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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문서 속 '대장동' 발견…"수색 해야 압수를 하지" 檢 항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압수수색 전성시대②]

 저인망식 압수수색에 대한 야권과 기업의 불만에 대해 검찰은 “수색을 해야 뭘 압수할 지 파악할 것 아니냐”고 반응한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저장된 전자정보의 경우 ‘범죄 관련’이라고 제목을 달아 놓는 피의자는 없기 때문에 폴더와 파일을 일일이 열어봐야 혐의 관련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노조 수도권 북부지역본부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물을 가지고 나와 차량에 싣고 있다.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노조 수도권 북부지역본부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물을 가지고 나와 차량에 싣고 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과정에서 발견된 시행업자들 간 지분 비율이 적힌 문서의 제목은 ‘골프 잘치기’였다. 또 한 시행업자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2021년 12월27일. 드론. 강남”이라는 메모의 ‘드론’은 이 대표의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장을 칭하는 ‘드래곤(용)’의 줄여 표시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에 대비해 은어와 비유로 주요 문건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며 “법관이나 기업의 요구대로 영장청구서에 검색어와 검색 대상 기간 등을 세세히 적는 건 ‘수사의 신’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라 말했다. 영장 기재 범위를 벗어나는 압수는 이미 충분히 조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부인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검찰 내부에 “수색은 철저히, 압수는 최소한”이라는 분위기가 정착됐다는 것이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압수수색 현장에선 변호사 입회 하에 혐의와 관련된 자료가 맞는지, 원본과 압수본이 동일한지 여부를 확인해 가며 자료를 추출한다. 불가피하게 사건과 무관한 자료를 볼 수는 있지만 이를 검찰이 가져간다는 건 왜곡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된 수원지검의 경기도청 상주 압수수색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일일이 검찰청으로 오기 어렵다는 경기도의 요청에 따라 제공한 출장 서비스”라며 “과도한 압수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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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 증가는 통계적 착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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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은 또 압수수색 건수 급증은 ‘통계적 착시’가 있다고 반박한다. 수사 환경의 근본적 변화로 압수수색 영장이 요구되는 대상이 크게 늘어난 데다 법원의 잦은 ‘부분 기각’이 ‘일부 발부’로 잡히면서 청구건수와 발부율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가입자 인적사항, CCTV 영상, 상품권 사용내역,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 과세 자료 등 과거에는 정부 부처나 기업에서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던 자료를 지금은 매번 압수수색 영장 제시해야 받을 수 있게 됐다. 영장 하나면 동일인의 모든 계좌를 확인할 수 있던 관행도 ‘1계좌 1영장주의’가 정착하면서 계좌 추적을 위한 영장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법원행정처의 2022년 사법연감에 따르더라도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판사가 ‘전부 기각’하는 비율이 1%에 불과한데 이는 검찰이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보완수사요구 등을 통해 사전에 통제한 결과라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계곡 살인’ 피의자 이은해가 동거남 조현수와 4개월 간 도주했을 때 이들을 잡기 데까지 총 35건 압수수색이 필요했다. 포털사이트 접속, 대포폰 개통, 톨게이트 통과, 숙박업소 결제, 병원 진료, 음식 배달앱 이용, 온라인 게임 접속 등 소재지나 이동경로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을 확인하려고 할 때마다 건건이 영장이 요구된다. 지난해 11월 제2의 ‘n번방’ 성착취물 유포자를 호주에서 체포하는 과정에서도 피의자 특정하는 데만 검·경은 220회의 압수수색을 벌였다.

대면 심리냐 비밀유지권이냐

 지난달 3일 대법원은 압수수색 남발을 통제할 카드로 형사소송규칙 개정을 통한 ‘압수수색 영장 대면심리제’ 도입을 꺼내들었다. 대장동 수사팀이 지난해 12월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의 범죄수익 은닉 혐의 조사과정에서 한 대형로펌을 압수수색해 불붙은 논란이 가라앉기 전에 나온 입법예고다. 이 제도에 따르면 판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관련 정보를 알고 있는 인물이나 검사 등’을 불러 심문할 수 있다. 검찰은 강하게 반발했다.

 쌍방울그룹과 경기도의 불밥 남북 교류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수원 지검은 지난해 9월 7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소통협치국 소통협력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뉴스1

쌍방울그룹과 경기도의 불밥 남북 교류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수원 지검은 지난해 9월 7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소통협치국 소통협력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뉴스1

검찰은 ▶사건 관계자 심문은 수사 정보 유출 우려가 크고▶압수수색에 요구되는 밀행성과 신속성이 저해되며▶당사자 권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법이 아닌 규칙으로 바꾸는 건 위헌적이라고 지적한다. 경찰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이 건에 대해선 검찰과 같은 입장이다. 대법원은 공식적 입장표명은 삼가고 있지만 심문의 대상을 ‘수사기관이나 수사기관이 지정하는 제3자’ 제한하는 절충안을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럴 경우 6월1일로 정한 도입 시기도 늦춰질 수 있다.

변호사 업계도 대면심리제에 대해선 냉소적 분위기다. 한 대형로펌의 변호사는 “어떻게 해도 제3자를 대면 심문하면 정보 유출 가능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검사나 수사관을 사전 심문한다고 압수수색 범위에 대한 적절한 제한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변호사업계는 영미식의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 입법화를 바라고 있다. 지난달 27일 취임한 신임 김영훈 대한변협 회장의 공약이기도 하다.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이란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이나 문서는 추가 범죄 예방 목적이 분명하다거나 변호인에게 범죄 혐의가 뚜렷한 경우 등 특별히 공익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압수수색 영장 심사 단계에서 압수수색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 법 체계에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 등이 규정돼 있지만 비밀유지권 또는 비밀보호특권에 대한 조항이 없다. 대법원도 검찰이 한 건설사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변호인 법률자문서의 증거능력이 문제가 된 재판에서 헌법상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나 변호인의 비밀유지의무로부터 비밀보호특권이 도출되지는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수사나 공판 등 형사절차 개시 전 일상적 생활관계에서 변호사와 상담한 법률자문에 대해서도 비밀의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의뢰인의 특권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공전하는 입법 논의…“절충점 찾아야” 

19대 국회 이후 비밀유지권 도입을 골자로 한 변호사법 개정안은 계속 발의돼 왔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발의한 변호사법 개정안에는 ▶직무와 관련된 변호인과 의뢰인의 의사교환 내용 ▶직무 관련 변호사가 제출받은 서류나 자료 ▶변호사가 수임받은 사건과 관련해 작성한 서류나 자료에 대해서는 공개 또는 열람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여전히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는 해당 개정안에 대해 “비밀유지권을 인정하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도 인정 범위를 넓어 실체적 진실 발견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피의자의 방어권이 크게 강화된 상황에서 비밀유지권까지 도입되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수사는 더욱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며 “비밀유지권을 방패막이 삼아 주요 증거를 숨기려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검사는 “변호사가 적극적으로 범죄나 범죄 은폐에 가담하는 일이 빈번하다”며 “수사 전에 정상적 법률 검토인지 범죄 가담인지를 사전에 분별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태형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7년 발표한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 논문에서 “비밀유지권을 도입하되 그 예외가 되는 ‘중대한 공익상의 이유’를 가능한 유형별로 나눠 구체화하자”는 취지의 입법 방향을 제시했다. 남수진 한국외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의뢰인에게는 변호인 조력권을 보장하면서도 수사당국의 실체적 진실 확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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