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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유엔 인권조사위 10주년, 북한 인권 ‘뒷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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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북한 인권 실태를 설명할 때 가장 함축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암울하다’이다. 지금 상황도 매우 좋지 않지만, 앞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 사용한다. 유엔은 2003년 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결의안’을 시작으로 북한의 암울한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선봉장 역할을 해오고 있다. 유엔은 2003년 인권위원회와 2005년 총회를 시작으로 20년 연속으로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강력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특히 2013년 3월 21일 당시 유엔 인권이사회는 4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치를 결의했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다른 조사위원회와 달리 유엔에서 최초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조사위원회는 호주 대법관 출신 마이클 커비 위원장을 비롯해 인권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됐다. 위원회는 이들에게 1년간 북한의 식량 문제, 구금 시설, 고문 및 비인간적 대우, 생명권, 강제 실종과 외국인 납치 등 9개 분야에서 구체적인 인권 침해 사안을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임무를 줬다.

유엔 위원회 설치 만장일치 결의
가해책임 명시 보고서 작성 성과
인권으로 북 주민 안전 도모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유엔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2014년 2월 7일 공표됐다. 보고서는 북한 인권에 대해 유엔이 직접 조사하고 작성한 최초의 결과물이다.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권위와 신뢰성을 인정받는 가장 역사적인 보고서로 평가받는다. 북한 인권 실태와 진단은 물론이고 북한 당국과 국제사회에 대한 인권 개선 권고사항을 담고 있다. 북한 당국이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를 자행해 왔으며, 국제형사재판소(ICC) 관할 범죄인 반인도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반인도범죄 행위의 구체적인 가해 책임도 명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북한 최고 통치권자’가 가해 책임자임을 분명히 적시했다. 북한 최고 통치권자를 비롯한 가해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하도록 권고했고,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국제사회에 보호책임(R2P)을 이행하도록 명시했다.

보호책임은 국민에 대한 인권 보호책임을 가진 국가가 그런 능력이나 의지가 없을 경우 국제사회가 해당 국가를 대신해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 해당 국민에 대한 보호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원칙이다. 보호책임은 1990년대 르완다와 코소보 내전 당시 발생한 대규모 ‘인종 청소(Ethnic cleaning)’와 집단학살에 국제사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에서 강화된 개념이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설립과 활동, 보고서 발간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핵과 미사일에서 인권문제로 확대한 전환점이 됐다. 그러나 유엔의 활동에도 실질적인 북한 인권 개선 효과는 여전히 미미하다. 북한 당국은 인권 보호 조항을 법률에 규정하고 일부 인권 개선을 위한 제도적 조처를 하는 듯했으나 국제사회의 기대와는 큰 차이가 있다. 북한 인권 문제는 개인의 인권 보호보다는 체제 안전을 우선하는 북한 당국자의 인식 전환 없이는 획기적 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다.

북한은 식량 부족으로 대규모 아사 사태를 경험한 1990년대에도 국제사회의 우려와 지원을 외면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착해왔다. 그 결과 북한의 고립은 국제사회에서 더 심화했고, 최근에는 황해도 개성을 비롯해 각지에서 아사자가 다시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시절 탈북 청년 어민 2명을 강제 비밀 북송한 사건을 비롯해 ‘대북 전단 금지법’ 제정, 북한인권단체 탄압, 북한인권법 무력화 정책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했다. 북한의 반인권적이고 퇴행적 태도와 당시 한국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는 미국과 유럽 등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주도해온 국가들에 피로감과 무력감을 안겼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인권법 정상화를 비롯해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대북 제재가 맞물리는 상황에서 북한 인권 개선은 새로운 전략 개발이 필요하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이용해 체제 안전을 도모하듯,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인권을 활용해 북한 주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10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책임을 북한 당국만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맡아야 한다고 권고했음을 분명히 상기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