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 반스 전 미국 텍사스주 부지사가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1980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재선을 막으려는 로널드 레이건 측의 공작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사진 텍사스 인터뷰 채널 옵틱스 캡처
벤 반스 (85) 전 미국 텍사스주 부지사가 1980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측과 공작을 벌였다고 고백했다. 카터 정부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으로 회자되는 ‘주이란 미국 대사관 직원 인질 사건’의 해결을 막기 위해 중동 국가들과 접촉했다고 밝힌 것이다. 오랫동안 레이건 전 대통령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의심이 제기됐지만, 이를 방증하는 직접적인 증언이 나온 건 처음이다. 18일(현지시간) 보도된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반스는 “카터가 임종을 앞뒀다는 걸 안 뒤 어떻게든 역사에 진실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고백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반스는 80년 7월 자신의 정치 멘토였던 존 코널리 2세 당시 텍사스 주지사를 따라 중동 국가 순방 길에 올랐다고 회고했다. 그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코널리가 “(이란에 미국인) 인질 석방을 미 대선 뒤로 미루라는 메시지를 전해달라”며 “이번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되면 (이란과)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레바논 등 다른 국가에도 비슷한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밝혔다.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은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고 이듬해 재선에 실패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오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으로 고전하던 카터는 유일하게 외교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는 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수장을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초대해 30년간의 적대 관계를 종결시켰다. 하지만 그해 11월, 이란 급진 강경파 세력이 미국 대사관을 습격해 외교관 등 52명을 인질로 삼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란에선 팔레비 국왕의 압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고, 팔레비 국왕은 이집트로 망명했다. 이후 카터 정부가 팔레비를 미국에 입국하도록 허락하자, 이란 민족주의자들은 미 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인을 인질 삼아 팔레비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카터는 이란에 특공대를 파견하는 ‘독수리 발톱 작전’을 폈지만 인질 구출에 실패했다. 결국 카터에 대한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고, 레이건에 완패해 백악관을 떠났다.
반스는 귀국 직후 코널리와 공항 라운지에서 레이건의 선거대책위원장 윌리엄 케이시를 만나 약 3시간 동안 순방 내용을 보고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코널리가 국무장관이나 국방장관을 노렸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NYT는 “코널리는 훗날 에너지장관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86년 미 중앙정보국(CIA)이 적국인 이란에 무기를 몰래 팔고, 그 대금으로 니카라과의 우익 성향 반군 콘트라를 지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레이건 정권은 큰 비판을 받았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맨 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이란-콘트라 사건이 불거지자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 조지 슐츠 국무장관, 에드 미스 법무장관, 돈 리건 비서실장과 만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올해 85세인 반스는 텍사스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정치인이자 부동산 거물이다. 텍사스 중부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광산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텍사스대에 진학했다. 졸업 뒤 텍사스주 보건부에서 일하다가 재정 비리를 폭로했다. 이 일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주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26세에 텍사스주 최연소 하원의장이 됐고, 이후 텍사스 부지사가 되면서 코널리와 함께 일했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중반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도 각자의 이름을 따서 반스·코널리 투자회사를 세우고 함께 운영했다. 건설·항만·석유 등 여러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회사 몸집을 불렸지만 결국 과도한 빚 때문에 87년 파산을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