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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고고학 연구에도 정치적 의도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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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최근 내가 회장을 맡은 토론토 고고학회에서 인류학자 폴래트 스티브스를 초청해 북아메리카 대륙의 고고학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강의를 들었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클로비스’라고 지칭하는 정착민들이 1만2000∼1만3000년 전에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넘어왔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특징적인 화살촉(사진)이 1930년대 처음으로 미국 뉴멕시코 주의 클로비스에서 발견돼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그 클로비스 이론의 기반이 차츰 흔들리고 있다. 클로비스 문화 이전의 유적지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다. 이런 와중에 가장 파격적인 이론을 제시하는 인류학자가 바로 스티브스다. 그는 현재 발견된 클로비스 이전 유적지가 몇천 개나 되지만 기존 학계의 비판이 두려워 널리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미 초창기 거주민의 역사는 무려 십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클로비스 화살촉

클로비스 화살촉

물론 그의 주장에는 특별한 의도가 있다. 크리 메티스(Cree-Metis) 종족의 캐나다 원주민 출신인 스티브스는 ‘퍼스트 네이션’(캐나다의 아메리카 원주민을 지칭하는 용어) 사람들이 아시아에서 근래에 온 정착민이 아닌, 훨씬 더 오래된 토착민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리고 클로비스 가설은 “토착민들의 기나긴 역사를 조직적으로 지워버리는 식민주의의 왜곡”이며 자신의 사명은 토착 원주민들의 역사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얼핏 보면 과학적인 증거로 전개되는 고고학 연구가 그렇게 왜곡될 수 있겠느냔 생각이 들지만, 오늘날의 학문 연구 중에 정치적인 이슈와 관계없이 객관성을 유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만약 현재까지 일제강점기가 지속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한반도의 고고학과 역사를 모두 일본 학자들이나 친일 학자들이 연구해 그 내러티브가 결정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정말로 우리는 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 이것이 현재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현실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