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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이 봄에 다시 봄노래를 들으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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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회숙 음악평론가

진회숙 음악평론가

어느 날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꽃이 만발해 있었다. 봄날의 꽃들은  언제나 이렇게 기습적으로 핀다. 그저 보통 나무처럼 무심하게 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며 세상의 빛깔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봄꽃의 아름다움만큼 허망한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봄꽃의 아름다움은 찰나적이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등장이 너무나 화려했기에 뒤이은 몰락이 더더욱 허망하게 느껴진다.

음악으로 읽는 세상

음악으로 읽는 세상

봄을 그린 음악 중에 멘델스존의 ‘봄노래’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멜로디를 구성하고 있는 음 하나하나에 모두 장식음이 붙는다. 봄날에 피는 형형색색의 꽃처럼 장식음이 난무하는 이 곡에는 일말의 그늘도 없다. 오직 충만한 봄기운만이 있을 뿐이다. 꽃과 나뭇잎 문양으로 장식된 아르 누보 스타일의 장식품을 보는 것처럼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너무나 화려한 장식음의 공급과잉에 현기증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아! 그 참을 수 없는 무념(無念)의 사치여! 다가올 몰락에 대한 일말의 불안도 없이 어쩌면 이토록 마음껏 화려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곡의 작곡가가 멘델스존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멘델스존은 평생 꽃길만 걷다 간 사람이다.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선배나 후배 작곡가들이 좀처럼 누리지 못했던 호사를 누리며 살았다. 그의 인생 자체가 봄날이었다. 그러니 음악도 봄날처럼 경쾌하고 행복할 수밖에.

제피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서풍의 신, 꽃의 여신 플로라의 애인)의 봄바람이 꽃망울을 터트리는 계절이다. 이 봄에 나는 다시 멘델스존의 ‘봄노래’를 듣는다. 봄꽃처럼 흐드러진 장식음의 세례를  받으며 온몸으로 봄기운을 느낀다. 비록 순식간에 사라지는 허망한 아름다움일지언정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사심 없이 봄의 사치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

진회숙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