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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옛날 짚신·가방·옷부터 요즘 갈대빨대까지, 만능 재료 짚풀로 만드는 생활 속으로

중앙일보

입력

우리가 사용하는 생활용품은 주로 플라스틱·스테인리스·철 등으로 만듭니다. 농경사회였던 옛날에는 어땠을까요. 돌이나 흙은 물론, 곡식을 추수하고 남은 식물 줄기와 산과 들에 널린 풀, 즉 짚풀을 재료로 사용한 게 많죠.

직접 만든 금줄을 들고 있는 박시오(왼쪽) 학생기자와 비·눈·햇볕을 피하는 모자인 삿갓을 쓴 김채원 학생기자가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우리 조상들의 짚풀문화에 대해 알아봤다.

직접 만든 금줄을 들고 있는 박시오(왼쪽) 학생기자와 비·눈·햇볕을 피하는 모자인 삿갓을 쓴 김채원 학생기자가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우리 조상들의 짚풀문화에 대해 알아봤다.

과거 조상들의 삶을 이롭게 했던 짚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김채원·박시오 학생기자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짚풀생활사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민지은 짚풀생활사박물관 학예팀장은 소중 학생기자단을 1층 전시장으로 안내하면서 짚풀이 무엇인지 알려줬어요. “‘풀’은 산과 들에서 자라며 나무줄기가 없는 식물이에요. ‘짚’은 논이나 밭에서 자라는 곡식을 추수하고 남은 줄기예요. 이 둘을 묶어 ‘짚풀’이라고 하죠. 논·밭·산·들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가난한 백성들도 얼마든지 이용해 의식주·생업·일생의례 등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만들었어요. 짚풀로 만든 생활용품이 부서지고 망가지면 땅에 묻었고, 자연스레 썩어 거름이 되니 친환경적이죠.”

시오 학생기자가 “짚풀에는 어떤 식물이 있나요?”라고 질문했어요. 민 팀장이 갈대로 만든 빗자루를 가리켰죠. “풀에는 대표적으로 갈대가 있어요. 갈대의 꽃 부분을 엮어 만든 빗자루는 방이나 거실의 가벼운 먼지를 쓸 때 사용해요. 덩굴식물인 칡 줄기로 단단한 끈을 만들거나 뿌리를 가늘게 찢어서 옷·종이를 만들기도 했죠. 2m 크기로 자라는 왕골은 줄기 단면이 원형이 아닌 삼각형이에요. 왕골 줄기를 가늘게 쪼개서 바구니·돗자리를 만듭니다.” 민 팀장이 “대나무는 나무일까요? 풀일까요?”라고 문제를 냈어요. 학생기자들이 “나무예요”라고 답했죠. “대나무는 이름과 달리 풀이에요. 나무는 줄기에 형성층이 있어 부피 생장을 해요. 그래서 줄기 단면을 보면 안이 꽉 차 있고 나이테가 있죠. 하지만 대나무는 줄기 형성층이 없어 부피 생장을 못 해 마디 사이가 텅 비었고, 죽순 아랫부분 굵기로만 생장하죠.”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댕댕이덩굴로 만든 바구니, 곡식과 불순물을 골라내는 키, 추운 겨울에 발이 얼지 않도록 신는 둥구미신.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댕댕이덩굴로 만든 바구니, 곡식과 불순물을 골라내는 키, 추운 겨울에 발이 얼지 않도록 신는 둥구미신.

짚은 벼·밀·보리·콩·조 등 곡식을 추수하고 남은 줄기를 말린 것입니다. 벼농사가 활발하고 쌀이 주식인 동양에서는 볏짚, 빵이 주식인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밀짚을 많이 사용해요. 거친 비주얼의 볏짚은 질기고 튼튼해서 초가지붕·짚신·멍석 등의 재료로 사용했어요. 밀짚은 볏짚보다 약하고, 보릿짚보다 튼튼해요. 밀짚도 생활용품을 만들 때 쓰이지만 보릿짚과 함께 공예·장식에 주로 사용되죠. 광택이 있고 매끈한 보릿짚은 속이 뻥 뚫려서 새끼를 꼬면 다 부서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생활용품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인두판(다리미판)·베개 뒷면이나 상자 겉면을 보면 염색한 보릿짚을 잘라 붙여 무늬를 넣었어요.”

전시장을 둘러보던 학생기자단이 큰 맷돌 아래에 깔린 도구에 시선을 옮겼어요. “볏짚으로 만든 맷방석이에요. 맷방석은 물이 스며들 수 있어 맷돌로 가루를 만들 때만 사용해요. 맷돌 아래에 깔아서 가루가 튀지 않고 잘 모이도록 모양이 평평한 일반 방석과 달리 끝이 위로 올라가 있어요.” 맷방석 뒤에는 버들로 만든 키가 있었죠. “키는 추수 후 곡식과 불순물을 1차로 골라낼 때 쓰여요. 키에 불순물이 섞인 곡식을 올리고, 위에서 아래로 탈탈 터는 키질을 하면 무거운 곡식은 안쪽에 남고, 가벼운 껍질 먼지 등 불순물은 바람에 날아가거나 키 바깥쪽에 쌓여요. 키질을 무작정 세게 하는 것을 ‘까불다’고 해요. 누군가 장난을 심하게 칠 때 쓰는 ‘까불다’가 여기서 나온 말이죠.”

밀짚·보리짚을 엮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소개한 전시물을 보고 있는 소중 학생기자단.

밀짚·보리짚을 엮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소개한 전시물을 보고 있는 소중 학생기자단.

2층으로 올라가니 볏짚을 꼬아 만든 짚신이 여러 켤레 전시돼 있었죠. “볏짚에 흰 한지를 감아 만든 짚신은 ‘엄짚신’이라고 해요. 집안 어른이 돌아가시면 상주가 장례식 때 상복을 입고 엄짚신을 신었어요. 옆에 있는 알록달록한 ‘고운신’은 한지를 여러 색으로 염색해 볏짚에 감아 만들었죠. 고운신은 비단신을 살 돈이 없는 여성이 멋을 내거나 혼인할 때 신었어요.”

채원 학생기자가 엄청 큰 장화같이 생긴 짚신을 보고 “이 짚신을 신으면 잘 벗겨질 것 같아요”라고 했어요. “볏짚으로 만든 ‘둥구미신’이에요. 볏짚은 보온성이 우수하지만, 추운 겨울에 일반 짚신을 신고 오래 돌아다니다 보면 발이 얼 수 있죠. 사람들은 발이 얼지 않도록 버선을 신고, 그 위에 짚신을 신고, 또 그 위에 자투리 옷감으로 감쌌어요. 둥구미신은 이렇게 커진 발이 들어갈 수 있도록 크고 따뜻하게 볏짚으로 더 촘촘하고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우리 조상들은 짚풀을 활용해 짚신·삿갓·도롱이 등 날씨·장소·상황에 맞는 의복을 만드는 지혜를 발휘했다.

우리 조상들은 짚풀을 활용해 짚신·삿갓·도롱이 등 날씨·장소·상황에 맞는 의복을 만드는 지혜를 발휘했다.

신발뿐 아닙니다. 민 팀장이 모자를 쓰고, 옷을 입은 마네킹을 가리켰죠. “마네킹이 쓴 챙이 사방으로 넓은 모자는 ‘삿갓’, 입은 옷은 ‘도롱이’예요. 삿갓의 ‘삿’은 갈대를 의미해요. 갈대 줄기를 쪼개고 엮어 만들었죠. 갈대가 없는 지역은 대나무를 엮어 만들기도 했어요. 삿갓은 비나 눈이 올 때 우산처럼 사용했고, 햇볕이 강할 땐 양산 용도로 쓰였어요. 짚풀을 엮어 만든 도롱이는 허리나 어깨에 둘러 비가 오면 옷이 덜 젖게 하는 역할을 하죠. 빗물이 흐르는 방향 그대로 떨어지라고 줄기 방향이 위에서 아래로 돼 있어요. 보통 도롱이는 겉과 안이 같지만, 제주도 지역 도롱이는 안쪽에 매듭을 지어 미적 감각을 더했어요. 다만 매듭이 있는 안쪽을 겉으로 해서 입으면 안 돼요. 매듭 사이에 물이 고여서 비옷 기능을 못 하기 때문이죠.”

짚풀은 민속놀이·민속신앙에도 사용됐어요. 볏짚이나 칡을 꼬아 만든 밧줄로 줄다리기하고, 바구니·키 등으로 탈을 만들어 탈춤을 췄죠. “하회탈·각시탈 등 나무로 된 탈을 구하기 어려운 형편인 경우 볏짚 생활용품을 재활용해 바구니탈·키탈 등을 만들었어요.” 시오 학생기자가 “이 탈은 눈이 네 개예요”라고 말했죠. “볏짚으로 된 ‘방상씨탈’로, 장례식에서 관을 옮길 때 제일 앞장서는 사람이 썼습니다. 네 개의 눈은 죽은 이에게 잡귀가 달라붙지 않도록 동서남북 사방을 살핀다는 의미죠.”

보릿짚(위 사진)은 생활용품으로 만들기엔 튼튼하지 않아 인두판·베개·상자 등의 겉을 꾸미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제주 지역 도롱이의 안쪽을 보면 매듭을 지어 미적 감각을 살렸다.

보릿짚(위 사진)은 생활용품으로 만들기엔 튼튼하지 않아 인두판·베개·상자 등의 겉을 꾸미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제주 지역 도롱이의 안쪽을 보면 매듭을 지어 미적 감각을 살렸다.

방상씨탈은 궁중에서 악귀를 쫓는 의식에도 사용됐는데요. 이와 비슷한 짚풀 용품으로 금줄이 있습니다. 민 팀장이 학생기자단에게 금줄에 관해 설명하고 만드는 법도 가르쳐줬죠. “금줄의 ‘금’은 ‘금지하다’란 뜻의 한자 ‘禁’이에요. 볏짚을 왼새끼로 꼬아 길게 또는 둥글게 만들어 잡귀나 부정을 막기 위해 대문이나 방문에 걸었죠. 금줄이 걸린 곳엔 함부로 들어가지 말자는 사회적 약속이 있었어요. 산모가 산후 조리하는 21일(3주) 동안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금줄을 걸었죠.”

흔히 볏짚, 붉은색 마른 고추, 흰색 한지, 숯, 잎이 달린 소나무 가지가 금줄 재료로 쓰여요. “수많은 열매가 한 줄기에 열리는 벼는 강한 생명력, 잡내와 물기를 빨아들이는 숯은 나쁜 기운으로부터 영혼을 정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한지는 소원을 적는 종이 또는 돈과 관련된 계약서를 뜻해 재물을 상징해요. 붉은색 마른 고추는 아들, 소나무 가지는 딸을 의미하고, 둘 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뜻해요. 특히 소나무 가지는 잎이 바늘처럼 뾰족해서, 딸이 바느질을 잘할 수 있게 해달라는 뜻도 있죠. 조선시대에는 여성이 바느질을 잘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볏짚을 구하기 힘든 바닷가나 산골 마을에서는 다른 짚풀로 새끼를 꼬아 금줄을 만들었고, 매다는 재료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답니다.”

민지은(맨 왼쪽) 팀장이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전남 무형문화재 제55호 초고장(草藁匠·짚풀공예 기술보유자) 임채지 장인이 만든 ‘황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지은(맨 왼쪽) 팀장이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전남 무형문화재 제55호 초고장(草藁匠·짚풀공예 기술보유자) 임채지 장인이 만든 ‘황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금줄은 짚풀을 꽈배기처럼 꼬는 새끼로 만들어요. 오른새끼로는 생활용품을, 왼새끼는 금줄 같이 신성한 줄을 만들죠. 먼저 40~50cm 볏짚 10가닥을 아래 길이를 맞춰 정리하고, 앉아서 오른발로 볏짚 끝을 고정해요. 받침대 역할을 할 왼손을 평평하게 펴고 그 위에 볏짚을 두 묶음으로 나눠 V자를 만듭니다. 오른손바닥을 왼손바닥과 맞대고 힘껏 밀면 볏짚이 살짝 돌아가 꼬아집니다.

“왼새끼는 몸 안쪽으로 밀어주면 만들어져요. 반대로 오른새끼는 오른손바닥을 몸 바깥쪽으로 밀면 되죠. 몸 안쪽의 볏짚 묶음을 오른손으로 잡아 몸 바깥쪽으로 보내줍니다.” 이렇게 밀고 보내주는 것을 반복해서 왼새끼를 꼽니다. 다 꼬았으면 새끼 양쪽 끝을 가위로 잘라 깔끔하게 해줘요. 양쪽 끝이 마주 보게 둥글게 말아 남은 볏짚으로 단단하게 묶어주세요. 새끼 마디 틈을 벌려 고추·숯·소나무 가지를 꽂아요. 한지는 틈에 넣지 않고 찢어지지 않게 새끼에 묶어요. 마지막으로 걸 수 있도록 끈을 사용해 고리를 만들어 주면 완성. 소중 친구들도 짚풀생활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을 하면 금줄 등 다양한 짚풀공예를 할 수 있어요.

왼새끼로 짚풀을 꼬고 있는 박시오 학생기자(위 사진). 금줄은 대문이나 방문에 걸어 잡귀·부정을 막는 데 사용됐다.

왼새끼로 짚풀을 꼬고 있는 박시오 학생기자(위 사진). 금줄은 대문이나 방문에 걸어 잡귀·부정을 막는 데 사용됐다.

“짚풀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시오 학생기자가 물었어요. “추수 후 걷은 짚, 산·들에서 채취한 풀은 비나 눈을 맞지 않도록 건조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해야 해요. 물기가 많으면 곰팡이가 생기고 썩게 되죠. 건조한 짚풀을 바로 사용하면 바삭거리고 부서질 수 있어요. 먼저 물에 적시거나 담근 다음 발로 밟아, 짚풀이 부드러운 상태가 돼야 손으로 만들기 편해요.”

채원 학생기자가 “오늘날 짚풀은 어떻게 사용되나요?”라고 질문했어요. “겨울이 오기 전에 보온성이 있는 볏짚을 화단에 덮어 식물이 얼어 죽지 않게 하죠. 볏짚으로 나무줄기를 감싸기도 하는데요. 추위를 피해 해충이 따뜻한 볏짚 속에 봄이 될 때까지 머무르니 이른 봄 회수해 태우면 병충해를 제거할 수 있죠. 이외에도 밀짚으로 만든 모자와 가방, 여름에 거실에 깔아놓으면 시원한 왕골자리, 플라스틱 빨대 대신에 쓰는 친환경 갈대 줄기 빨대, 삼으로 만든 수세미 등이 있어요. 시대가 변하면서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들이 짚풀을 대신하게 됐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짚풀로 만든 생활용품을 만날 수 있답니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짚풀생활사박물관을 방문해 과거 조상들이 짚풀로 신발·옷·농사도구 등 각종 생활용품을 만든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짚은 볏짚만 있고, 풀도 그냥 아무 풀이나 쓰는 줄 알았는데 종류가 많아서 놀랐죠. 도시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볏짚을 직접 만져보고, 금줄도 만들어서 신기했어요. 새끼 꼬는 건 어려웠지만, 민지은 팀장님이 하나하나 잘 가르쳐 주셔서 만드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답니다. 소중 친구들도 짚풀생활사박물관을 방문해 친환경적인 짚풀에 대해 알아보고, 짚풀로 금줄 등 다양한 공예 체험을 해보길 바라요.

김채원(서울 원촌초 5) 학생기자

취재 전에는 짚풀이 사방에 널려있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짚풀생활사박물관에 다녀와 보니 짚풀이 얼마나 활용도가 높은 재료인지 알게 됐죠. 부서지거나 망가진 짚풀 생활용품은 땅에 묻으면 썩어서 거름이 된다고 하니 정말 친환경적이에요. 짚풀로 새끼를 꼬아 금줄을 만들어 봤어요. 새끼 꼬는 작업은 어려웠지만 결과물은 정말 멋졌죠. 짚풀 생활용품들을 실제로 보고 민지은 팀장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조상들의 지혜가 대단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박시오(서울 대치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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