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선2035

민지야 부탁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성지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야, 민지가 해달라는데 한 번 좀 해보자!”(2021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민지(MZ)야 부탁해’ 캠페인 중)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MZ’에 진심이었다. MZ세대를 의인화한 인물 ‘민지’의 부탁을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컨셉의 대선 캠페인은 비록 “반말이 캠페인 목적과 안 맞는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다른 후보들의 패러디를 이끌어내며 화제가 됐다.

대선 캠프에도 적극적으로 젊은 층을 기용했다. 직접 캠프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청년보좌역 채용에도 공을 들였다. 20대 남성이 적극 지지했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수차례 “핵심 공약”이라고 강조했고, 남녀 갈등을 주제로 청년들과 가진 간담회에선 “(이야기를 들으니)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이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주자이던 2021년 8월 공개한 ‘민지(MZ)야 부탁해’ 영상. MZ세대를 의인화한 인물 ‘민지’의 부탁을 윤 대통령이 들어준다는 컨셉이다. [윤석열 대통령 공식 유튜브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주자이던 2021년 8월 공개한 ‘민지(MZ)야 부탁해’ 영상. MZ세대를 의인화한 인물 ‘민지’의 부탁을 윤 대통령이 들어준다는 컨셉이다. [윤석열 대통령 공식 유튜브 캡처]

대선주자 시절 논란을 빚었던 ‘주 120시간 노동’ 발언도 청년들과 간담회를 한 직후 나왔다. 2021년 7월 언론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청년 기업인들과의 만남을 소개하며 “(그들에게) 주 52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나 물었더니, 스타트업에는 예외조항을 둬서 당사자 합의로 근로조건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라고 했다. 이어 “게임 같은 걸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한 120시간 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당 노동시간 확대가 MZ의 요구라는 취지였다.

최대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지난 6일 발표하기 훨씬 전부터 정부는 젊은 층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었다고 홍보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9월 MZ세대 노조 간담회에서 설문조사를 인용해 “(젊은 세대가)근로시간 조정이 필요하지만 자유롭게 조정할 수 없다고 했다”며 이를 노동개혁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청년자문단과 호프 미팅에서도 “근로자가 필요와 선호에 따라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정부가 노동시간 개편안을 재검토하는 이유로 MZ와의 소통 부족을 든 건 뜻밖이다. “MZ세대 의견을 청취해서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 장관은 15일 MZ노조와 긴급간담회에 이어 16일에도 청년자문단을 다시 만났다. 이틀간 간담회 결과,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새 기준이 제시됐다.

개편안 발표 후 복수 여론조사에서 20대의 윤 대통령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지금 있는 휴가조차 못 쓰는데, 한 달 내내 휴가를 갔다 오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나”(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송시영 부의장)라는 불만이 넘쳐 난다. 믿었던 ‘민지’의 단순한 변덕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소통’이 부족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