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4시 30분, 773번 버스가 부연 안개를 뚫고 차고지를 나섰다. 경기 파주시와 서울 은평구를 잇는 이 버스는 총 운행 거리가 84.1㎞로 서울시에서 가장 긴 간선버스다. 파주에서 일산으로, 일산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이들이 773번 버스의 승객이다.
“어색하네요”…벗어봤다 다시 슬며시 쓰는 마스크
이날은 코로나19로 인한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첫날이었지만, 첫차를 탄 30여명의 승객은 대부분 마스크를 쓴 채였다. 파주시 야당동에서 고양시 일산동구로 출근하는 청소노동자 나모(74)씨는 “겁이 나서 못 벗겠다. 10월 말에 코로나에 걸렸었는데 그때 어찌나 앓았는지 응급실까지 실려갔다”며 “주말에도 외출했는데 혹시 몰라서 마스크는 못 벗겠더라”고 말했다.
경비 근무를 마치고 교대한 뒤 첫차를 타고 퇴근하던 김모(66)씨는 ”손녀와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데, 작년 8월에 손녀가 코로나에 걸린 후 온 가족이 다 걸려서 한참 기침을 했다”며 “앞으로도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최예린(19)씨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일찍 등굣길에 오른 최씨는 “간호학과를 다니는데, 학교에서 다들 마스크를 쓰다 보니 마스크에 익숙해진 것 같다. ‘제2의 피부’ 같은 느낌이라 별다른 불편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로 출근하는 이정근(67)씨는 마스크를 쓴 채 버스에 올랐다가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하지만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슬며시 마스크를 썼다. 이씨는 “뉴스를 듣고 있었는데 이제 버스에서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는 내용이 나오길래 벗어 봤다. 그런데 버릇이 돼서 안 쓰는 게 더 이상하다”며 웃었다. 그는 “아직은 어색하기도 하고, 코로나가 완전히 사라질지 알 수 없으니 당분간은 마스크를 쓰면서 지켜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여름철 마스크 진물도, 승객 실랑이도…이제 안녕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해제를 더 반기는 건 하루에 짧게는 8시간, 길게는 18시간을 버스에서 보내는 버스 기사들이다. 버스 운전 경력 17년인 김모(62)씨는 이날 새벽 마스크를 벗고 경쾌한 마음으로 차고지를 나섰다. 김씨는 “2년 만에 마스크를 안 쓰고 운전하는데 너무 홀가분하다. 살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김씨는 “특히 여름이 고역이었다. 승객들이 계속 말을 시키니까 응대를 해야 하는데, 침이 튀고 땀이 고여서 3시간 운행을 마치면 떡이 돼 있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안경을 쓰는 최모(68)씨는 “마스크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리니까 신호가 걸릴 때마다 계속 닦아야 했다. 입 주변에도 진물이 생기고 콧속도 헐고 난리였는데 이제 좀 편해질 것 같다”고 했다.
마스크 착용 ‘선도부’ 역할을 하며 생기는 스트레스도 덜었다. 60대 버스 기사 진모씨는 “특히 술 먹은 사람들은 고집불통인 경우가 많다. ‘쓸게요, 쓸게요’ 하면서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지는 시늉을 하곤 들어가서 그대로 앉아버린다”며 “싸우기 싫어서 그냥 두는데, 가끔은 승객들끼리 ‘당신이 코로나 걸렸을지 어떻게 아느냐’, ‘네가 뭔데 명령하느냐’며 싸움이 붙는다”고 했다.
지하철에서도 마스크를 쓴 승객이 대부분이었지만, 오전 8시가 지나고 출근 시간이 다가오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들도 드문드문 있었다. 회사원 조모(25)씨는 “마스크를 아예 안 가지고 나왔다. 평소에도 가지고 나오는 걸 잊어서 지하철 앞 편의점에서 황급히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 해방”이라고 했다. 회사원 김모(27)씨는 “다른 곳에서는 다 벗는데 대중교통에서만 쓰는 건 큰 의미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하철에서만 쓸 건데 마스크 쓰레기를 만드는 것도 싫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0일부터 대중교통 수단과 마트·역사 등 약국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다고 밝혔다. 다만 “마스크 착용의 효과성이 높고 필요성도 여전한 만큼 자율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방역수칙을 생활화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