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적인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회의가 또다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부는 안보리의 책임을 촉구하는 한편 북한의 위성 개발을 직접 겨냥한 독자 제재안을 발표했다.
한·미·일 "중·러의 北 옹호가 도발 부추겨"
20일(현지 시간) 유엔 안보리 이사국인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비(非)이사국인 한국 등의 요청으로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한ㆍ미ㆍ일은 명백한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북한의 ICBM 도발을 규탄하며 모든 이사국들의 의장성명 채택 동참을 호소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선 북한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중ㆍ러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이어졌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안보리의 2개 이사국(중ㆍ러)이 유엔이 침묵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우리의 침묵은 안보리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세계 비확산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물론 안보리의 집단적 권한을 무시하고자 하는 북한의 욕구를 대담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미츠코 시노(志野光子) 일본 차석대사도 “북한이 전체 국제사회를 인질로 삼는 행동을 안보리가 허락해서는 안 된다”며 “모든 나라가 핵 비확산에 동참하고 북한에 (제재) 구멍을 제공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북한의 적대 정책과 안보리 기능 위협, 유엔 자체에 대한 뻔뻔한 조롱은 중단돼야 한다”며 북한의 도발을 ‘유엔에 대한 조롱’으로 규정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 직전인 지난 16일 오전 북한이 화성-17형 ICBM을 발사한 것에 대해선 “미래지향적 한ㆍ일 관계를 방해하기 위한 시도”라고 강조했다.
北 옹호한 중·러 "한·미 훈련에 대한 대응"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옹호해온 기존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겅솽(耿爽) 주유엔 중국 부대사는 “미국과 그 동맹들이 전례없는 대규모 연합 군사훈련을 벌인 것이 북한에 불안함을 갖게 한 것”이라며 북한의 도발을 한ㆍ미 연합훈련 등에 대한 대응이라는 억지 주장을 이어갔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러시아 차석대사도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및 안전을 위험하게 만드는 어떠한 군사활동에도 반대한다”며 한ㆍ미에 화살을 돌렸다.
유엔 안보리는 2017년 채택한 결의 2397호에 북한의 추가 ICBM 도발에 제재를 강화한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미국은 지난해 3월 이를 근거로 추가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을 추진했지만, 상임이사국인 중ㆍ러는 그해 5월 표결에서 아예 거부권을 행사했다.
미국은 대북 제재 결의안이 중ㆍ러의 반대에 막히자 그보다 수위가 낮은 의장성명 채택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ㆍ러는 이마저도 반대하고 있다.
정부, 국제사회 최초 '인공위성' 겨냥 제재안
중ㆍ러의 반대로 유엔이 공전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날 인공위성 개발 분야에 초점을 맞춘 독자 제재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5번째 발표된 독자 제재안으로,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에 특화된 감시대상품목(watch list)을 지정한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재재 대상엔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이영길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김수길 전 군 총정치국장(현 평양시 당위원회 책임비서)을 포함한 개인 4명과 중앙검찰소 등 기관 6개가 포함됐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이후 정부가 지정한 제재 대상은 개인 35명과 기관 41개로 늘어나게 됐다.
구체적 제재 품목은 초점면어셈블리 등 광학탑재체 구성품목, 별추적기ㆍ저정밀태양센서ㆍ자기토커 등 자세제어를 위한 장비, 태양전지판, 안테나, 위성항법장치(GPS) 등 인공위성 체계 전반을 포괄하는 총 77개 품목이다. 외교부는 해당 품목에 대해 제3국을 우회한 북한으로의 수출이 금지된다고 설명했다. 또 각국이 대북 수출통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주요 우방국에도 해당 목록을 사전 공유했다.
北 ICBM 개발 원천 차단 포석
정부가 위성개발에 대한 제재안을 발표한 배경은 인공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삼고 있는 북한의 ICBM 기술 개발과 도발과 관련한 기술과 자금줄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 핵심과제로 군사정찰위성 개발을 제시한 뒤 군사정찰위성 개발 계획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날 제재 대상에 이영길ㆍ김수길 등 북한의 고위 관리 외에 북한 군수공업부와 연계된 IT 기업 연변실버스타의 최고경영자(CEO)로 북한 IT 인력 해외 파견을 통한 외화벌이에 관여한 정성화와 북한의 자금세탁에 관여한 싱가포르인 탄 위 벵(TAN Wee Beng) 등을 포함시켰다.
제재 기관에도 북한 주민의 강제노역 등을 통한 대량살상무기 개발 자금 조달에 기여한 북한 최상급 검찰기관 중앙검찰소를 비롯해 북한 노동자 송출과 연관이 있는베이징숙박소, 철산무역, 조선4ㆍ26아동영화촬영소 등이 포함됐다.
이준일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은 “북한의 도발은 국제사회의 제재망을 더욱 촘촘하게 하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낳게 할 것”이라며 “정부는 국제사회와 공조해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에 대한 전방위적 대응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