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들이 개발한 기술을 기업 등에 넘겨주고 받는 수익은 연간 1000억원 정도다. 연도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KAIST가 연간 80억원 안팎, 서울대가 70억원 안팎의 수익을 올린다.
그런데 지난해 한양대의 배터리 관련 기술이 LG화학에 수백억원에 팔리는 사건이 터졌다. 국내 대학 사상 가장 고가의 기술이전 사례다. 한양대의 기술이전 수익은 연간 20억~30억원 수준인데, 한 번에 열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 셈이다.
수백억원대 기술 개발의 주인공은 선양국(62)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다. 국내 2차전지 1세대 연구자인 선 교수는 2022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 수상자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도 2014년부터 7년 연속 HCR(Highly Cited Researchers)로 선정된 배터리 분야 톱클래스 석학이다. 글로벌 학술기관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매년 선정하는 HCR은 각 분야에서 세계 0.1% 수준의 영향력을 가진 연구자를 의미한다.
배터리 외길 30년을 걸어온 선 교수는 “에너지에 국가 생존이 걸려 있다”고 말한다. 특히 모든 것이 모바일화하는 시대엔 배터리 기술이 국가 경쟁력에 직결한다는 것이다. 수백억원의 잭팟을 터뜨린 기술은 어떻게 개발됐을까. 세계 정상의 배터리 석학은 어떻게 성장해 왔을까. 한양대 연구실에서 선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K배터리’ 자부심에 안주하면 안 돼
- 반도체 다음 먹거리는 배터리라고 하네요.
- 모든 분야에 다 쓰이니까요.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전기차, 로봇, ESS(에너지저장시스템)부터 인공위성, 전기비행기, 드론, UAM(도심항공교통)도 있죠. 지금 전기차가 세계적으로 5~6% 정도 점유하고 있지만, 2030년께에는 크게 잡아 50%, 적게 잡아도 25%는 된다고 보거든요. 그 배터리 수요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또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면 배터리 기술이 더욱 중요하고요. 반도체보다 앞으로 시장이 더 커질 겁니다.
- 한·중·일 3국 경쟁이 치열하죠.
- 1991년 일본이 리튬이온전지를 처음 상용화했지만, 이후 일본은 정체된 분위기고 투자나 개발도 너무 느립니다. 이제는 중국이 가장 앞섰다고 봐요. 시장을 50% 넘게 차지한 것뿐 아니라 투자 규모도 비교할 수 없어요. 기술에 대한 인센티브도 엄청나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역동적으로 연구하죠. 우리가 기술이 가장 앞섰다고 ‘K배터리’라며 자부했지만 이제 정신차려야 해요.
- 중국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 우리가 앞선 것도 있지만 중국이 앞선 것도 있어요. 제가 ‘ACS 에너지레터’란 학술지 에디터인데, 중국 논문 수준이 엄청 빠르게 높아졌습니다. 5년, 10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 보내온 논문 95%는 수준 미달이라 리젝트(reject·게재 거부)했는데, 지금은 전혀 달라요.
- 현실적으로 우리가 중국만큼 투자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 국가 규모에서 차이가 크니까요. 결국 우리는 ‘키 테크놀로지’를 개발해야 해요. 핵심 기술을 먼저 개발해 특허를 받고, 그들이 따라오려면 비싼 값을 치르게 하는 게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입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가 학교 실험실에서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