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20일(현지시간) 내놓은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에 고문과 살인, 인신매매 등이 만연해 인권 침해 수준이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또 중국과 러시아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양국 간 정상회담 기간 중 나온 지적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AFP=연합뉴스
국무부는 이날 발표한 '2022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을 '1949년부터 김씨 일가가 이끄는 권위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인권 침해 상황을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3대 정보·사찰기관인 국가보위성(비밀경찰 조직), 사회안전성(치안유지 조직), 인민군 보위사령부(방첩 부대)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고 있으며 이들 기관은 수많은 학대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정부에 의한 고문과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처벌, 자의적 체포 및 구금"이 만연해 있으며 "구타와 전기고문, 물고문 등이 자행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사법 기구가 독립되어 있지 않고 인터넷 자유와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종교와 신념의 자유, 이동 및 거주의 자유 등이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이밖에 아동 노동과 인신매매 등 여러 인권 침해 사례가 있으나, 인권을 유린한 공무원 등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과도한 예방 조치가 이어져 탈북자 수가 감소했다는 점도 담겼다. 지난해 7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발표한 '북한 내 인권상황에 관한 유엔 사무총장 총회 보고서'를 인용해서다. 국무부는 또 2015년 북한을 방문했다가 구금돼 17개월 만에 석방된 직후 사망한 미국인 오토 웜비어와 관련해 북한 정부가 아직까지 정확한 설명이 없다고 비판했다.

미국 국무부가 20일(현지시간) 발표한 '2022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의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문제 등이 논의됐다. AFP=연합뉴스
이번 인권보고서에 담긴 북한 관련 내용은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미국 정부가 최근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살피겠단 의지를 보이던 와중에 나온 것이라 주목된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12월 탈북하려는 주민들을 사살한다는 이유로 북한 국경수비대를 제재 대상에 올렸고, 지난 1월에는 6년간 공석이었던 국무부 북한 인권특사에 외교관 줄리 터너를 지명했다. 북한 인권특사는 미 정부의 북한 인권정책 수립과 집행을 관할하는 자리다.
중국 "위구르족 학살" 등도 비판
이번 보고서는 공교롭게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방문한 때 발표됐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장에서 특히 비판한 국가도 이 두 나라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0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회담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은 위구르족에 반인도주의적 범죄를 저지르고 대량학살하고 있으며, 티베트를 억압하고 홍콩에서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등 학대를 지속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와의 전면전으로 대규모 사망과 파괴가 발생했다"며 "러시아군은 민간인 즉결 처형, 여성과 아동에 대한 끔찍한 성폭력 등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푸틴 대통령과 회담 중인 시진핑 주석이 자체적인 정전 협상을 강조할 것으로 본다"며 '중국-러시아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러시아군의 철수를 담보하지 않는 정전은 푸틴이 군을 재정비하는 일만 도울 뿐"이란 주장이다. 이에 더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푸틴에 체포영장을 발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중국이 규탄은커녕 러시아의 중대 범죄에 외교적 은닉(diplomatic cover)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보고서에는 이란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광범위하게 탄압하고 있단 점, 탈레반의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심각하단 내용 등도 담겼다. 또 2021년 2월 군사 쿠데타 이후 상황이 점차 악화하고 있는 미얀마(보고서에서는 '버마'로 표현)에서 군사 정권이 민간인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밖에 사우디아라비아나 인도 등 동맹국의 인권 침해 행위도 자세히 적시됐다"고 보도했다.
한편 보고서 '한국' 편에서는 명예훼손죄가 광범위하게 적용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과 군내 동성애 처벌 문제 등이 언급됐다.
미국 정부는 50년 가까이 매년 전 세계 각국의 인권 상황을 평가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번 발표는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세 번째 보고서로 198개 국가와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