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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좋은 사람, 최고의 사람, 필요한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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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어느 쪽입니까? 선생님은 좋은 의사입니까? 최고의 의사입니까?” 2017년 대한민국 콘텐트 대상을 받은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젊은 의사 강동주(유연석)가 다분히 낭만적인(?) 의사 부용주(한석규)에게 묻는 말이다. 이 질문 속의 ‘좋은 의사’와 ‘최고의 의사’는 무엇이 다를까.

드라마의 맥락을 보면 이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글로 옮겨보니 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최고’를 ‘좋다’의 최상급 표현으로 보면 이 질문은 단순히 ‘능력치’를 묻는 게 된다.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을 한 것은 아닐 터, 생각을 명확히 정리해 보려 ‘좋다’와 ‘최고’의 의미에서 교집합을 제거해 본다. ‘좋다’에는 ‘원만하거나 선하다’라는 인격적 측면이, ‘최고’에는 글자 그대로 ‘으뜸’이라는 위상이 남는다.

멀고도 험한 ‘좋은 사람’ 되는 길
‘최고’라는 위상은 진인사대천명
타인의 필요에 응하는 삶의 가치

삶의 향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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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꼬인 마음으로 들어보면 ‘사람 좋다’는 말에 은근히 내포된 ‘무능함’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질문을 길게 풀어보면 이렇게 된다. “어느 쪽입니까? 당신은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하지만 무능한) 의사입니까? 탁월한 의술을 지닌 (하지만 개인적 성취를 추구하는) 의사입니까?” 이 질문은 마음 씀씀이와 능력을 배타적 관계로 보는 커다란 오류를 지니고 있으므로 사실 대답할 가치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훌륭한 사람의 필요충분조건이라 한다면 드라마 속 낭만닥터는 좋은 의사도 최고의 의사도 아닌 ‘훌륭한 의사’이다.

그런데 정작 그는 이 멍청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 여기 누워 있는 환자에게 물어보면 어떤 의사를 원한다고 할 것 같나? 최고의 의사? 아니, ‘필요한 의사’이다. 그래서 나는 이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좋은 의사이자 최고의 의사인 훌륭한 의사가 아니라 필요한 의사?

‘훌륭한’이라는 형용사의 수식을 받는 주체가 의사임에 반하여 ‘필요한’의 주체는 환자이다. 다시 말해 ‘환자가 필요로 하는 의사’, 즉 의사라는 하나의 주체에 대한 관점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의 입장에서 자신을 규정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그의 대답은 ‘소명(召命) 의식’에 맞닿아 있다.

소명의 원뜻은 ‘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이지만, 임금 없는 세상에서 소명은 ‘신의 부르심’ ‘자신에게 부여된 일’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독일인은 직업을 부름을 받은(天職·Beruf) 것이라 하고 재능(才能)은 대가 없이 ‘받은 것(Begabung)’이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 영향권에 놓인 나라 대부분은 그것을 ‘주인이 맞긴 큰돈(달란트· Talent)’이라고 부른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만, 타고난 성정은 그 길을 벗어나라고 부추기고, 애써 그 길을 걷다가 작은 손해라도 생기면 그때마다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이다. 경쟁에서 이기기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고 최선을 다하고도 질 때가 많다. ‘땀(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지만, 그것은 용기를 북돋기 위한 수사일 뿐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이 말의 기원이라 추측되는 사자성어 ‘무한불성(無汗不成)’은 상당히 냉정하게 말한다. ‘땀 흘리지 않고는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없다.’ 그 의미를 뒤집어 보면 땀과 노력은 성취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이 된다. 작은 성취조차도 그러하니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되는 일일 뿐 우리 같은 필부필부(匹夫匹婦)에게는 로또 당첨만큼이나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도, 더 나아가 그 모든 것을 갖춘 훌륭한 사람이 되기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니…. 이쯤 되니 다 내려놓고 비현실적인 희망 고문에서 벗어나자는 게 아니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멋지게 한마디 하지 않았나. “이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 중”이라고….

삶의 가치를 ‘최고’, 즉 자기 능력을 통해 정점에 도달하는 것에 둔 젊은 제자에게 그것을 타인의 필요에 헌신하는 것에서 찾으라는 가르침이 이상적이라기보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생각하기에 따라 그 무엇보다 고귀한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필요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盡人事) 그것으로 족할 뿐 성취 여부를 결정하는 하늘의 명을 기다릴(待天命) 필요도 없다.

정지원 시인은 안치환의 입을 빌려 외로움과 슬픔을 사랑으로 이겨내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노래했지만, 타인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땀과 시간을 기꺼이 쏟아붓는 이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지 않을까.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