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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나가는 곳, 가보니 천당" 임종 전 1억 기부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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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한 달 전 가정 호스피스 돌봄을 위해 집을 방문한 의료진이 촬영한 고(故) 박춘복 씨와 아내 강인원 씨. 사진 서울성모병원 제공.

임종 한 달 전 가정 호스피스 돌봄을 위해 집을 방문한 의료진이 촬영한 고(故) 박춘복 씨와 아내 강인원 씨. 사진 서울성모병원 제공.

80대 박춘복 씨는 지난해 5월 서울성모병원에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부인암을 앓았던 아내가 병마를 이겨낸 곳이라 병원에 대한 믿음이 컸지만 그래도 호스피스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죽어서 나가는 곳에 왜 가느냐” 는 게 박 씨 생각이었다.

그러나 6개월여 흐른 지난해 11월 14일 처음 호스피스를 경험한 뒤로 달라졌다. 박 씨가 오면 목욕물을 떠 깨끗이 씻겨주고 면도에 이발도 해주는 봉사자들에 박 씨 마음이 열렸다. 내 집 같은 편안함이 들기 시작했다. 박 씨는 다른 병원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내 강인원 씨는 “처음에는 ‘(호스피스는) 죽어서 나가는 병동인데 왜 가냐’며 안 가겠다 했는데 병동 생활을 하면서 ‘여기가 곧 천당’이라며 좋아했다”고 전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원래 낙천적이고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며 “간호사, 의사 선생님들이 따뜻하게 해줘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도 인기 있는 사람인가 보다 싶었다”고 했다.

박 씨는 집과 호스피스를 오가며 돌봄을 받았다. 평소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와 함께하길 원한 사랑꾼 박 씨를 위해 의료진도 힘을 보탰다. 박 씨가 자택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을 때는 병원에서만 쓰는 자가통증조절장치(PCA)를 들고 방문해 고통을 덜어줬다.

주치의 안창호 완화의학과 교수는 “할아버지는 호흡곤란 등 고통이 클 텐데도 항상 웃는 모습으로 맞이해줬다”라며 “배우자분에 대한 사랑 표현도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전자 대리점을 운영하며 모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길 바란 박 씨는 호스피스를 기부처로 정했다. 통상 사후에 후원을 받는 게 원칙이지만, 박 씨는 호스피스에 써달라며 생전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서약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박명희 팀장은 “병동 간호사나 봉사자들이 할아버지를 특별히 생각했고, 가정 호스피스 돌봄 동안 의료진에 고마움이 큰 할아버지가 의식이 있을 때 후원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라고 했다.

박 씨는 지난달 28일 세 번째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고 이틀 뒤인 이달 2일 임종했다. 이요섭 성모병원 영성부원장 신부는 “고인과 가족들을 위해 미사 봉헌과 함께 기도 중에 항상 기억하겠다”라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돌봄에 감사를 전하고자 고(故) 박춘복 아내 강인원 씨가 지난 3월 17일 병원을 찾아 기부금을 전달했다. 좌측부터 안창호 완화의학과 교수, 이요섭 영성부원장 신부, 강인원 씨, 故 박춘복 씨 조카 박모씨,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박명희 팀장. 사진 서울성모병원 제공.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돌봄에 감사를 전하고자 고(故) 박춘복 아내 강인원 씨가 지난 3월 17일 병원을 찾아 기부금을 전달했다. 좌측부터 안창호 완화의학과 교수, 이요섭 영성부원장 신부, 강인원 씨, 故 박춘복 씨 조카 박모씨,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박명희 팀장. 사진 서울성모병원 제공.

박 씨 조카 박모 씨는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자녀가 없어 제가 보호자로 투병 생활에서 임종 때까지 곁에서 모셨다”라며 “두 분이 부자도 아닌데, 호스피스 돌봄에 대한 감사함 때문에 평생 아껴 모으신 재산을 기부하신 것에 크게 감동했다”라고 말했다. 아내 강인원 씨는 “‘사랑한다’는 말을 더 해줬어야 했다”라고 아쉬운 마지막 임종 순간을 전하며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형편이 어려운 환자를 위해서 기부금이 사용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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