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길이 4857㎞ 파이프, 전투기만큼 절실하다…中이 러와 밀착 이유 [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을 맞은 지난 2월 24일 ‘종전 협상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중국의 역할과 중국-러시아 관계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린다. 중국 외교부가 이날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 입장’을 발표하고 대화 재개를 촉구하면서다.

마침 중국의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이 2월 22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협력을 다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왕이 위원을 통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러시아로 초청했다.

푸틴과 가까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2월 28일부터 사흘간 중국을 국빈 방문한 것도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물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상반기 중에 베이징으로 초청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서방과 우크라이나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전쟁 중단을 중재할 위치가 아니라 개전 이래 러시아를 음양으로 지원해온 우방국이 아니냐는 시각 때문이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중국에 러시아에 무기와 탄약을 지원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보급 문제를 겪고 있는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무기와 탄약을 다량 공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우방국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관련 정보도 있다며 중국에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 및 서방과 경제적으로 얽히고설킨 중국으로선 무기 공급 결정이 쉽지는 않은 입장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외교적‧군사적으로 2001년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함께 창립해 서방에 공동으로 맞서온 처지이기도 하다. 중국은 전투기를 비롯한 상당수 정밀 무기체계를 러시아에서 수입해온 것은 물론 러시아의 기술을 바탕으로 거대한 군수산업을 일으켰다.

러시아는 중국과 4209㎞나 되는 긴 국경을 맞댄 이웃국가이기도 하다. 함께 소련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과의 국경 7512㎞에 이은 러시아가 인접국과 마주보는 둘째로 긴 국경이다.

특히 중요한 것이 에너지다. 거대 경제의 발전과 유지를 위해 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인 중국으로선 에너지 수출국인 러시아가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에너지,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양국간 에너지 수출입을 중심으로 심층 분석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외교‧군사 부문은 물론 에너지 분야에서 특히 떼려야 뗄 수 없는 특수 관계다. 수치가 이를 잘 말해준다. 미국 컬럼비아대 글로벌 에너지 정책센터(CGEP)는 지난 2월 23일 “2022년 러시아는 하루 170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중국의 2대 에너지 공급자”라고 밝혔다. 중국 (원유) 수입의 17%(2021년엔 16%), 러시아 수출의 35%(2021년엔 31%)를 차지하는 물량이다.

중국은 해상은 물론 송유관을 통해서도 러시아산 원유를 들여오고 있다. 양국 사이를 잇는 송유관은 러시아가 2012년 2단계를 완공한 총연장 4857㎞의 동시베리아‧태평양(ESPO) 송유관의 지선에 해당한다. 동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주 타이셰트를 출발해 극동 아무르 주의 스코보도디노를 거쳐 연해주 해안의 코즈미노까지 이어진다. 코즈미노는 극동 항구인 나홋카의 인근 항구다.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지척이다.

중국은 2009년 러시아와 ESPO의 지선을 건설해 중국 동북지역으로 연결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블룸버그 통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러시아의 에너지와 송유관 업체에 250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 대가로 스코보도디노에서 아무르 강(중국에선 헤이룽장, 黑龍江)을 건너 중국 동북지방의 다칭(大慶)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지선을 건설해 러시아산 원유를 하루 30만 배럴씩 20년간 공급받기로 했다. 스코보도디노에서 아무르 강에 이르는 러시아 구간 64㎞와 아무르강에서 다칭에 이르는 992㎞의 중국 구간이 2010년 완공돼 중국에 원유를 공급하고 있다.

CGEP는 중국의 러시아산 가스 수입도 늘었다고 지적했다. 2022년 러시아는 중국에 파이프라인을 통해 155억㎥를 수입해 투르크메니스탄에 이어 2위의 공급국이 됐다. 이는 중국이 파이프라인으로 수입한 전체 가스 물량의 25%(2021년엔 24%), 러시아의 파이프라인 가스 수출의 15%(2021년엔 5%)에 각각 해당한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는 ‘시베리아의 힘 1(중국에선 ’中俄東線天然氣管道‘, 러시아에선 Сила Сибири, 실라 시비리)’ 가스 파이프라인이 연결돼 있다. 러시아 국영 가스업체인 가스프롬이 운영하는 이 파이프라인은 동시베리아 사하공화국의 차얀다 가스전(1단계 출발점)과 바이칼호 서북부에 있는 이르쿠츠크 주 코비코타 가스전(2단계 출발점)에서 각각 출발한다. 극동 아무르 주 스브브드니와 아무르 강 연안의 블라고비시첸스크(1단계 종점)를 지나 연해주 블라디스토크로 이어진다.

가스프롬 등에 따르면 2005년 처음 기획된 이 파이프라인은 2012년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추진력을 얻었으며 ‘시베리아의 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중국은 2014년 러시아와 계약을 맺고 30년간 총 4000억 달러에 이르는 가스를 공급받기로 했다. 2014년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장가오리(張高麗) 제1부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사하공화국의 야쿠츠크에서 기공식이 열렸다.

그 뒤 2019년 아무르강을 지나는 2개의 파이프라인 터널이 완공됐으며, 그해 12월 중국으로 가스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아시아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41억㎥의 가스를 도입했으며, 당시 2023년까지 물량이 연간 380억㎥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측 가스관은 동북 지방을 지나 최종적으로는 경제중심지 상하이(上海)까지 이어진다.

양국의 가스 교역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는 몽골을 거쳐 중국에 이르는 ‘시베리아의 힘 2’ 파이프라인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난해 12월 15일 보도했다. 로이터는 “완성될 경우 추가로 매년 약 500억㎥의 가스를 추가로 공급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가스 판매량을 2025년까지 매년 480억㎥, 2030년까지는 850억㎥로 늘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중국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은 오히려 늘었다. 에너지 전문매체인 오일프라이스닷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석유‧파이프라인가스‧액화천연가스(LNG)‧석탄 등 화석연료는 68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0억 달러가 증가했다”고 지난해 12월 21일 전했다. 러시아의 알렉산데르 노바크 부총리는 중국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이 2022년 금액으론 64%, 물량으론 10%가 늘었다고 지난해 11월 18일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판매 대상을 유럽 대신 우호국으로 바꾸면서 생긴 상황이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의 러시아산 가스 수입이 2022년 전년도보다 10%가 늘었다고 1월 12일 보도했다. 러시아는 파이프라인과 LNG 선적을 통해 중국이 필요한 가스의 10%를 수출해왔지만 최근 공급 물량을 늘려 중국의 최대 공급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튀르키에 안탈리아 통신이 지난해 12월 13일 전했다. 중국은 가스 수요의 45%를 해외 수입으로 충당해왔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은 지난 1월 17일 러시아가 수출한 전체 원유와 컨덴세이트(초경질원유)의 36%가 중국으로 공급됐다고 발표했다. 2022년 1~10월 러시아가 선박으로 수출한 석유제품은 하루 250만 배럴 수준으로 EU 시장이 그 52%를 공급받았다.

CGEP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은 러시아에 더욱 중요한 에너지 파트너가 됐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에너지 고객은 서유럽이었으나 개전 이후 서방 에너지 기업은 러시아를 떠났으며, 서방 고객은 러시아를 꺼려했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했으며 러시아는 그 보복으로 파이프라인을 통한 대유럽 가스 공급을 제한하거나 차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러시아에 더욱 중요한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CGEP에 따르면 러시아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중국에 대한 제2위의 석탄 공급국이다. 러시아는 2022년 중국에 6810만t의 석탄을 수출해 중국 수출의 23%(2021년엔 18%), 러시아 수출의 32%(2021년엔 25%)를 차지했다.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이 통하지 않고 압축해서 선박으로 운송하는 LNG(액화천연가스) 부문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러시아는 2022년 중국에 650만t을 수출해 호주‧카타르‧말레이시아에 이어 제4위의 LNG 공급국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국 수입물량의 10%(2021년 6%), 러시아 수출물량의 20%(2021년 17%)를 차지했다.

중국은 2022년 모두 810억 달러의 원유‧파이프라인가스‧LNG‧석탄을 수입했다. 2021년 521억 달러보다 55.4%가 늘었다. 이 금액의 71.8%에 해당하는 584억 달러가 원유 수입에 지출됐다. 2022년 러시아에서 수입한 원유의 평균가격은 배럴당 92달러였으며, 러시아를 제외한 국가에서 수입한 원유의 평균 가격은 99달러였다. 러시아는 수출 물량을 유지해서 좋고, 중국은 비교적 싼 값에 원유를 확보해 좋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을 압박하고 싶어하는 서방에는 악몽 같은 일일 것이다.

에너지뿐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전체 무역량도 2022년 기록적인 수준을 나타냈다. 지난 1월 13일 중국 해관(세관)에 따르면 2022년 양국간 교역량은 1조 2800억 위안(1900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경제제재로 러시아의 대유럽연합(EU) 수출이 줄었지만 중국과의 교역은 크게 증가한 것이다.

EU는 2022년 12월 5일 배럴당 60달러가 넘는 러시아산 원유의 선박 수송의 보험‧선적 서비스를 금지하는 프라이스캡(가격상한제)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압박하려는 조치다. 하지만 중국의 정유업자들은 이를 이용해 대러 원유 수입 협상력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선박 외에도 ESPO 등 가스파이프를 통해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가 해상 수송을 통해 중국에 공급한 원유는 하루 100만 배럴 규모다. 12월 5일 프라이스캡에 적용된 뒤에도 러시아의 중국행 해상 원유 공급량에는 별 변화가 없는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행선지 불명의 러시아산 원유 수출이 현저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물량이 중국과 인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증거는 없지만 서방은 비공식 분야에서도 러시아와 교역을 늘리고 있다고 추정한다. 결국 중국과 러시아는 전쟁을 계기로 더욱 밀착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중재에 서방이 시큰둥한 이유이기도 하다.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