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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대 vs 131만대 …'테슬라 쇼크'에 칼 가는 세계 1위 도요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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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전기차 퍼스트’

다음 달 1일 세계 자동차 회사 1위인 일본 도요타의 제12대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정식 취임하는 사토 고지(佐藤恒治·53)가 지난달 13일 기자회견서 내놓은 화두다. 도요타 가문의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66)가 14년간 맡아온 자리를 잇는 그는 “차세대 전기차(EV)를 기점으로 전기차 퍼스트 발상으로 사업 본연의 자세를 크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사토 고지 사장이 도요타의 새로운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 사토 고지 사장이 도요타의 새로운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1위 자동차 회사 사장의 위기의식을 놓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기차가 배경에 있다고 보도했다. 도요타는 기존 내연기관 차량과 같은 공정으로 전기차를 생산하려 했는데 이게 벽에 부딪혔다는 분석도 내놨다. 지난해 도요타의 전기차 판매는 약 2만5000대. 연간 약 1000만대를 파는 걸 고려하면 미미한 수치다. 전기차 시장을 개척한 테슬라는 131만대를 팔았다. 그러다 보니 도요타 내부에서도 “테슬라에 배울 게 많다”는 반성이 나온다. 현재 도요타의 목표는 오는 2025년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2030년까지 연 350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2035년 렉서스 전 차종을 전기차화한다는 것이다.

"테슬라에 배워야" 도요타의 반성
닛산 역시 변화를 맞고 있다. 지난달 6일 닛산은 프랑스 르노가 가진 자사 지분을 43%에서 15%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닛산과 르노 양사가 24년 만에 똑같이 지분을 15%씩 갖게 된다. 르노 지분이 떨어졌지만, 닛산은 돌파구를 다른 쪽에서 찾고 있다. 르노의 신설 전기차 자회사인 암페어(Ampere) 지분 15%를 사들이기로 했다. 닛산이 지분 34%를 보유하고 있는 미쓰비시자동차 역시 이 회사 투자를 검토 중이다.

혼다는 최근 인도 IT(정보기술) 회사와 제휴를 맺는다고 발표했다. 이 제휴를 통해 혼다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같은 차세대 차량 개발에 필요한 2000여명의 기술자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본 정부 '충전시장' 확장 나서

미국의 테슬라, 중국 전기차 회사 BYD에 뒤졌다는 위기의식에 일본 정부도 나섰다. 일본 정부는 전기차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 인재를 오는 2030년까지 3만명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지금보다 4배 규모로 키우겠다는 것인데, 내년부턴 전문 고교에서 배터리 수업도 이뤄질 예정이다.

전기차 시장을 키우기 위해 충전 시장도 넓히기로 했다. 전기차를 사도록 보조금을 줘도 충전 인프라가 없으면 시장이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규제를 풀어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 충전 시설을 15만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테슬라의 모델3을 5분간 급속충전(250kW)하면 120㎞를 달릴 수 있는데, 이런 고속 충전기를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도쿄(東京)도는 아예 오는 2025년부터 한국으로 치면 아파트 격인 신축 맨션에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올해는 기존 맨션에 충전시설을 설치할 경우 지원하는 보조금을 2배로 늘리기로 했다. 도쿄 외에도 지바(千葉) 현, 가나가와(神奈川) 현도 올해부터 보조금을 주기로 했는데, 일본 정부도 국가 차원에서 보조금 확대를 검토 중이다.

혼다가 지난 17일 선보인 전기 오토바이용 충전소. 사진 김현예

혼다가 지난 17일 선보인 전기 오토바이용 충전소. 사진 김현예

일본에선 전기차의 전기 에너지를 활용하는 구상도 속속 나오고 있다. 닛산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전기차를 충전하는 실증실험을 하고 있다. 많은 전기차를 동시에 충전하면 전력사용이 늘어나는데, 전기료를 줄일 수 있도록 AI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히타치는 닛산과 함께 전기차를 정전 시 비상 엘리베이터 가동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태풍이나 대지진으로 정전이 발생할 경우 전기차를 활용해 대피소에 비상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단순히 전기차를 이동수단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전기 배터리, 대형 에너지 저장장치(ESS)로 확장해 에너지 시장을 바꿔나가겠다는 얘기다.

구자균 회장 “정부, 에너지 시장 관점서 국가 전략 짜야”

지난 17일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에너지 전시회 '도쿄 스마트 그리드 엑스포’에서 구자균(65) LS일렉트릭 회장을 만났다. LS일렉트릭은 이번 전시회에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해 전력용 반도체를 활용한 전기차 충전 플랫폼(SST)을 선보였다. 구 회장은 범 LG가로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 구평회 회장의 3남이다.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이 지난 17일 일본 최대 에너지 전시회인 스마트그리드 엑스포에서 전기차 시장이 가져오는 에너지 시장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LS일렉트릭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이 지난 17일 일본 최대 에너지 전시회인 스마트그리드 엑스포에서 전기차 시장이 가져오는 에너지 시장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LS일렉트릭

전기차 충전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전기차는 전기 에너지가 핵심으로 배터리와 충전 시스템까지 포함해 내다봐야 하는 시장이다. 전기차 성장과 함께 글로벌 충전 시장도 2030년까지 6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보다 10배 큰 규모로 기업들에게 엄청난 사업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테슬라가 전기차뿐 아니라 충전 인프라 사업을 시작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요타, 닛산이 뒤늦게 전기차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재편이 더디다고 일본을 낮게 봐선 안 된다. 그간 산업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빠른 변화를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그간 에너지 저장장치에 관심이 없던 도시바가 이번 전시회에서 내놓은 제품을 보니 ‘조만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도시바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파나소닉도 기억에 남는다. 꼼꼼히 둘러봤는데, 태양광 발전으로 만든 전기 에너지를 에너지 저장장치(ESS)에 모았다가 이를 다시 전기차 충전, 공장 가동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쓰는 순환형 에너지 실증 사업을 소개했다. 국내에선 화재 우려로 실증 사업을 하기 어려운데, 일본은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일본이 출발은 늦었지만 빠르게 시장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에 필요한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나.
전기차나 배터리에만 집중하고 있는 정부 전략이 아쉽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아파트를 비롯해 곳곳에서 충전 스테이션 규모도 커질 전망이지만 정작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 충전 수요로 인해 전력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간과하고 있다. 브라운관 TV에서 평판 TV 시장으로 넘어갈 때 LG나 삼성이 일본보다 먼저 디지털 혁신을 해 우리가 세계 TV 시장을 선점했던 경험을 기억할 거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만 볼 것이 아니라 일상이 전기 에너지로 움직이는 '전기화'가 되는 만큼 에너지 관점에서 국가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