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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 그 자체”…스필버그가 영화와 가족에 보내는 러브레터, ‘파벨만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2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파벨만스'는 세계적인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77)가 난생 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매료됐던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기 직전까지의 성장기를 다룬 자전적 영화다. 사진 CJ ENM

22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파벨만스'는 세계적인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77)가 난생 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매료됐던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기 직전까지의 성장기를 다룬 자전적 영화다. 사진 CJ ENM

해변을 위협하는 식인 상어부터 자전거를 타고 날아오르는 외계인, 정글과 사막을 누비는 인디아나 존스까지. ‘스티븐 스필버그’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이미지들은 그간 이 거장이 남긴 수많은 명작들의 발자취다. 장르와 소재를 불문하고 빛나는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으로 관객을 매혹시켜온 스필버그(77) 감독이 수많은 주인공들을 거쳐, 데뷔 60여년 만에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삶을 비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파벨만스’는 그 자신도 “이 영화는 내가 가진 기억 그 자체”라 표현했을 정도로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영화는 스필버그의 유년 시절이 투영된 소년 새미 파벨만(마테오 조리안)이 부모님과 함께 난생 처음 극장에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때는 1952년, 당시 개봉한 세실 B. 드밀의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 등장하는 기차 충돌 신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 새미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끊임없이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재생시킨다. 아빠 버트(폴 다노)에게 선물 받은 장난감 기차로 사고를 재연해보기도 하지만, 몇 번이고 충돌을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아빠의 8mm 카메라로 충돌 순간을 기록하자고 제안하고, 그날부터 새미는 순간을 포착하는 힘을 지닌 카메라에 매료된다.

어느덧 10대가 된 새미(가브리엘 라벨)는 이제 친구들을 모아 서부극과 전쟁 영화를 찍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무탈히 영화감독으로 자라날 듯했던 소년은 자신이 사랑하는 카메라가 포착해버린 부모님의 불편한 비밀을 마주하게 되고, 혼란스러운 나날 속에서 가족과 꿈, 예술과 삶을 둘러싼 복잡한 역학 관계를 깨우쳐간다.

영화 '파벨만스'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투영된 소년 새미 파벨만(마테오 조리안)은 1952년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서 기차가 충돌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다. 이같은 영화 속 사건은 모두 스필버그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사진 CJ ENM

영화 '파벨만스'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투영된 소년 새미 파벨만(마테오 조리안)은 1952년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서 기차가 충돌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다. 이같은 영화 속 사건은 모두 스필버그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사진 CJ ENM

'파벨만스' 속 새미(마테오 조리안)의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실제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머니 레아 아들러가 그랬듯 자신 스스로 예술적 기질이 다분한 동시에, 영화감독을 꿈꾸는 아들을 적극 응원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사진 CJ ENM

'파벨만스' 속 새미(마테오 조리안)의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실제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머니 레아 아들러가 그랬듯 자신 스스로 예술적 기질이 다분한 동시에, 영화감독을 꿈꾸는 아들을 적극 응원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사진 CJ ENM

8mm 카메라로 홈무비 찍던 거장의 유년기를 보는 재미 

스필버그와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한 극작가 토니 커쉬너가 2005년부터 그와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본을 쓴 만큼, ‘파벨만스’ 속 새미의 성장기는 대부분 실제 스필버그의 유년시절을 고스란히 닮아있다. 그만큼 스필버그의 팬, 혹은 어느 영화 애호가라도 현재 거장의 초창기 시절을 엿보는 재미를 쏠쏠히 느낄 수 있다.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여러 자료를 통해 알려진 대로, 스필버그는 11살에 처음 장난감 기차 충돌을 촬영한 것을 시작으로 17살에는 135분 분량 영화를 동네 극장에서 상영했을 정도로 일찍이 영화 제작에 천재성을 보였다. 여동생들에게 휴지를 돌돌 감아 미라를 표현하고, 서부극을 찍을 땐 총격 장면을 리얼하게 구현하기 위해 필름에 구멍을 뚫어 빛을 투과하게 만드는 등 ‘파벨만스’ 속 어린 새미가 가내 수공업으로 영화를 만드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동시에 왠지 모를 향수를 자극한다. 새미가 영화계에 막 입문하려는 시점에서 영화는 막을 내리는데,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존 포드 감독과의 조우 장면 역시 실화에서 따온 것으로, 영화 팬들을 미소 짓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실제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랬던 것처럼 '파벨만스' 속 새미(가브리엘 라벨)는 8mm 필름 카메라로 홈무비를 찍기 시작한 이후 가족들과의 캠핑 여행, 서부극, 전쟁 영화 등을 찍으며 영화감독으로서 꿈을 키워나간다. 사진 CJ ENM

실제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랬던 것처럼 '파벨만스' 속 새미(가브리엘 라벨)는 8mm 필름 카메라로 홈무비를 찍기 시작한 이후 가족들과의 캠핑 여행, 서부극, 전쟁 영화 등을 찍으며 영화감독으로서 꿈을 키워나간다. 사진 CJ ENM

부모 이혼, 유대인 정체성…사적인 이야기에 담긴 고찰

이같은 필름메이킹 관련 일대기 뿐 아니라, 그간 스필버그의 작품에 간접적으로 녹아있던 그의 내밀한 사연들까지도 ‘파벨만스’는 가장 아름다고 솔직한 방식으로 펼쳐낸다. 스필버그가 여러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듯, 컴퓨터 공학자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는 그가 19살 때 이혼했고, 이는 그에게 적잖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가족의 붕괴로 인한 상처는 그의 초기작 ‘미지와의 조우’(1977), ‘E.T.’(1982) 등에 은유적으로 반영됐으나, ‘파벨만스’에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부부가 어느 지점에서 충돌하고 어떻게 결별하게 됐는지가 세밀하게 담겼다.

가족 내 갈등과 더불어 청소년기의 스필버그를 괴롭게 한 또 다른 요인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었다. ‘쉰들러 리스트’(1993), ‘뮌헨’(2005) 등의 작품에서 유대교를 둘러싼 주제의식을 다뤘던 그는 이번 영화에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했던 고등학교 시절 경험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파벨만스'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투영된 인물 새미의 10대 시절을 연기한 가브리엘 라벨은 TV 시리즈 '아메리칸 지골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예 배우다. 사진 CJ ENM

'파벨만스'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투영된 인물 새미의 10대 시절을 연기한 가브리엘 라벨은 TV 시리즈 '아메리칸 지골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예 배우다. 사진 CJ ENM

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사진 CJ ENM

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사진 CJ ENM

‘파벨만스’는 단순히 거장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모든 삶의 곡절 속에서 예술과 삶, 영화와 진실 간의 관계를 사유케 한다. 새미는 자신의 눈으로도 보지 못한 부모님의 진실을 카메라를 통해 발견하면서 영상 이미지가 지니는 힘을 실감하고, 동시에 감독으로서 자신에 대해 무력감을 느낀다.

이후 잠시 영화 제작을 관뒀던 그는 학교에서 떠난 바닷가 여행을 영화로 만들면서 다시 카메라를 잡게 되고, 이번엔 촬영과 편집의 힘을 빌려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를 용서하고 스스로 반성하게 만든다. 이처럼 영화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예술이 현실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탐구로까지 나아간다. 이외에도 ‘파벨만스’는 예술과 과학, 예술가로서의 소명과 개인적 삶은 공존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필버그가 자신의 영화 인생을 통틀어 고민해왔을 문제들을 함께 곱씹게 한다.

이렇게 탄생한 영화는 다시 거장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에게 “4000만 달러 짜리 심리 치료”에 비견될 정도의 치유로 작용하기도 했다. 스필버그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각각 2017년, 2020년에 떠나보낸 뒤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치자 “내가 아직 만들지 않은 단 하나의 영화가 있다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고, 그에 대한 답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파벨만스’를 만드는 과정이 “분명 내게 치유가 되는 과정이었고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굉장한 특권이었다”며 “관객들도 이 영화에서 자신의 가족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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