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돈이 전달된 것을 목격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정민용 변호사(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김 전 부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타이틀리스트가 아니라 침향환이었습니다. 황제침향환.”
“‘형님, 약입니다’‘형님, 선물입니다’하며 드린 기억이 난다.”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조병구) 심리로 열린 김용·유동규·남욱·정민용의 정치자금법 위반 5차 공판. ‘대장동 일당’ 정민용(49)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이 자신이 받은 돈과 준 돈이 담긴 쇼핑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이재명 후보 대선 경선 자금을 전달했다”고 자백하며 시작된 이 사건은, 지금까지 사건의 큰 줄기를 유 전 본부장의 ‘입’에 기대왔다. 하지만 유 전 본부장이 돈을 전달한 시간 등 세세한 부분에 대해 기록해 놓지 않은 점 등이 재판 과정에서 걸림돌이 된 측면이 있다.
이날 증인석에 앉은 정민용씨는 “김용 전 부원장이 정치자금 20억원을 요구했고, 남욱 변호사를 통해 8억4700만원을 마련해 6억원을 전달했다”는 유 전 본부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디테일’을 빼곡히 채워넣었다.
“침향환·나이키·발렌티노 박스에 담아 갖다줬다”
남 변호사와 유 전 본부장 사이 ‘전달책’이었던 정씨는 2021년 4월 말부터 7월까지 총 4차례, 남 변호사를 통해 만들어진 돈이 유 전 본부장에게 전달된 과정을 자세히 진술했다.
①침향환 쇼핑백에 담긴 1억원짜리 박스, 서초동 남욱 사무실에서 수령
②1억원짜리 박스 5개, 이몽주가 정민용 자택 지하주차장에 가져다줌
③상자 없이 타이틀리스트 쇼핑백에 든 1억원, 서초동 남욱 사무실에서 수령
④비닐봉지에 싸여 아무 쇼핑백에 든 1억 4700만원, 이몽주가 정민용 자택에 가져다줌
검찰이 돈을 전달한 도구로 제시한 증거도 모두 정 변호사의 손을 탄 결과물이었다. 정씨는 1억원이 든 박스 5개(②)를 담기 위해 “평소 들고 다니던 나이키 백팩의 윗부분을 펴(공간을 넓혀) 담아” 유 전 본부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 가방은 이후 유 전 본부장의 자택에서 발견됐다.
빨간색 발렌티노 신발박스와 쇼핑백은 “1억원을 신문지로 덮어서 백팩에 넣은 뒤 가져왔는데(③), 이대로 유 전 본부장에게 주면 안될 것 같아” 본인이 옮겨담았다고 했다. 일반 신발박스에 1억원을 담으면 공간이 남을 것 같아서 조금 더 작은 여성 슬리퍼 박스를 택했다고도 덧붙였다. 마지막에 마련한 돈 1억4700만원(④)에 대해서는 “1만원권과 5만원권이 섞여있었고, 돈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기억하며 쇼핑백 통째로 나이키 운동가방에 넣어 가져갔다고 진술했다.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정치자금 6억원을 불법으로 제공받았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중반 8개월간 패션모델 활동을 했었다는 정씨는 김용 전 부원장이 유원홀딩스 사무실에 와서 1억원이 담긴 쇼핑백을 가져간 날, 김 전 부원장이 “파란색 사파리 차림이었다”고 정확히 묘사했다. 자신은 제네시스, 남욱 변호사의 측근이자 천화동인 4호 이사인 이몽주씨는 카니발 승합차 등 차종도 기억했다.
정씨는 “당시 눈이 마주쳤지만 김 전 부원장은 표정변화가 없었다”,“그 전부터 김 전 부원장에게 가는 돈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가 5~10분 머물다 떠난 뒤 쇼핑백이 없어졌길래 가져갔나보다 했다”고 말했다.
편의점 7200원, 하이패스 1만4800원, 카페 4000원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정씨가 몰고 다니던 유원홀딩스 소유 제네시스 차량의 하이패스 출입기록, 유 전 본부장 주거지 아파트 주차장 입출차 기록, 정씨의 유원홀딩스 법인카드 결제 내역 등으로 진술을 뒷받침했다. ‘6월 6일 정 변호사 주거지 인근 편의점 결제 내역 7200원’과 ‘6월 8일 경남 산청에서 결제된 하이패스 1만4800원’, 그리고 그 사이인 ‘6월 7일 5억원(나이키 백팩)’을 전달한 것으로 특정하기도 했다.
2021년 11월 정씨가 김 전 부원장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고, 교보문고 강남점, 아티제 여의도공원점 등에서 만난 사실도 자세히 기술했다. 교보문고에선 “노란색 리걸패드(위로 넘기는 대형 노트)에 쓴 남욱의 편지를 책에 끼워 전달하려고 했는데 편지만 가져갔다”, 아티제 여의도공원점에선 “페리에(탄산수 브랜드)와 컵을 줬다”는 진술에 대해 검찰은 두 사람의 인터넷 접속 기지국 정보와 김 전 부원장의 4000원 카드결제 내역을 증거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