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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 행정 혁파해 핀테크 허브 육성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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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동북아 금융 허브 선언 20년, 무엇을 할 것인가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

대한민국이 동북아시아 금융의 허브가 되겠다는 구상은 많은 금융인의 꿈이었다. 그러나 2003년 12월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 발표 이후 약 20년간 많은 시도를 했음에도 진전은 거의 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 의견이다. 금융허브 역량을 평가하는 국제금융중심지 지수로 볼 때 지난해 9월 기준 서울이 11위, 부산이 29위로 싱가포르(3위)나 홍콩(4위)과 격차가 여전히 큰 것이 현실을 말해준다.

서울·부산 금융경쟁력 하위권
시장 작고 각종 규제도 걸림돌

핀테크 역량은 세계 4위로 성장
의료·K팝 등 융합서비스 다양

인공지능·빅데이터 역량 키워
글로벌 시장에 적극 진출해야

세율 높고 노동시장 유연성 부족

국제금융중심지가 되기 위해선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해외 금융사에 우호적인 비즈니스 환경,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법규 체계와 자본주의 시스템, 영어 소통을 비롯한 외국인이 살기 좋은 생활 여건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요건에서 경쟁력이 많이 미흡한 것으로 지적된다. 시장 규모(2조20억 달러)도 중국·일본의 약 3분의 1로 작을 뿐 아니라 최고세율이 25%로 싱가포르(17%)·홍콩(16.5%)보다 높다. 경직적인 법체계, 노동시장 유연성, 외국어 소통 등에서도 싱가포르·홍콩보다 취약하다는 평가다.

정유신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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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최근 금융 당국과 전문가들 중심으로 기존 금융허브 대신 핀테크 허브(디지털 금융중심지) 정책이 본격 논의되고 있는 것은 시의적절한 방향으로 평가된다. 금융연구원은 지난해 말 ‘글로벌 디지털 금융 중심지의 개념과 추진방안’이란 보고서에서 아날로그 금융산업으로는 글로벌 금융중심지나 아시아 금융허브가 되기 어렵다고 보고 대안으로 디지털 금융산업, 글로벌 핀테크 허브 육성을 제안했다. 필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핀테크 허브 육성을 통해 아시아 금융중심지를 만드는 전략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블룸버그 혁신지수 세계 1위

디지털화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모든 산업의 핵심 요소다. 금융 역시 디지털화는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명확한 추세이다. 금융허브 역시 중심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가고, 핀테크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핀테크 허브 도전 전략의 전망이 밝은 것은 무엇보다 한국의 정보기술(IT)분야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국의 IT 강점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만큼 이는 핀테크의 국제적 제휴·협력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일례로 동남아시아의 경우 고성장 지역인 데다, 금융의 빠른 디지털·모바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핀테크의 진출 최적지라 할 수 있다. 알리페이 등을 앞세워 동남아를 공략하던 중국이 최근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빅 테크에 대한 규제강화로 핀테크를 통한 동남아 진출 확대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시기적으로도 적기라 할 만하다.

둘째, 핀테크 혁신 역량이 축적돼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2022년 금융중심지 순위에서 서울은 11위를 기록했지만, 핀테크 분야에선 4위에 올랐다. 핀테크 역량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 ICT 혁신 역량도 뛰어나 2017년 발표된 국가별 ICT 발전지수에서 세계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선 2021년 세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핀테크기업 수도 2014년 131개에서 최근 600개 이상으로 5배로 성장했다. 카카오뱅크나 토스 등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성공 사례 등도 활용할 수 있다.

셋째, 금융 디지털화로 언어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손안의 모바일 화면’을 활용하면 언어 능력 부족을 상당 부분 메울 수 있다. 모바일 화면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사용자 경험(UX) 구성의 경쟁력은 싱가포르·홍콩 대비 열세에 있는 영어 소통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

넷째, 금융에만 특화된 싱가포르나 홍콩과 달리 의료헬스·문화예술 등 금융과 융합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산업을 갖추고 있는 점도 우리나라의 강점이다.

마이데이터 산업 세계 최초 도입

그렇다면 핀테크 허브 구축은 어떤 기대효과로 이어질까. 우선 아날로그 대신 시공간 제약이 없는 디지털을 활용하는 만큼 비용·시간 절감에 따른 효율성 제고 효과는 기본이다. 일각에선 디지털 금융의 성격상 집적 효과가 낮을 것이란 우려도 하지만, 핀테크 업체 간 집적 효과와 핀테크를 활용하는 금융회사 참여 등 다양한 허브 구조가 가능할 수 있다.

빅데이터 구축과 ABCD(인공지능·블록체인·클라우드·빅데이터) 활용 효과가 극대화될 거라는 점도 중요하다. 핀테크 허브는 비즈니스모델 관점에서 보면 국내외 디지털 금융플랫폼 집적지다. 그 핵심은 빅데이터다. 따라서 국내는 물론 해외 빅데이터까지 집적할 수 있게 되면 ABCD기술 활용 효과도 그만큼 극대화할 수 있다. 예컨대 국별 또는 국가 포트폴리오를 대상으로 한 소비자 만족도 평가, 맞춤형 신상품 개발 등이 대표 사례다.

이와 관련해 기억할 점이 있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금융플랫폼 산업의 대표 격인 마이데이터 산업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국가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오픈뱅킹 제도와 금융데이터거래소 등 마이데이터 산업의 생태계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비교해 명확한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 연계해 수출 확대

또 다른 기대효과는 금융과 여타 서비스산업의 융합이다. 디지털 금융플랫폼을 통해 국내외 소비자에게 금융서비스에다 의료헬스·문화예술·교육·부동산 등의 다양한 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이는 금융에만 특화된 도시국가인 홍콩과 싱가포르가 쫓아올 수 없는 한국 고유의 경쟁력 분야가 될 것이다. 예컨대 동남아에서 선호도가 높은 성형 의료와 K팝 인센티브를 장착한 금융서비스가 사례가 될 수 있다.

디지털 금융플랫폼을 활용한 온라인 수출입 창구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 금융데이터, 특히 금융결제 데이터는 소비자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정보를 갖추고 있다. 디지털 금융플랫폼과 온라인 쇼핑몰을 연계할 경우 비금융 기업의 수출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해외 인지도가 취약한 벤처기업의 수출 창구로 활용할 경우 벤처기업의 비용 절감과 수출 확대는 물론 핀테크 회사와 온라인쇼핑몰의 해외 진출에도 도움이 되는 훌륭한 윈-윈 수단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블록체인 기술과 연계할 경우 디지털자산 허브로의 융합·확대도 노려볼 만하다. 우리나라는 암호자산·디지털 자산에 관한 한 많은 해외진출 사례를 갖고 있고, 거래 측면에서도 세계 상위권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토큰 증권 제도화를 시작한 만큼 핀테크 허브와의 시너지 효과도 충분히 기대해볼 만하다. 또 핀테크 허브 구축이 본격화하면 핀테크 업체의 글로벌 진출이 활발해져서 유니콘으로의 성장 기회가 늘어나고 디지털 자산업체의 사이버 영토(Cyber-territory)가 무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린다.

해외 핀테크 국내 진입 허용해야

물론 글로벌 핀테크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정책당국과 업계의 각별한 노력과 협력이 필수다.

우선 국내 핀테크의 해외 진출(outbound)뿐만 아니라 해외 핀테크의 국내 진출(inbound) 및 유치가 필요하다. 특히 핀테크 기업과 관련 기관의 집적지(클러스터)를 조성하고 해외 핀테크 기업에 대한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등도 검토할 만하다. 즉, 글로벌 핀테크 테스트베드란 관점에서 우리나라 금융규제 샌드박스에 해외 핀테크 기업의 참여를 허용하자는 얘기다. 이를 위해 상호진출 촉진을 위한 정부 간 양해각서(MOU) 체결 등도 필요하다.

핀테크 벤처기업의 성장단계별 투자 생태계 구축도 중요하다. 특히 시장 실패 영역인 초기 단계와 유니콘으로 향해가는 단계에 있는 벤처에 대한 투자 활성화가 정책 지원의 핵심이다. 공공부문의 마중물 투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민간 기관투자자 참여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도 검토해봄 직하다.

친환경·ESG 경영에도 기여

친환경 혹은 ESG를 끌어안기 위한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ESG기업이나 기술에 대한 금융지원 등이 그런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는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는 ESG 핀테크의 활성화는 물론 향후 ITㆍ디지털을 연결고리로 삼는 금융과 탄소배출권 시장의 시너지 창출에도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칸막이 행정’의 혁파다. 특히 핀테크와 여타 서비스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핀테크 산업 내부 혁신뿐만 아니라 핀테크와 여타 산업간 융합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정책 결정권자인 정부 각 부처가 칸막이를 깨고 나와 다른 부처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융합 행정이 일어나야 한다. 향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핀테크 허브가 아니라 선점자 우위(First-Move Advantage)를 노리는 능동적이고 과감한 핀테크 허브 전략을 기대한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