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절 근무표'까지 나온 주69시간 따져봤다…진실과 오해 5가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을 두고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핵심은 주 최대 69시간이다. 마치 매주 69시간 근무하고, 휴식조차 제대로 취할 수 없는 것처럼 떠돈다. 이걸 조합한 '기절 근무표'까지 온라인에 떠도는 판이다. 진짜라면 주 52시간제를 허물고, 장시간 노동으로 몰아가는 정책임이 분명하고, 노동 착취 정책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과연 정부가 국민이 등을 돌릴 게 뻔한 이런 정책을 내놨을까. 그렇다면 진실이 무엇일까. 관전 포인트를 5가지로 추려 팩트를 체크해본다.

①129시간 vs 69시간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이 발표되자마자 '69시간제'라는 말이 정부 안을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동계도, 정치권도, 언론도 '69시간제' 용어를 쓰면서 '정부 정책은 69시간제'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개편안=69시간제'라는 등식을 현재 근로시간 체제에 대입하면 '현 근로시간제=129시간제'가 된다. 현행 제도에선 최대 129시간제가 용인되기 때문이다. 선택근로제를 1개월 단위로 채택한 사업장은 하루 최대 21시간 30분 일할 수 있는데, 특정주에 6일 근무가 가능해서 12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휴게시간은 고작 하루 2.5시간이다. 1~3개월 선택근로제를 택한 사업장은 주 최대 69시간 근무할 수 있다. 11시간 연속휴식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현 근로시간 제도에 명시된 상한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이 개정될 당시 제1당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현행 근로시간제를 '주 129시간제'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69시간 노동제'라는 푯말을 의원석 앞에 놨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반면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은 주당 최대 69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1시간 연속휴식을 의무화하는 등 각종 건강보호장치를 추가하면서다. 그런데도 '69시간 프레임'이 씌워진 것은 정부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언론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69시간까지 가능하다"는 말을 하면서다. 언론은 이를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현재 근로시간 체계에서 129시간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놓쳤을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자는 "현 제도와 비교만 했더라도 이런 오해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주 52시간 훼손 여부
일각에서 정부 안대로 시행하면 근로시간이 주 69시간으로 대폭 늘어나는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주52시간제가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거짓 내지는 오해에서 비롯된 프레임"이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현행 법대로 연장근로(주12시간)를 매주 소진하며 주 52시간 일을 한다고 치자. 이걸 정부 개편안에 대입해보자. 연장근로를 월 단위 총량으로 관리할 경우 첫 주에 69시간 일했다면 다음 주에는 근로시간이 35시간으로 줄어든다. 나머지 주는 평균 근로시간이 52시간이다. 일감 등 회사의 사정 또는 근로자의 개인 사정에 따라 어떤 주에 더 일하고, 어떤 주에 덜 일 할지 탄력적으로 선택해 운용할 수 있다. 그러니 총량은 주 평균 52시간이 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게 된다.

1개월 단위로 연장근로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경우 근로시간 변화.   자료:고용노동부

1개월 단위로 연장근로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경우 근로시간 변화. 자료:고용노동부

정부 개편안에 대해 "제도를 악용하면 장시간 근로로 흐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정부와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연장근로 총량을 1년 단위 즉, 연간으로 관리하더라도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부여, 1주 64시간 상한, 4주 평균 64시간 이내라는 3중 건강보호장치가 마련돼 있다. 온라인 상에 떠도는 연속 밤샘과 같은 근무형태는 벌어질 수 없다. 여기에다 연장근로 총량을 반기(6개월) 또는 연간으로 확대해서 관리하면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0시간대로 확 줄어들도록 설계가 돼 있다. 근로시간 감축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정부가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늘릴수록 연장근로 총량을 현재보다 최대 70%까지 줄이도록 개편안을 짰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또 현재는 근로자 대표(노조)와 합의만 하면 되지만, 정부 개편안에는 근로자 대표에 이어 근로자 개인의 동의도 받아야 가능하도록 중첩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래서 회사의 일방적인 장시간 노동으로의 악용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주 최대 129시간이 가능한 지금도 1인 이상 사업체 상용근로자의 주 평균 근로시간은 38시간이다.

이런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관건은 쉴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다. 모든 직원이 연차휴가를 다 쓰는 사업장이 전체 40.9%에 불과하다. 20대 직장인 절반은 1년에 연차휴가로 6일을 채 못 쓴다. 휴식권이 보장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이유다.

③MZ노조 교섭권 논란

정부 개편안에는 변경된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때 과반수 노조와 협상하도록 해 놨다. 이렇게 되면 MZ의 목소리를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MZ노조는 대부분 회사 안에서 소수 노조여서다.

부분대표제를 도입해서 사무직이나 연구직은 별도로 협상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지만 과반수 노조가 거부하면 회사와 교섭할 방법이 없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위원회의 판정을 받아서 교섭권을 확보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 역으로 MZ노조가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면 지금처럼 매 사안마다 노동위원회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근로시간제도는 디지털 시대에 맞게 유연하게 바뀌는데, 회사 내에서 MZ의 생각을 반영할 교섭 시스템은 굴뚝 공장 시스템 그대로인 셈이다.

설령 노동위원회 판정을 통해 교섭권을 확보해도 그때면 이미 과반을 점한 기존 노조와 회사가 협상을 끝낸 뒤일 게 뻔하다. MZ노조가 교섭하려 들면 다 끝난 마당에 뒷북을 치는 모양새가 된다. 사실상 MZ노조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MZ노조의 생각을 반영할 길이 차단되는 꼴이다.

따라서 부분대표제를 정교하게 다듬어서 MZ노조가 실질적으로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교섭의 유연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④홍보 실패

윤석열 대통령은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두고 논란이 이는 것에 대해 "홍보 실패도 정책 실패"라고 질타했다. 정확하게 짚은 말이다. 정부는 '주69시간' 논란이 벌어지면 그저 "최대 근로시간일 뿐"이라는 설명만 반복했다. 주 90시간, 주 80시간과 같은 극단적 선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여러 수단을 동원해 홍보하며 차단했지만, 유독 69시간에 대해서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온라인에 떠도는 '기절 근무표'. 근로시간 개편 방안이 근로자를 장시간 노동에 따른 기절 상태로 내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온라인에 떠도는 '기절 근무표'. 근로시간 개편 방안이 근로자를 장시간 노동에 따른 기절 상태로 내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근로시간 개편안을 적용하면 가능한 근로시간표

실제 근로시간 개편안을 적용하면 가능한 근로시간표

그러는 사이 정부 개편안을 비꼰 '기절 근무표'가 떠돌았다. 괴담에 가까운 이 근무표는 급속하게 확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 개편안을 적용한 기본적인 근무표만 제시했더라도 팩트체크가 됐을 상황이었다. 또 현재 가능한 최대 근로시간(주 129시간)과 개편안을 비교만 했어도 69시간 프레임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 수 있다. 사실상 정부가 괴담 확산을 방치한 꼴이다.

⑤수당 등 보상 논란

보상 논란은 비단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근로시간 개편안이 나오기 이전부터 이른바 공짜 야근 논란은 계속돼 왔다. 연장근로를 하고도 수당을 제대로 못 받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정부 개편안이 나오자 이 문제가 더 부각됐다.

결국 야근과 같은 연장근로를 할 경우 수당을 정확하게 지급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논란이 가라앉을 수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연장근로가 많은 주에 수당을 많이 받아야 월급이 깎이지 않고, 고생한 만큼 더 많은 임금을 기대할 수 있다. MZ세대는 특히나 공정한 보상에 민감하다.

따라서 포괄임금제부터 확실하게 정리해야 근로시간 체계 개편 방안을 설득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근로시간을 명확하게 체크하는 시스템을 각 기업이 갖출 수 있도록 근로감독 등 행정역량을 동원해서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이 또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전에 종합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근로시간 개편안의 수용 가능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