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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병주의 시선

조국의 법철학과 한동훈의 전쟁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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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독서 욕구에 기름을 부었다. 내로라하는 철학자들과 역사적 전쟁이 등장하고, 조국ㆍ한동훈 전·현직 법무부 장관이 저술 혹은 노출했으니 무엇을 전하려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솟아났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조 전 장관의 딸 조민씨가 “예쁘게”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예고한 것처럼 지난 17일 북콘서트장에 올려졌다. “학자이자 저술가로서 저자의 역량을 새삼 확인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처지가 어떻든 좋은 책”이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SNS 글도 회자했다.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된 조 전 장관에 대한 위로 차원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등 쟁쟁한 사상가들의 고전에서 조 전 장관이 읽어낸 핵심은 국가 구성원이 국가의 주인이고 스스로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명제다. 출간 인터뷰에서는 부정뿐 아니라 무능도 혁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을 언급했다. 불법을 저질러야만 탄핵이 가능한 우리나라 상황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소로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표자가 폭정을 일삼는 것 외에 무능할 때도 제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일자 “ ‘우리나라에서도 무능을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는 추가 설명이 나왔지만 인터뷰 맥락은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연결돼 있다.

그러면 어떠한가. 고전의 함의를 뽑아 해석하는 건 학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누릴 자유고 권리다. 하지만 그의 ‘처지’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머리말에서 “저 자신과 가족 일에 철두철미하지 못했던 점, 면구하고 송구합니다. 자성하고 자책합니다”는 부분이 있으나 자녀 입시비리 등 잘못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방어를 미리 하지 못한 후회로 읽힌다.

“법학 개념이나 이론의 구사는 최대한 줄이고, 중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는 글에 “중고등학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성의 모습을 담았습니다”와 같은 문장을 더할 순 없는 것일까. 일제 강제동원과 관련해 일본에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북콘서트에서 “(대법원의 판결에 배치되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법원 판결에 힘을 실었으니 그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SNS 활동을 공개적으로 시작한 조민씨도 당당하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아버지가 실형을 받으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떳떳하지 못한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며 “저는 떳떳하다.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했다. “피고인들의 자녀 입시비리 범행은 대학교수의 지위를 이용한 것으로 동기와 죄질이 불량하고, 입시제도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해 죄책도 무겁다”는 아버지에 대한 1심 판결 내용을 부인하는 것인지, 아버지의 행위와 자신은 무관하다는 건지 해석이 잘 안 된다. 전자가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서양 법고전 훑은 조국의 신간
전쟁사 책 들고 유럽 간 한동훈
힘의 논리 넘어서는 소통 필요

또 한 권의 책,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고전으로 불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다. 지난 7일 선진국의 이민정책 등을 살펴보고자 유럽으로 출국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손에 들려있었다. 기원전 5세기, 지중해 패권을 놓고 30년 가까이 벌어진 이 전쟁은 급격하게 부상하는 아테네에 위협을 느낀 스파르타의 두려움 때문에 발생했다. “힘이 있는 자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나, 힘이 없는 자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현실주의적 논리가 힘을 얻어가며 광기 어린 전쟁으로 빠져들었다.

국내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대화와 타협은 오간 데 없고, 오직 힘의 논리에 따르려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상대방의 지지세력이 많아진다 싶으면 먼저 공격해 제압해야 한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강경파식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한 장관의 품에 안긴 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논의하는 세계법무부장관 회의에 참석하는 그에게 국제정치적 시각을 제공했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한국정치가 장기간 회복할 수 없는 후유증을 앓을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받았으면 한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전쟁은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투키디데스의 예언을 국내 정치에서도 끊어내야 한다는 함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 전 장관의 저서도 추천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저항권에 대한 조 전 장관의 해석을 일독한다면 한국 법무를 책임지는 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투키디데스의 예언에서 벗어날 길은 진정하고 활발한 소통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