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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 이후 美FRB 고객들 92조 뺐다…대형은행 또 구원등판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3일(현지시간) 퍼스트리퍼블릭은행. AFP=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퍼스트리퍼블릭은행. AFP=연합뉴스

미국 중소은행 퍼스트리퍼블릭(FRB)의 ‘위기설’이 좀처럼 진화되지 않고 있다. FRB에 자금을 ‘수혈’했던 미 대형은행들은 다시 한번 지원 대책을 논의 중이다. 미국 금융당국이 금융 시장의 위기가 확대할 경우 모든 은행예금을 보장해주는 방안을 찾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FRB 고객들은 지난 10일 시작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총 700억 달러(약 91조6000억원)를 인출했다. 지난해 말 기준 총 예금액의 절반에 달한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가 있는 FRB는 기업과 부유층 등 고액 예금 비중이 높다.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하면 ‘제2의 SVB’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나왔다.

앞서 16일 미국의 대형은행 11곳은 FRB에 총 300억 달러(약 39조원)를 예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FRB의 신용 등급을 이례적으로 일주일 사이 두 차례 낮췄다. 미 대형은행들의 자금 지원이 단기적으로는 유동성 압박을 완화할 수 있지만, 실질적 해결은 아니라는 평가다. 20일 뉴욕증시에서 FRB 주식은 전 거래일보다 47.11% 급락한 12.1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미 대형은행들은 FRB ‘구출 작전’에 다시 나설 구상을 하고 있다. 이번에도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가 논의를 주도한다고 WSJ는 보도했다. JP모건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을 인수하는 등 ‘소방수’ 역할을 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 AFP=연합뉴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 AFP=연합뉴스

다이먼과 다른 대형은행 CEO들의 추가 대책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다. FRB의 자본을 늘리기 위한 투자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WSJ에 밝혔다. FRB에 직접 투자하는 방안이나 앞서 예치한 300억 달러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자본 투입으로 전환하는 걸 고려 중이다. FRB를 매각하거나 외부 자본을 유치하는 방안도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FRB는 단기 채권 발행이나 기업 매각 등 자구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잠재적 인수자로 꼽혔던 한 대형은행이 정밀 실사 후 인수를 포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정부와 대형은행들의 신속한 구제 조치가 오히려 대중의 ‘금융 패닉’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있다고도 짚었다.

앞서 뱅크런으로 무너진 SVB는 분할 매각이 결정됐다. 미 금융당국은 SVB를 예금 사업부와 자산관리 사업부로 나눠 팔기로 했다. 소식통들은 파산 금융기관 인수 경험이 많은 퍼스트시티즌스 뱅크셰어스가 SVB 전체를 인수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분할 매각 시에도 입찰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 재무부 당국자들이 의회 승인 없이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현재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인 예금자 보호 한도를 모든 예금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전했다. 이는 은행업계에서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요청해 온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지금 당장 이와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다만 상황이 악화할 경우를 대비해 검토에 나섰다는 것이다. 앞서 FDIC는 파산 사태를 맞은 실리콘벨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에 대해선 예금자 보호 한도를 넘는 예금을 전액 지급 보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은행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고금리다. ‘금리 인상 행진’을 이어가던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셈법이 복잡해진 이유다. Fed는 오는 21~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물가를 안정하면서 금융 불안을 잠재워야 할 딜레마에 처했다.

시장의 전망은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론이 우세하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0.25%포인트 인상 전망은 21일(한국시간) 현재 약 75%다.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6% 상승하고, 비농업 신규 일자리(31만1000개)가 예상치를 웃도는 등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된다는 판단이 깔렸다. 금리 인상을 중단하면, 시장에서 금융 시스템 위험이 심각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만, 시장은 기준금리 동결도 여전히 살아 있는 카드로 본다. Fed가 3월에는 금리 인상을 일단 멈추고, 그간의 긴축 효과와 시장 상태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긴축을 이어가면 시장 격변과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본다. 골드만삭스는 20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은행권이 처한 스트레스 때문에 이번 FOMC에서는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시장은 제롬 파월 Fed 의장의 ‘입’에 주목한다. 오는 FOMC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그가 통화 정책과 금융 안정 등에 어떤 의견을 내놓을지가 관심사다. 여기에 점도표(FOMC 위원들의 기준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표)도 공개되면, 올해 Fed의 긴축 경로를 예상할 힌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 국민연금과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가 FRB 지분을 상당 수준 보유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은 FRB 주식을 25만2427주(약 402억원), KIC는 13만7853주(약 220억원)를 보유한 것으로 신고했다. 만일 FRB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SVB나 시그니처은행처럼 파산한다면 한국의 국부 손실도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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