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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모멘트’ 피했지만, 22조원대 CS 채권 휴지조각 후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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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스위스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로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가 파산 상태에 빠진 크레디트스위스(CS)를 극적으로 인수하는 협상안이 타결됐다. 19일(현지시간) UBS, CS, 스위스 연방당국 및 국립은행 관계자들이 베른에서 CS 인수 방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위스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로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가 파산 상태에 빠진 크레디트스위스(CS)를 극적으로 인수하는 협상안이 타결됐다. 19일(현지시간) UBS, CS, 스위스 연방당국 및 국립은행 관계자들이 베른에서 CS 인수 방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글로벌 금융위기로 치닫던 ‘은행 위기’가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로 일단 주춤해졌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은 당분간 불안정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스위스 정부와 국립은행(SNB)은 UBS가 CS를 총액 32억3000만 달러(약 4조2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UBS의 CS 인수가 결정되지 않았다면 주가 폭락 등 추가 자금 이탈 가능성이 컸다. CS는 총자산이 지난해 말 기준 5300억 스위스프랑(약 750조원), 직원 수는 5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큰 글로벌 금융사다. 파산한다면 금융위기 확산 단계인 ‘리먼 모멘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리먼 모멘트란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것처럼 특정 기관의 위기가 시스템 위기로 확산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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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S의 CS 인수 결정 소식에 우려했던 ‘검은 월요일’은 피했지만 CS 여진에 20일 코스피는 0.69% 하락했다. 코스피는 UBS의 CS 인수 소식에 장 초반 2400선을 넘는 등 강세를 보였다가 전 거래일보다 16.49포인트 내린 2379.20으로 거래를 마쳤다. UBS의 인수 과정에서 CS가 발행한 조건부 자본증권(AT1)이 상각될 것이라는 소식이 투자심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이날 UBS의 CS 인수와 관련해 “CS의 채권 가운데 160억 스위스프랑(약 22조47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AT1)을 모두 상각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는 채권 가치가 사실상 ‘0’이 됐다는 의미다.

AT1은 은행 등 금융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은행의 자본 비율이 기준치보다 떨어지면 투자자 동의 없이 상각하거나 보통주로 전환해 은행의 자본을 늘려주도록 설계됐다. 코코본드라고도 불린다.

이번에 상각된 AT1 규모는 유럽 AT1 시장 역사상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전까지 상각 규모가 가장 컸던 2017년 스페인 포플라르은행의 13억5000만 유로(약 1조8900억원) 상각 대비 10배를 훌쩍 넘는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핌코·인베스코·블루베이펀드와 같은 자산운용사가 대량의 CS AT1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은행이 발행한 AT1 가격도 줄줄이 떨어졌다. 홍콩에 본사를 둔 뱅크오브이스트아시아와 태국 카시콘은행의 AT1 채권은 각각 장중 8.6센트, 4.3센트 하락해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AT1 보유 물량이 많은 은행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폭락하며 홍콩·일본·중국 증시도 흔들렸다.

채권 투자자들은 UBS의 CS 인수 과정에서 CS의 주주만 보호받고 채권 보유자는 사실상 희생양이 됐다며 반발했다. CS의 모든 주주는 22.48주당 UBS 1주를 받게 된다. 프랑스 자산운용사 아킬라의 패트릭 카우프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블룸버그에 “주주들이 아닌 AT1 보유자들에게 돈이 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AT1이 고위험 자산인 만큼 AT1 투자자를 보호하는 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 소식으로 은행주를 중심으로 글로벌 증시에서 불안감이 확산하자 유럽 금융 당국이 AT1 처리 방식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20일(현시시간) 유럽중앙은행(ECB), 유럽단일정리위원회(SRB), 유럽은행관리국(EBA)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통상 주식이 손실을 흡수하는 첫 번째 상품이며, 이를 완전히 사용한 후에야 AT1을 상각해야 한다”며 “이 접근 방식은 과거 사례에 일관되게 적용됐으며 앞으로도 위기 개입에서 이를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방침이 전해지면서 유럽 증시는 안정세로 출발했다.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위스 투자자들은 소송을 불사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UBS와 CS 두 은행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을 대변하는 에토스재단은 “이번 인수가 주주와 스위스 경제에 엄청난 낭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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