제로 정책간담회가 열렸다. 이우림 기자.

21일 국회에서 ‘백신 부작용 피해보상, 국가의 역할은?’이라는 주제로 정책간담회가 열렸다. 이우림 기자.

“답변할 사람이 도망가 버리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요. 결국 우리만의 토론회가 된 것 같아 허탈합니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눈물을 삼키며 한 자리를 응시했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백신 부작용 피해보상, 국가의 역할은?’이라는 주제의 정책간담회가 끝난 뒤였다. 아버지 이남훈(55)씨는 2021년 8월 대학생 딸 이유빈(22)씨를 잃었다. 유빈씨는 모더나사의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12일 뒤 뇌경색으로 숨졌다.

이씨가 응시한 곳엔 ‘코로나19 예방접종피해보상지원센터장’이라고 쓰인 명패와 빈 의자가 놓여 있었다. 조경숙 질병청 예방접종피해보상지원센터장은 당초 예정됐던 토론회 예정 시간(오전 10시~오후 12시)이 끝나자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떴다. 발제와 토론이 길어져 백신 이상반응 피해자 유가족들의 질의 응답이 종료 시간을 넘긴 12시 이후에 시작되는 상황이었다.

이씨는 “우린 아이가 죽은 지 1년 반이 지나서도 이러고 있는데 답변해줄 사람은 어디에 갔나. 끝까지 남아서 질문을 들어주고 앞으로의 방향성도 제시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건 정부가 이번 간담회를 무시하는 처사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정책간담회장엔 이씨를 비롯해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 회원 20여명이 자리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사망한 가족의 영정사진을 손에 꼭 쥔 유족들은 간담회가 진행된 2시간 30분 동안 연신 손수건으로 눈을 훔쳐냈다.

“백신 접종부터 피해보상까지 과연 과학적이었나 의문”

21일 국회에서 ‘백신 부작용 피해보상, 국가의 역할은?’이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 회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우림 기자.

21일 국회에서 ‘백신 부작용 피해보상, 국가의 역할은?’이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 회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우림 기자.

이날 발제를 맡은 강윤희 박사(아산충무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이자 전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심사위원)는 “정부와 질병청이 ‘과학’이란 말을 남발하고 있는데 백신 부작용에 대한 대처가 과연 과학이었는지 의문”이라며 접종부터 피해보상 심의까지 전 과정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강 박사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초기 아스트라제네카(AZ)사 백신에서 혈전증 발생 문제가 제기됐을 때 한국은 다른 국가와 달리 접종을 중단하거나 연령 제한을 엄격하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경우 자체 조사에서 백신과 혈전증 발생과의 연관성이 확인되자 즉각 접종을 중지했지만, 한국은 이런 안전성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분을 지적했다.

강 박사는 “식약처는 코로나19 백신 이상반응 사례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유럽의약품청(EMA)처럼 매월 안전성 요약보고를 받고 있다고 했지만, EMA가 이 보고서를 토대로 백신 부작용을 발굴해내는 것에 반해 한국은 자국의 사례를 근거로 안전성 조치를 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비판했다. 또 “타국의 안전성 조치라도 빠르게 따라 했는가를 보면 가장 늦게, 가장 소극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상반응 인과성 판단 지나치게 기계적”

또다른 발제자인 김윤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백신 이상반응 인과성 판단과 피해보상 과정이 “지나치게 기계적”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백신의 효과와 부작용이 불확실했지만, 집단면역 통해 감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 국가가 사실상 의무적으로 접종받도록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과 이상반응간 인과성이 불분명한 사례에 대해 국가가 보상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지나치게 국가중심적 사고”라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 상황과 백신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을 고려해 사회경제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성배 제주도 역학조사관은 백신피해보상전문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의도적인 인과성 배제 움직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안 조사관은 전문위 심의 당시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지역 역학조사관이 백신과 이상반응 간 인과성을 인정할 만한 자료를 제시해도 (위원회 측에서) 결과물을 배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또 ‘심도있는 회의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회의에 배석한 모든 역학조사관을 강제로 퇴장시키는 등의 의문스러운 행동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안 조사관은 “전문위 소속 고위직 위원이 회의 당일 '내시경 때문에 수면 마취를 받은 뒤 잠이 깨지 않아 오락가락한 상태'라고 말하며 들어온 날도 있었다. 그날 하루 동안 1000여 건의 인과성 사례를 심사했다”고 폭로하자 피해자 유가족들 사이에선 거센 비판이 터져 나왔다. 다만 해당 주장의 사실관계 여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날 2시간 동안 자리를 지킨 조경숙 센터장은 “여러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면서 정부가 진일보한 방안을 만들도록 국회·관계 부처와 심도 있는 협의해나가겠단 말을 드린다”고 말했다. 일문일답을 받지 않았다는 유가족 측의 불만에 대해 질병청 관계자는 “예정됐던 시간을 넘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다. 원래 잡혀있던 전문가 회의가 있어 부득이하게 센터장이 이석을 하게 됐다”라며 “코백회 측과는 이전부터 주기적으로 논의를 해오고 있어 향후에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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