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촉발한 ‘은행 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2008년처럼 대형 금융사가 ‘백기사’로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과 스위스 당국의 개입에도 부실 은행을 중심으로 자금 이탈이 계속되자 금융업계가 방파제 구축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방파제가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 합의가 19일 이뤄지거나 그 전에 성사될 수 있다”고 밝혔다. CS가 스위스 중앙은행에서 70조원의 유동성을 지원받은 뒤에도 불안이 가시자 않자 매각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UBS는 CS와 함께 스위스 양대 은행으로 꼽히는 대형 투자은행(IB)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는 UBS가 구제금융을 받고 CS는 정부 지원을 거절했다.
그러나 CS가 UBS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9일 보도했다. CS는 인수액이 지나치게 낮아 주주와 직원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입장이라고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UBS가 CS 인수 가격을 최대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CS 파산 땐 ‘제2의 리먼’ 사태 우려…SVB사태 계속, 미국은 버핏에 SOS
이에 따르면 UBS는 주당 0.25스위스프랑에 CS를 인수하겠다는 것인데, 지난 17일 CS의 종가인 1.86스위스프랑보다 훨씬 낮은 가격이다. 로이터통신은 “UBS가 CS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60억 달러(7조9000억원) 규모의 정부 지급보증을 요구했다”고도 보도했다.
CS는 관리 자산 규모만 한화로 2000조원이 넘고, 직원은 전 세계적으로 5만여 명에 달한다. 만약 파산하면 제2의 리먼브러더스와 같은 핵폭탄급 충격을 금융계에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스위스 당국도 UBS가 CS를 신속히 인수할 수 있도록 비상절차 마련에 들어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JP모건이 베어스턴스와 워싱턴 뮤추얼을 인수하면서 ‘백기사’ 역할을 자처했다.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은행도 대형 금융사에 ‘SOS’를 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조 바이든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접촉 중이다”고 보도했다.
버핏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위기를 겪은 골드먼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각각 50억 달러(6조5000억원)를 투자하며 ‘구원투수’로 나선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트위터엔 퍼스트리퍼블릭(FRC) 등 파산 위기에 몰린 지역 중소은행 최고경영자의 전용기 약 20대가 버핏 회장의 자택이 있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착륙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앞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도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에게 파산설이 돈 FRC에 대한 지원을 직접 요청했다. 다이먼 회장 주도로 JP모건체이스 등 미국 11개 주요 은행이 총 300억 달러(39조원)의 예금을 FRC에 예치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추가로 주가가 24% 하락하는 등 위기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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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가격 등을 둘러싼 치열한 물밑 협상 끝에 CS는 USB를 30억 달러(약 4조2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극적으로 합의했다. FT는 UBS가 20억 달러 이상을 제안하면서 합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아시아 시장 개장 전 타결을 하겠다는 스위스 정부의 의지도 역할을 했다. 스위스 정부는 UBS가 CS를 인수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일부 손실을 막기 위해 90억 스위스프랑(12조7000억원)을 제공하기로 했다.